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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연구자가 20대 국회에 드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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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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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죄

"선생님, 집회에서 안전한 사회 만들어야 한다고, 또다시 참사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다니지만요. 저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부터 아무리 안전 사회를 만들면 뭐하나. 죽어버린 내 자식이 그 세상에서 살 수 없는데. 그럼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냥, 진짜로 난 내 새끼가 왜 죽었는지는 알아야 해서. 그것도 모르고 죽으면 너무 억울해서."

세월호를 놓을 수 없는 이유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님께서 제게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건네는 그 말을 들으며,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여름날 광화문광장에 앉아 허공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시던 한 아버님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고, 2년이 지났는데 왜 사고가 났는지조차 밝혀내지 못했다며 죽은 자식에게 미안하다고 자책하던 한 어머님의 이야기가 귓속에 맴돌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제 자신에 대한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를 잊지 못하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는 것일까.

제게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제 자식들이 살아가야 하는 한국 사회에 또다시 재난이 터지는 것입니다. 어느 날 세월호가 아닌 다른 이름을 가진 여객선이 평형수를 빼고 과적한 채로 바다 한가운데서 침몰하고, 선장과 선원은 승객을 놔두고 도망가고, 해경은 승객을 구하지 않는 상황이 다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배에 제가 사랑하는 이들이 타고 있는 상황이 저는 무섭습니다.

세월호 참사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한국에서 벌어진 여러 재난들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삼풍백화점 참사와 성수대교 붕괴에 대해서, 서해 페리호 침몰과 대구지하철 참사에 대해서요.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놀랄 만큼 관련 기록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재난이 어떻게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 앞으로 그런 재난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알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재난 당시 떠들썩했던 여론은 시간이 지나면서 잠잠해졌고요.

단지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죄가 없는 수백 명의 목숨을 한순간에 빼앗아간 그 재난에 대해 한국 사회는 면밀히 조사하지 않았고, 그래서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고, 그래서 무엇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2014년 4월16일이 한국 사회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2016년의 한국 사회가 두렵습니다. 이제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갑자기 멈추고 어디에선가 연기가 날 때, 승무원의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따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두들 강제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거예요. 그 지시를 따르면 어떻게 되는지 모두 잘 알고 있으니까요.

또다시 어디에선가 배가 침몰했을 때, 아무런 이득을 바라지 않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민간잠수사는 이제 없을 거예요. 그렇게 자신의 생명을 내놓고 사람의 목숨을 구하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모두 잘 알고 있으니까요.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매일매일 그렇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한국 사회는 재난 이후 매일매일 퇴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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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의 단원고 생존 학생들이 2014년 7월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며 국회까지 행진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살아남으려 모든 것을 한 아이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그 무책임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입니다. 저는 지난 1월부터 생존학생 실태조사를 책임연구원으로 진행하면서, 세월호 특조위가 활동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특별법이 발효되고 8개월이 지난 뒤에야 예산을 받고 직원을 뽑을 수 있었던 그 조직에서, 무엇도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증인들을 대상으로 수사권과 기소권 없이 두 차례 청문회를 진행했고, 부족한 예산을 아껴가며 유가족과 다른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실태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세월호 특조위 활동이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던 진실이 하나둘 세상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정부가 세월호 특조위 '강제 종료' 행정절차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세월호에 실린 화물 중 410t이 제주해군기지로 가는 철근이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참사가 발생하고 2년 만에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과적 때문에 침몰한 배이지만, 그 철근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배에 실리게 되었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제대로 조사하고 면밀하게 기록해야 하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습니다.

연구를 진행하며 가라앉는 배에서 울려퍼졌던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대해 자주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보같이 착한 학생들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다가 죽었다고 한탄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학생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함께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를 고민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배와 관련해서는 선원들이 전문가니까 그들의 말을 믿어야 한다며 무서움을 견디며 움직이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이었을까요. 선원들이 배에서 탈출하던 그 시각에 학생들은 서로 구명조끼를 찾아 입혀주고, 친구들이 밟고 올라갈 수 있도록 자신의 어깨를 내밀었습니다.

생각만으로 목이 메지만, '제 딸아이가 세월호를 탔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해봅니다. 아닐 거예요. 아닐 겁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경험이 많은 어른들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 배에 탔던 아이들은 그 상식을 지켰다는 이유로 죽었습니다.

제가 맡은 세월호 특조위의 생존학생 실태조사 연구는 6월 말에 끝납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친구를 잃은 상처와 그 상처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이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지난 2년을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동안 많이 괴로웠습니다. 10년 뒤 제가 또 다른 특조위 연구를 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대 국회만 할 수 있는 일

세월호 참사를 우회하고는 우리의 다음 세대가 살아가야 할 안전한 대한민국은 불가능합니다. 이 문제는 진보와 보수가 대립할 영역이 아닙니다. 어떤 사회를 꿈꾸든, 그 사회 구성원이 살아남아야 가능한 것이니까요.

한국 사회는 비극으로만 기억되는 기존 재난들과는 다른 이름으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국민의 소중한 세금으로 만들어진 특조위가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이 밤낮으로 조사한 결과물을 제대로 검토하고 기록해야 합니다. 만들어진 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문을 닫는 조직으로는 그 중요한 임무를 다할 수 없습니다. 제20대 국회에 세월호 특조위 활동 연장을 부탁드립니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