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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고통과 개인적 치유 |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원인과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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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참사는 희생자 가족과 생존자들한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4월15일 전남 진도 동거차도 앞바다 사고 해역에서 희생자 가족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김봉규 기자)

최근 신문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라는 질병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가깝게는 세월호 유가족이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화재 진압 과정에서 동료 사망을 목격한 소방공무원이 PTSD를 갖고 있다고 하지요. 멀게는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가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 한국전쟁과 5·18 광주민주화 항쟁과 민주화운동 고문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몸과 건강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입니다.[1]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일상적 사건으로 인해 인간의 마음에, 더 구체적으로는 두뇌에 상처가 남아 생기는 질병입니다. 사람이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을 경험한 경우, 몸이 계속 각성되어 쉽게 깜짝 놀라는 과민반응을 보이고(Hyperalertness), 충격적인 사건을 마음 속에서 계속 다시 경험하게 되며(Re-experience), 감정적으로 마비되는(Avoidance) 증상을 보일 때, 이러한 진단을 받게 됩니다. 어떤 충격적이고 중대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신문과 뉴스에서 피해자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센터나 의료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러나 막상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치료와 사회적 의미는 어떠해야 하는지 논의할 기회는 흔치 않았습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탄생: 전쟁과 홀로코스트

시작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2] 전쟁에 참여했던 영국 젊은이들이 우울증, 불안 증세를 보이자 그 원인과 치료를 고민하던 의사들은 아마도 이 증세가 그들이 전쟁에서 사용했던 '포탄'(Artillery Shock)과 관련이 있을 거라 추측합니다. 그래서 "포탄 충격"(Shell Shock)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참전했던 젊은이들을 치료하는 데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당시에는 충격적인 경험으로 인한 심리적 트라우마가 사람을 아프게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포탄 충격'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관련 증상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됩니다. 참전했던 군인들이 분노 조절을 하지 못하고, 항상 흥분 상태로 있으며,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공통적으로 보이자, 그들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진단명이 만들어집니다. 교전피로(Combat fatigue), 일반스트레스반응(General Stress Reaction), 전쟁신경증(Traumatic war neurosis) 등이 그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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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참전 경험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유대인이라는, 슬라브족이라는, 집시라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천만 명 넘는 사람을 학살했던 인류역사상 가장 잔혹한 범죄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옥 같은 집단수용소에서 생존한 사람들(Death camp survivor)이 있었던 것이지요.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킬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며, 아내와 남편이, 자식과 부모가 차례대로 가스실에서 학살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사람들이 사회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3][4] 그러나 어떤 사회도 수용소에서 보낸 시간이 그들 몸에 남긴 상처를 해석하고 치료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을 중심으로 전세계 정신과 의사들이 표준화된 정신과 진단명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미국정신과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는 1952년 최초로 '정신과 진단 매뉴얼'을 출판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정신과 진단 매뉴얼인 디에스엠(DSM: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의 첫번째 버전, DSM-I 입니다. 참전군인들을 진료했던 미국, 유럽, 이스라엘 정신과 의사들은 모두 같은 증상을 발견하였고, DSM-I에는 참전 군인이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염두에 둔 진단명이 포함됩니다.[5] 그 진단명은 일반스트레스반응(Gross Stress Reaction)입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탄생: DSM-III에서 첫 명명

1968년 DSM의 두번째 버전, DSM-II가 발간될 때 이 진단명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사라집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 끝나고 평화로운 시기가 계속되면서, 미국과 유럽에서는 참전군인이나 홀로코스트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가던 무렵입니다. 특히 미국의 입장에서는 베트남전의 승리를 의심치 않던 '평화로운' 시대임를 반영하도록 한 것이지요. 베트남전에 대해 국제적으로 반전 여론이 조성되었으며 베트콩이 전쟁의 승기를 잡게 만든 구정 대공세(the Tet Offensive)가 1968년 초에 이미 진행되었고, 때는 이미 DSM-II의 출판 준비가 끝난 시기였으니까요.

