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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개헌카드는 단순한 '블랙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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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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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연설을 통해 개헌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동안에는 개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는데, 임기 말이 다가오면서 개헌카드를 꺼내든 속셈은 뻔하다. 그런데 뻔해 보이는 이 속셈은 매우 위험한 계산을 복선으로 깔고 있다.

일단 박근혜 대통령은 우병우, 최순실 등 연일 터져나오는 측근들의 비리 의혹을 개헌이라는 '블랙홀' 이슈로 덮겠다는 계산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이 계산만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실제로 개헌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자신의 제안이 야당 일부를 흔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차피 박근혜 대통령이 당장 대통령을 한 번 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행 헌법 제128조 제2항이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헌을 전제로 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후에도 정치를 계속하면서, 자신의 지지세력을 결집시켜 장기집권을 노리는 것이 가능하다.

모델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바라는 권력구조는 일단 대통령의 권한을 지금보다 약화시키고, 총리가 일정한 권한을 행사하게 하는 모델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모델의 국가로 러시아가 있다. 러시아의 푸틴은 이 제도를 이용하여 8년 동안 대통령을 한 후에, 4년 '실세 총리'를 하고, 다시 대통령을 하고 있다.

야당, 어정쩡한 입장 가지고 끌려가면...

박근혜 대통령이 2018년 2월에 퇴임을 하더라도, 이런 모델을 상정하면 상당한 정치적 지분을 행사할 수 있고, 2020년 총선 이후에는 '실세총리' 정도를 해보겠단 생각도 할 수 있다. 중임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바꾸면, 대통령을 한 번 더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박근혜 대통령의 속셈은 뻔하다. 그렇다면,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략적 개헌 추진 발언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고 선을 그어야 한다. 문제는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데 있다.

그동안 야당 일각에서는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제기해 왔다. 정세균 국회의장, 김종인, 박지원 등의 정치인들이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얘기해 왔다. 최근에는 손학규 전 대표도 개헌의 필요성을 얘기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기도 했다.

벌써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임기 내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도 "우리 당의 다수 의원들도 개헌을 찬성하고 있고, 또 개헌특위 구성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논의는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이처럼 야당이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논의에 대해 어정쩡한 입장을 가지면서 끌려들어가면, 정말 개헌은 모든 이슈를 잡아먹는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있다.

선거제도 개혁이 우선이다

야당의 기득권 정치인들이 개헌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권력을 나눠먹기 원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면서, 개헌에 대해서만 관심을 표명해 왔다. 그러나 의원내각제든 분권형 대통령제든, 권력구조를 바꾸려면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선거제도 개혁이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고 하지만, 선거제도 개혁 없이 의원내각제로 전환하면, '제왕적 총리'도 가능하다.

지금 일본의 아베 총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유권자 다수의 뜻과 무관하게 원전을 재가동하고, 평화헌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2014년 중의원 총선에서 일본의 아베 총리가 얻었던 득표율(자민-공명 연립여당의 득표율)은 46%대였지만, 자민당이 40%대 득표율로도 지역구 선거를 휩쓸면서 68%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베총리는 장기집권의 길로 들어섰다.

좀 더 과거로 가면 영국의 대처 전 총리를 생각해 보면 된다. 대처 전 총리는 무려 12년간 집권하면서 영국사회를 신자유주의 방향으로 몰고 갔다. 민영화를 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하면서 일방통행식의 정책을 펼쳤다. 대처 총리의 정책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그가 행사한 권력이 대통령보다 적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선거제도 개혁이 우선이다.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를 하면서도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려면, 선거제도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를 하는 모범사례로 얘기되는 독일,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등은 모두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의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

이런 선거제도를 통틀어서 정당득표율과 의석을 연동시킨다는 의미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한다면, 이 제도가 전제가 되어야 의원내각제든 분권형 대통령제든 제대로 작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개헌을 해도, 누군가가 독재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그런 장치없이 권력구조만 바꾸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임기내 개헌'이라는 일정은 거부해야 한다

그래서 야당들에게 두가지 입장정리를 요구한다. 야당들 스스로 하지 않는다면, 결국 주권자인 시민들이 이 두가지 입장을 관철시키는 활동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첫째,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우선해야 한다. 4년 중임제 대통령제는 8년 독재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의원내각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런 권력구조가 민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전제조건인 선거제도 개혁부터 논의하는 것이 순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권고한 방안이며, 선거제도 역사상 가장 민주적이고 공정한 제도로 증명되었다. 이제는 이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둘째, 개헌의 내용 이전에 개헌의 절차부터 논의해야 한다. 정치권 중심의 논의가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하는 절차를 설계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헌법개정에서 주권자인 국민들은 늘 소외당해 왔다. 국민들이 그저 정치권에서 만든 개헌안을 놓고 찬성투표를 할 것이라는 생각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오산이 될 수 있다.

이번 개헌은 개헌 논의의 과정에서부터 시민들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박근혜 대통령 임기내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민주적 절차를 밟으려면,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임기내 개헌'이라는 일정은 거부해야 한다. 야당들은 이 두 가지 점을 분명하게 하기 바란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