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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투표는 공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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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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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국회를 마무리 하고 20대를 준비하는 소리들이 들려오는 요즘이다.

오늘은 장애인들의 투표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성인이 된 모든 국민에게는 동등하게 한 표씩의 투표권이 주어지는데 이 보통과 평등의 선거원칙은 몸이 불편한 사람이라고 해서 비껴가지 않는다.

각각의 선거권자에게는 직접과 비밀선거의 권리도 보장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나름의 보조용구가 제공된다.

두꺼운 표지로 만들어진 틀에 투표용지의 모서리를 맞추어서 끼워넣으면 기표란과 같은 위치에 보조용구의 구멍이 덮어지게 된다.

시각이 불편한 사람들은 구멍 옆에 적힌 점자를 읽고 원하는 후보나 정당의 이름이 적힌 곳 옆의 구멍에 도장을 찍으면 정상적인 투표가 완료된다.

당연한 권리이고 어떻게든 지켜줘야 하는 한 표, 한 표이긴 하지만 나름의 배려에 대해 매번 감사함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벌써 여러 번 투표를 경험하면서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성인이 된 이후 내가 겪었던 어느 투표소에서도 시각장애인인 나에게 보조용구를 먼저 꺼내어 준 투표소 직원은 없었다.

보조용구 요청에 일대가 웅성거리고 사용방법을 몰라 허둥대는 안내요원들의 모습은 이젠 익숙하기까지 하다.

투표용지와 보조용구의 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서 나의 소중한 한 표가 사표가 될 아찔한 상황도 여러 번 경험했는데 이마저도 동행인의 꼼꼼한 확인이 없었다면 나는 나의 권리행사가 무효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마저도 최종적인 확인을 스스로 할 방법은 없기에 제대로 기표가 되었는지 잉크가 번졌는지를 알 방법은 비밀투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 말고는 없다.

더욱 찝찝한 것은 투표용지와 분리된 보조용구의 구멍주위엔 나의 기표흔적이 잉크자국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아서 마음만 먹는다면 나의 정치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몇몇은 믿을 만한 동행인의 도움을 받으면 모두 해결되지 않는냐는 궁금증을 내뱉기도 할 텐데 투표소의 직원들이 보여주는 태도도 대부분 그렇다.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은 투표소에 오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에게 투표소 밖에서 기표하기를 권하기도 하고 시각장애인들에겐 대리투표를 권하기도 한다.

그분들은 그것을 배려라는 이름으로 권유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생각은 민주주의의 꽃이자 가장 기본적인 권리행사의 장면에서 자행되는 그들 멋대로의 융통성은 민주주의 질서의 파괴이자 권리 훼손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기사를 보다 보니 어느 투표소에서는 지적장애인에게 인지테스트를 강요하기도 하고 수천명이 거주하는 장애인 시설에서는 투표의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고 하기도 한다.

국민의 10%나 되는 장애인들의 권리행사는 어디까지 침해되었을까 하는 심각한 걱정이 들었다.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점자로 된 선거공보물이 제공되는데 시각장애인 중 점자를 아는 사람은 아무리 크게 잡아도 절반도 되지 않는다.

발달장애인을 위해 쉽게 수정된 선거홍보물이나 관련자료들은 접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선거의 4대원칙은 커녕 정보접근에서부터 차별받는 그들의 투표권이 배려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대리투표로 누군가의 끔직한 욕심을 채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나의 기우에서 끝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본다.

우리는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길 바란다.

그런데 만약 그 출발점에서부터 누군가는 배제되거나 차별 받고 있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새롭게 출발하는 20대의 선상에 서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말하고 싶다. 진정한 국민의 대표로 일하고 싶다면 지금이 그 시작이라면 대표를 뽑는 과정부터 샅샅이 살펴보고 제대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