그러나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참전 군인들이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참전군인들이 겪는 상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다시 커지기 시작합니다. 더불어 1960년대에 진행된 세계적인 반전운동, 그에 따른 전쟁 혐오의 분위기로 군인들이 전쟁에서 겪는 트라우마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요. 전쟁이 인간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황폐하게 만들고 파괴하는지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파견한 미국 사회에 대해, 사람들은 분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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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1980년 DSM의 세번째 버전, DSM-III가 출판될 때 수많은 논쟁이 일어납니다. DSM-I에 포함되었던 '일반스트레스 신드롬'을 다시 포함할 것인가, 아니면 베트남전 참전 군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베트남참전 신드롬(Post-Vietnam Syndrome)이라는 진단명을 새로 만들 것인가, 어떤 증상이 필수적으로 진단에 포함되어야 하는가, 전쟁이나 홀로코스트뿐만이 아니라 어린시절의 성폭행 경험과 같은 트라우마로 인한 상처도 같은 진단명을 갖는 것이 맞는 일인가.

이와 같은 논쟁 속에서 DSM-III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과 참전군인들의 증상을 기반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라는 진단명을 최초로 내놓습니다.[6]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수많은 의사들이 임상에서, 연구자들이 본인의 연구에서 적극적으로 이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 여러 수정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진단명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1994년 DSM-IV에서 완성됩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치료

의학 분야에서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관련해 다양한 측면에서 비판적인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이 진단명이 증상 측면에서 경계성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와 같은 다른 정신과 질환과 얼마나 다른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명으로 인한 대중의 관심과 사회적 지원과 같은 2차적인 이득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 진단이 인간이 트라우마에 심리적으로 반응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에서 오히려 더 멀어지게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논의도 있고요.[5]

그중에서도 저는 치료 측면에서 이 진단명에 대한 논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결국 우리가 원인을 파악하고 진단하는 것은 그것을 치료하기 위함이니까요. 얼핏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이 말은 현실에서 매우 큰 힘을 발휘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인간의 질병을 당뇨병으로 진단하면 의사는 혈중 당 농도를 감소시키는 약을 몸에 투여하지요. 고혈압에는 혈관을 확장시켜 혈압을 낮추는 약을, 결핵에는 결핵균을 죽일 수 있는 항생제를 투여합니다. 이렇듯 원인을 파악하는 행위는 이미 그 안에 해결책을 일정 부분 담고 있습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증상을 감소시킬 수 있도록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줄여주는 약물을 주기적으로 투여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트라우마에 초점을 맞춘 인지행동 치료(Trauma-focused cognitive behavioral therapy)와 눈을 돌리는 운동을 이용한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입니다. 두 가지 치료법은 모두 수많은 환자 치료를 통해서, 의학적으로 효과가 검증된 치료법입니다. 어떤 사람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진단받으면 그 사람은 위와 같은 의학적 치료를 받게 됩니다.

사회적 고통과 의학적 치료, 그 필요성과 한계

"승아를 설득해서 아빠가 함께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다녔어요. 상담하면 선생님이 10분, 20분 정도 마인드 컨트롤을 해주는데, 처음에는 이게 치료 순서인가보다 생각했죠. 근데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돼도 똑같은 거예요. 우리한테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 해주고 괜찮냐고 질문을 던지면 위로가 되나? 처방해준 약을 먹으면 좀 괜찮아지나? 아닌 거예요. 진짜 아닌 거예요. 뭔가 편해지고 마음이 달라져야 하는데 와 닿지가 않더라구요. 동생 잃은 아이에게 약물을 주는 게 무슨 치료냐 싶고, 감기 예방접종 받으러 가는 기분이 드니까 더 가자고 못하겠더라고요."(<금요일엔 돌아오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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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에 대해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은 의학적인 치료방법이 지닌 한계에 대해 지적합니다. 이들은 환자가 겪는 고통의 원인을 생물학적으로 파악할 때, 특히 구조적 폭력에 의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그런 방식으로 분석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우려합니다. 약물 치료와 인지 치료로 그 장애를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자들이 경험한 고통을 초래한 폭력적인 사회 조건을 모호하게 만들고", "고통의 유발 경로를 흐릿하게 함으로써, '설명없는 치료'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지적입니다.[8]

트라우마에 대한 많은 연구는 인간의 몸에 상처를 남기는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초래한 사건 자체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사건의 의미가 해석되고 재생산되는 사회적 환경이 외상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고통을 초래한 사회적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자신이 겪는 고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때 트라우마는 더욱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지요.[9]

