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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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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에는 두 신하가 나온다.

청나라의 군대 앞에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가 되어버린 그 때 두 신하는 목숨을 걸고 각자의 신념을 인조에게 고한다.

한 신하는 국부의 자존심을 걸고 마지막 피한방울이 남는 순간까지 결사항전할 것을 상소하지만 다른 한 신하는 백성의 무고한 희생을 막을 수 있다면 왕은 굴욕을 감수하고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간한다.

어떤 결정이 인조와 조선에 있어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두 신하의 충심을 담은 신념은 스스로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중신무리들의 태도와 대비되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의 마음에 울림있는 고민을 던져준다.

주관이 강하고 자존심이 센 내 입장에서는 끝까지 항전을 주장하는 신하의 주장에 마음이 자연스레 기울어지고 있었지만 백성들의 삶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간언을 들을 때는 어떤 면에서는 민초의 목숨을 위해 무릎을 꿇는 것이 리더의 용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잠시 느꼈다.

영화가 끝나고 함께한 동료들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때 우리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만약 직장내에서 부당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저항하고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자존심과 명예는 지킬 수 있지만 가족의 생계가 막막해지겠고, 반대의 선택을 한다면 가정의 안정은 보장 받겠지만 정의와 윤리의 가치와는 조금 멀어져야 할 것이다.각자 이야기 하는 논리는 너무도 달랐지만 일면 모두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나의 고민은 어느쪽이 옳으냐 보다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결정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었다. 어떤 분은 내가 아직 결혼을 안 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하긴 했지만 난 무엇을 위해서와 관계없이 부당한 결정들에 동의하거나 눈을 감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에 동의하기가 너무도 힘들것 같았다.

내가 가장이라 했더라도 가족 앞에 무릎 꿇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았고 내가 인조였다면 무조건 결사항전을 택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나와 다른 의견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고 어쩌면 그것이 또 다른 의미의 용기라는 것을 이성적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신념이라고 주장하는 자존심과 고집은 타협과 수용을 부끄러움이라고 단정해 놓은 것 같았다.

요즘 어느 때보다 가치의 대립과 충돌과 관련한 뉴스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 같다. 원전의 폐기와 건설재게에 관한 논쟁이 그렇고 남성과 여성의 대립이 그렇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도 종교간의 마찰마저도 한 쪽이 모두 언제나 옳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생각과 가치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맞춰지고 다듬어질 수 있는 탄력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우리는 정보와 지식의 홍수 속에서 살면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그것들을 신념이라는 이름의 고집으로 만들어 왔다. 나의 생각과 논리는 점점 단단해지고 탄탄해져 왔지만 그것과 다른 것들은 점점 틀린 것이고 적들의 논리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친한친구나 동료들과의 모임에서도 정치적 다름은 관계단절의 원인이 된다. 종교의 다름은 사랑도 극복하지 못할 경계선이 되고 생각의 다름은 틀린 것이라고 단정한다. 난 아직도 인조의 결정을 부끄러운 역사의 단면으로 여기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인조가 그와 다른 결정을 했었더라도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았을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사람의 생각은 더더욱이 완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서로 다른 모습과 생각을 가진 것은 서로에를 보완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강한 고집들은 우리와 극단적으로 다른 생각들만이 고쳐낼 수 있을지 모른다.

대를 위해 무릎 꿇을 수 있는 용기에 대해 내겐 큰 성찰이 필요하다. 나와 다른 생각들을 포용하고 나를 바꿔갈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진정 우리를 옳은 판단에 조금 더 가깝게 인도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