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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직무유기, 게으름인가 무책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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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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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5일에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했습니다.

녹색당 후보로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데, 선거구가 그때까지도 획정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래 국회는 2015년 12월 31일까지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했어야 합니다. 이 시한은 헌법재판소가 설정해 준 시한이었습니다. 선거구 인구편차를 1:2 이하로 줄이지 않는 것은 위헌이므로, 이때까지 새로운 선거구를 획정하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국회는 작년 연말까지 선거구 획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선거구가 존재하지 않는 '공백' 상태가 발생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입법부작위'에 해당하므로 위헌이라는 것이 제가 한 헌법소원의 취지였습니다.

저는 헌법소원을 하면서, 이 문제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이므로 '헌법재판소는 신속하게 심리해서 결정해달라'는 요청도 했습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선거가 끝날 때까지도 감감 무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선거가 끝난 4월 26일(화)에야 판결(헌법재판소는 결정이라고 하지만, 그냥 '판결'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을 선고하겠다고 통보를 해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4월 28일) 오후에 판결을 들으러 헌법재판소에 갔습니다.

판결 내용은 어이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헌법재판관 9명 중에서 5명은 '선거구 획정이 선거일 40일 전까지도 이뤄지지 않은 것은 심각한 입법의무의 지체이긴 한데, 뒤늦게나마 선거구 획정이 되었으므로 더 이상 이 문제를 다룰 이익이 없어서 각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머지 4명의 헌법재판관은 '이미 선거가 끝나긴 했지만,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위헌'이라는 의견을 냈습니다만, 다수의 의견에 따라서 최종 결론은 '각하'로 나왔습니다.

참 심각한 일입니다.

제가 헌법소원을 낸 이후에 선거구 획정이 이뤄진 3월 2일까지 2달 가까운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헌법재판소는 사건을 방치해 놓았습니다. 저 외에 다른 후보자들이나 유권자들도 비슷한 헌법소원을 냈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말로는 헌법의 수호자라고 하면서, '선거구 공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선고를 하면서, '이미 끝난 일이니 그냥 덮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헌법재판소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선거구 공백 같은 국가적 사태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심리를 하고 판단을 해 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역할일 것입니다. 그런데 게을러서 그런 것인지, 비겁해서 그런 것인지, 헌법재판소는 이런 역할을 포기했습니다.

'선거구 미획정' 만이 아닙니다. 녹색당이 제기한 또 다른 헌법소원들이 있습니다. '후보 1인당 1,500만원을 요구하는 고액 기탁금' 조항과 '비례대표 후보자의 마이크 사용금지 조항'에 대해서도 작년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는데, 헌법재판소는 아직도 판결을 선고하지 않고 있습니다. 선거 때문에 제기한 헌법소원인데, 선거가 끝날 때까지 답을 듣지 못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입니다.

게으름과 무책임한 회피가 헌법재판소의 특징이라면, 이런 식의 헌법재판소는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87년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헌법재판소의 존재의미에 대해 심각하게 질문을 던질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