Huffpost Korea kr
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김승섭 Headshot

로제토 이야기, 당신의 공동체는 안녕하신지요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이탈리아 이민자 마을의 신기하게 낮은 심장병 사망율

1

로제토 마을 사람들과 '로제토 효과'에 관한 미국 방송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출처/ PBS

우리는 왜 아프고 병이 들까요?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듯, 가족력과 흡연과 음주와 잘못된 영양 섭취가 모든 질환의 원인일까요? 심장병을 생각해 봅시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의 사망 원인 중 두번째로 흔한 질병이거든요.

심장병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병원에서 만나는 의사들은 흔히 이야기합니다. 담배를 피우지 말고, 지방이 적은 음식을 먹고,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라구요. 그래야 비만, 고혈압, 고콜레스테롤 혈증을 줄일 수 있고, 심장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구요. 이는 현대 의학이 오랜 기간 연구를 통해 밝혀낸 위대한 성과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우리는 건강할 수 있을까요?

'로제토에선 왜 심장병 발생이 이리 적은가?'

때는 1960년대, 미국 펜실베니아의 로제토(Roseto) 마을입니다. 로제토 마을은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모인 공동체였습니다. 마을 주민들을 진료하던 의사들은 신기한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름이 아니라, 로제토에서는 유달리 심장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다는 점이지요. 이것이 놀라웠던 이유는 로제토 사람들이 술과 담배를 즐기고, 지역 주민 중에는 비만인 사람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의학적으로는 심장병 위험인자가 가득한 지역에서, 실제 심장병 사망은 오히려 적게 발생했으니까요.

정말로 로제토 마을에서 심장병 사망율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낮은지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연구를 시작합니다. 로제토 마을과 인근 지역의 심장병 사망율을 비교하는 연구였죠. 1955년부터 1961년까지 사망진단서과 병원 진료기록을 검토한 결과, 로제토 주민들의 심장병 사망율은 확연하게 낮았습니다. 특히, 로제토에서 1마일 떨어져 있고, 같은 식수원으로 물을 공급받고, 같은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또 같은 이탈리아 이민자 마을인 방고(Bangor)와 비교할 때, 로제토 주민들의 심장병 사망율은 방고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러자 당연히, '로제타에서 심장병 발생이 낮은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은 각종 콜레스테롤, 혈당, 혈액응고인자를 비롯한 여러 생체지표를 살피고, 비만도를 측정하고, 또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삶을 관찰했지요.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미 알려져 있는 의학지식으로는 로제토 마을의 낮은 심장병 사망율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2016-05-15-1463293764-7598331-00rosetostory4.jpg

로제토 마을의 낮은 심장병 사망율 (1979년 출간된 < 로제토 이야기(The Roseto Story) >에 실린 그림입니다)

이처럼 현상은 명확하지만 원인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연구자들은 로제토 마을의 심장병 사망율에 대한 논문을 1964년 미국의사협회지에 출판합니다.[1] "특이하게 낮은 심장병 사망율: 펜실베니아의 이탈리아 이민자 마을 연구"라는 제목으로요. 이 논문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로제토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건강한 원인은 현재 명확하지 않다'며 서술된 로제토 마을에 대한 묘사입니다. 심장병을 연구하는 의학 논문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구절입니다.

"로제토 마을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사람들이 삶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그들의 삶은 즐거웠고, 활기가 넘쳤으며 꾸밈이 없었다. 부유한 사람들도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옷을 입고 비슷하게 행동했다. 로제토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그 공동체는 계층이 없는 소박한 사회였으며, 따뜻하고 아주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였으며 서로를 도와주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진정한 가난은 없었다. 이웃들이 빈곤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었으며 특히 이탈리아에서 이주해 오는 소수 이민자들에게 그러했다."[1]

공동체: 니스코 신부, 상호부조, 슬픔 나누는 문화...

로제토는 미국에 건너온 이민자들이 본래 살던 이탈리아 남부 지역의 이름입니다. 20세기 초, '기회의 땅' 미국으로 많은 이들이 건너오던 시기, 기아와 가난에 시달리던 이탈리아 로제토 주민들은 미국 펜실베니아에 정착하며 자신들의 새로운 마을을 로제토라고 불렀습니다.