물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이들에게 의학적인 치료와 도움은 필수적입니다. 덴마크에서 진행된 한 연구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을 경우 자살 위험이 5배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습니다.[10] 괴로워 하는 사람들이 위기의 순간을 버틸 수 있도록,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에서 정신과 진료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고통의 원인을 함께 바라보기

그러나, 정신과 치료의 필요성과 별개로, 앞서 지적된 바와 같이 트라우마를 경험한 개인의 상황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명명하는 것의 사회적 효과는 검토될 필요가 있습니다. 글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이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증상을 정리하며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전쟁터에서 돌아온 이들에게 붙는 진단명이지요.

사회로 복귀한 참전 군인들과 달리 세월호 유가족들은 아직까지 전쟁터 한가운데 있는 분들입니다. 세월호는 침몰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그 사건의 의미가 사회적으로 해석되고 그 원인을 밝히고자했던 과정은 계속되는 트라우마적 사건의 연속이었으니까요.

아젠다 세팅(Agenda-setting), 한국어로는 '의제설정'이라고 부르는 개념이 있습니다. 신문이나 뉴스가 자주 특정한 주제를 특정한 방식으로 다루면, 대중의 의견도 그렇게 변화한다는 점이지요. 언론에서 세월호 유가족 분들의 상처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부를 때, 저는 조심스럽습니다. 외상후 스트레스와 관련된 의학적 치료는 분명히 필요하지만, 한국사회의 온갖 모순들이 집약된 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한 트라우마를 개인적인 수준에서 진단하게 되고 그것이 개인적 수준의 치료'만'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세월호를 '교통사고'라고, 운이 없었다고, 개인의 책임이었다고 말하는 입장과 과연 얼마만큼 다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고통은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사회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했을 때, 공동체는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 공유를 통해, 명예회복/보상/처벌을 거쳐 사회관계 회복/개선"으로 나아가는 사회적 치유작업이 함께 되어야 합니다.[11]

그래서 기억해야 합니다. 5·18 광주민주화 항쟁 사망자의 유가족이, 77일 옥쇄파업에 참여했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가, 세월호 유가족이 PTSD로 진단을 받고 아프고 괴로워한다고 해서, 그들의 상처 입은 몸을 PTSD로 진단하고 의학적 치료만으로 그들이 겪는 고통을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요. '빨갱이' 낙인으로 인해 오랜기간 죽음에 대해 말할 수조차 없었던 그 사회적 낙인이, 회계조작에 따른 폭력적인 정리해고가, 풀리지 않는 의문들로 가득찬 가족의 죽음과 은폐된 진실이 그들 고통의 원인이자 그들의 고통을 이루는 핵심이니까요.

1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대표가 5월 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옥시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성명서를 발표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참고자료]

[1] 김동춘, 김명희 (2014). 트라우마로 읽는 대한민국. 역사비평사.
[2] Andreasen NC (2010).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a history and a critique. Annals of 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s 1208: 67-71.
[3] Levi P (2007). 이것이 인간인가. 이현정 번역. 돌베개.
[4] Frankl V (1995). 죽음의 수용소에서. 김충선 번역. 청아출판사.
[5] McHugh PR, Treisman G (2007). PTSD: a problematic diagnostic category. J Anxiety Disord 21: 211-222.
[6]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A, Association AP (1980).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7]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2015). 금요일엔 돌아오렴. 창비.
[8] 김명희 (2015). 고통의 의료화 : 세월호 트라우마 담론에 대한 실재론적 검토. 보건과 사회과학 38: 225-245.
[9] 이현정 (2015). 세월호 참사와 사회적 고통: 인류학적 현장보고.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심포지움: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 서울대학교 아시아 연구소(101동).
[10] Gradus JL, Qin P, Lincoln AK, Miller M, Lawler E, et al. (2010).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and Completed Suicide. American Journal of Epidemiology 171: 721-727.
[11] 김왕배 (2014). '트라우마'의 치유과정에 대한 사회학적 탐색과 전망. 보건과 사회과학 37: 5-24.

* 이 글은 <사이언스온>에 2015년 9월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