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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느낄 수 없는 그때 그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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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cia_photography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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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주차장을 지나다 커버를 얌전하게 씌워놓은 차를 발견했다.

그리 비싼 차도 큰 차도 아닌 그것의 커버는 최선을 다해 주인을 보호하겠다는 듯이 마지막 매듭까지 단정하게 지어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 차는 분명히 누군가의 생애 최초 애마임을 확신했다.

어릴 적 우리 집에 작은 은색 자동차가 처음 들어왔을 때 그 녀석도 늘 그런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차량에 탑승할 때에는 신발에 먼지 하나 남지 않을 때까지 탈탈 털고 타야만 했던 그 차, 세차는 손세차로 꼼꼼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마무리는 광 나는 왁스로 해야 했던 그것은 차라기보다는 우리 가족의 보물이었다.

작은 상처 하나에 가슴 무너지고 작은 덜컹거림에도 혹시나 하면서 내려서 점검하던 그 녀석을 향한 마음은 무언가에 대한 간절함과 소중함의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더 어릴 적 영구 아저씨 사인이 그려진 운동화를 실내에서만 신고 다녔던 것도 TV와 연결되는 페밀리 게임기를 언제나 처음 포장상태로 보관했던 것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내 마음의 솔직한 표현이었다.

처음 삼겹살과 소주의 궁합을 몸소 체험하던 그날도 마음으로만 그리던 그 아이의 손을 잡던 그날도 처음의 소중함은 그것을 원했던 마음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그 짜릿함을 더해 갔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그 감동의 크기와는 아무 관계 없이 그러한 감정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아지고 무뎌져서 어느 틈엔가는 기억의 구석에조차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자동차가 있다는 건 여전히 내게 엄청나게 많은 편리함으로 다가오지만 그저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새 신발이나나 새로운 물건들도 잠시의 설렘을 가져오기는 하지만 며칠씩 포장을 뜯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을 정도의 떨림은 선사해 주지 못한다.

소주 한잔 삼겹살 한점이면 느껴지던 인생의 짜릿함도 동네 떡볶이집 아주머니의 서비스 튀김 하나면 맡아지던 세상의 푸근함도 이젠 쉽사리 가슴을 파고들지 못한다.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원하고 더 큰 것을 갈망한다.

더 맛있는 음식을 찾고 더 많은 돈을 벌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옛날 그때 그 맛을 지금 느낄 수 없는 것은 어쩌면 그 맛이 변했다기보다는 우리의 익숙함이 작은 감사와 감동을 잊게 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인생역전을 외치며 로또당첨을 외치지만 우리 대부분은 수백억의 당첨금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오랜시간 행복이라 여기지 못하리라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예쁜 여자친구를 만나도 아무리 좋은 직장을 얻어도 우리의 감정은 익숙함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누구도 모르는 사이 무뎌지게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는 이미 생각보다 많은 것을 누리고 필요 이상의 것들을 소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10년 전의 내가 20년 전의 내가 뿅하고 지금의 내가 된다면 내가 느끼는 평범한 일상조차도 그에겐 온통 황홀함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너무나 자주 먹어서 익숙해진 외식도 늘 입고 다니던 옷도 쥐꼬리만 해 보이는 월급마저도 언젠가의 나에겐 간절한 소망이었음을 알고 있다.

나의 감정이 메마르고 내 삶의 짜릿함이 점점 줄어가는 것은 어쩌면 얻지 못해서가 아니라 얻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얌전하게 커버가 씌워져 있는 작은 차 옆에는 누가 봐도 값비싸 보이는 외제차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쓰고 아무렇게나 주차되어 있다.

길거리의 오뎅국물 하나에 행복해 하는 아이들 곁에는 이 동네에는 왜 이렇게 맛난 음식점이 없냐며 투덜대는 어른들이 걸어간다.

우리가 진정 바라야 하는 것은 미래의 더 많은 물건들이 아니라 과거의 소박한 마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