2016-05-15-1463293855-1525712-00rosetostory2.jpg

로제토 효과를 다룬 책 2권

이 마을의 특별한 점 하나는 니스코(Father de Nisco) 신부라는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니스코 신부는 마을이 성장하기 위해 정치적인 참여와 교육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로제토 주민들에게 미국 시민권을 얻어 투표하라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라고 적극적으로 권했습니다. 마을을 단장하기 위해, 씨앗을 나누어주며 꽃을 가장 예쁘게 키운 사람에게 상을 주기도 했구요.

니스코 신부의 활동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역 채석장의 근로자들이 1시간당 8센트라는 극단적인 저임금으로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는 채석장 사장을 만나 임금인상을 위한 협상을 시도합니다. 협상이 결렬되자 니스코 신부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스스로 노조 위원장이 되어 파업을 주도하지요. 그 결과 로제토 채석장 근로자들은 1시간당 16센트씩 받으며 일하게 됩니다.

니스코 신부를 비롯해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로제토 주민들은 마을 고유의 문화를 만들어갑니다. 마을 사람 중 누군가가 죽으면, 이전에 있었던 갈등을 뒤로 하고 죽음을 함께 애도했으며, 부모가 사망하면 그 집의 아이들을 함께 돌봐주는 무언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식량과 돈을 받을 수 있었고, 가족이 경제적으로 파산했을 때 그 가족을 돕는 것은 공동체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동체와 깊숙히 결합된 개인들이 꾸려가는 상호부조의 문화는 실제로 힘이 되었지요.

로제토에 사는 한 여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때는 당신도 당신의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어요(When you have these things, then you can carry your cross)."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줄 수 있다는 확신,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함께 해줄 것이라는 확신은 기꺼이 힘겨운 삶을 꾸려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로제토 공동체에 대한 30년의 연구

1964년에 출판된 로제토 마을의 심장병을 다룬 논문은 많은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당연하지요. 로제토 마을의 사회적 요인이, 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상호부조 하는 문화가 심장병을 예방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고, 이는 기존 의학지식에 비추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니까요. 로제토 마을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반박하는 한 논문에는 다음과 같은 단호한 구절이 있습니다.

"로제토 마을의 감성적인 분위기가 심장병을 막는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There is no basis to propose a protective effect of the emotional climate of Roseto)."[2]

이처럼 공동체 수준의 사회심리적 요인이 심장병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은 1960년대에는 인정받기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의심을 불식시키고 오늘날, 공동체 문화가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는 대표적인 사례로 로제토 마을의 연구가 이야기되고, 로제토 효과 (Roseto effect)라는 말이 생겨나고 사용된 데에는[3][4][5] 브룬(Bruhn) 박사와 울프(Wolf) 박사의 꾸준한 연구가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964년 논문을 출판했던 브룬과 울프 박사는 여러 연구자들과 함께 로제토 마을의 데이터를 꾸준히 분석하고 잇따라 논문을 출판했습니다. 1974[6], 1979[7], 1982[8], 1989[9]년까지 총 30여 년에 걸쳐 로제토 마을 주민의 심장병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서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울프 박사는 로제토 연구의 결정판이 되는 연구 2편을 출판하게 됩니다. 1992년, 50년 동안(1935-1985) 로제토 마을의 심장병 사망율 데이터를 인근 지역인 방고(Bangor)와 비교 검토한 <로제토 효과: 50년 동안의 사망율 비교> 논문을 발표한 것이죠[10].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이 로제토 지역의 심장병 사망율과 관련된 양적인 데이터 관련 논쟁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연구결과는 두 개의 인접한 마을(로제토와 방고)을 비교할 때 심장병의 원인으로 알려진 위험인자 분포에는 차이가 없었으나, 최소 30년 간 심장병 사망율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11]

결정판 두 번째는 1993년, 마침내 그동안 진행된 로제토 마을에 대한 사회학적, 의학적 연구 결과를 정리한 책 <공동체의 힘: 인간 관계가 심장질환에 미치는 영향 (The Power of Clan: The Influence of Human Relationships on Heart Disease)>를 출판한 것입니다.[11] 이 책의 서평을 실은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은 '저자인 Wolf 박사와 Bruhn 박사는 사회적 인자가 심장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생각을 대중화한 첫 번째 인물들'이라고 평가하며,[12] 미국의사협회지[13]를 비롯한 다양한 학술지에 이 책에 대한 서평이 실립니다.

2016-05-15-1463293967-4495973-00rosetostory3.jpg

로제토 효과를 보고한 첫 번째 논문 (1964)

로제토 공동체의 붕괴 그리고 한국

1990년대에 출판된 논문과 책은 로제토 사람들이 심장병 사망율이 낮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1960년대를 기점으로 전통적인 의미의 로제토 공동체가 붕괴되기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공동체의 붕괴와 함께 로제토의 심장병 사망율은 점점 올라가고, 마침내 로제토 마을의 비교대상이었던 방고(Bangor)와 비슷해집니다. 더 구체적으로 1964년까지는 로제토가 방고에 비해 심장병 사망율이 낮게 나타났지만, 1965년 이후로는 사망률 차이가 없습니다. 로제토 사람들은 1940년에 비해 심장병 사망율이 1970년에 대략 2배 가까이 증가했으니까요.[10]

1960년대의 그러한 변화를 브룬 박사와 울프 박사는 2권의 책에서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7][11] 1960년대 이전 로제토에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 돈을 쓰면서 공동체의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을 무시하고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술과 음식을 제외한 나머지로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사람은 살기 어려운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를 지나면서 로제토는 급격히 변화합니다. 어떤 이는 로제토가 미국화(Americanization)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점차 자본주의적 이념이 마을에 깊게 침투하고, 공동체에 대한 기여보다는 개인의 삶을 우선으로 생각하게 되었구요. 젊은이들은 로제토의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를 답답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은 대학 교육을 받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떠났고, 대학 졸업 후 전문직을 얻은 이들은 로제토로 돌아오지 않았구요. 그렇게, 사회적 결속(Social Cohesion)과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가 인간의 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로제토 공동체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지나간 로제토의 역사는 어떤 공동체에서 우리가 건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습니다.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대해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또 중요한지에 대해서요.

글을 마무리 하기 전에, 당신에게도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당신과 나, 우리의 공동체는 안녕하신지요?

[참고문헌]

[1] Stout C, Morrow J, Brandt EN, Jr, Wolf S (1964) Unusually low incidence of death from myocardial infarction: Study of an italian american community in pennsylvania. JAMA 188: 845-849.
[2] Keys A (1966) Arteriosclerotic heart disease in Roseto, Pennsylvania. JAMA 195: 93-95.
[3] Kiritz S, Moos RH (1974) Physiological effects of social environments. Psychosom Med 36: 96-114.
[4] Jenkins CD (1978) Behavioral risk factors in coronary artery disease. Annu Rev Med 29: 543-562.
[5] Spittle B, B JA (1977) Psychosocial factors and myocardial infarction. Aust N Z J Psychiatry 11: 37-43.
[6] Wolf S, Grace KL, Bruhn J, Stout C (1974) Roseto revisited: further data on the incidence of myocardial infarction in Roseto and neighboring Pennsylvania communities. Trans Am Clin Climatol Assoc 85: 100-108.
[7] Bruhn JG, Wolf S (1979), The Roseto story: An anatomy of health,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8] Bruhn JG, Philips BU, Jr., Wolf S (1982) Lessons from Roseto 20 years later: a community study of heart disease. South Med J 75: 575-580.
[9] Wolf S, Herrenkohl RC, Lasker J, Egolf B, Philips BU, et al. (1989) Roseto, Pennsylvania 25 years later--highlights of a medical and sociological survey. Trans Am Clin Climatol Assoc 100: 57-67.
[10] Egolf B, Lasker J, Wolf S, Potvin L (1992) The Roseto effect: a 50-year comparison of mortality rates. Am J Public Health 82: 1089-1092.
[11] Wolf S, Bruhn JG (1993) The power of clan: The influence of human relationships on heart disease, Transaction Publishers.
[12] Ruberman W (1993) Book Review.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329: 669-669.
[13] Eliot RS (1994) The power of clan: The influence of human relationships on heart disease. JAMA 272: 566-566.

* 이 글은 <사이언스온>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