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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은 시각장애인의 무엇을 검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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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특수학교인 맹학교 안에도 시력이 남아있는 친구들이 꽤나 있다.

약시라고도 하고 저시력이라고도 불리는 이 친구들의 시력의 정도와 그 종류는 정말 다양하다.

밤에 잘 보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낮에만 볼 수 있는 친구도 있다.

신문글씨는 보지만 길은 다니지 못하는 친구도 있고 반대로 길은 기가 막히게 찾지만 글씨는 못 보는 친구도 있다.

같은 글씨라 하더라도 굵은 글씨가 잘 보이는 친구, 큰 글씨가 잘 보이는 친구, 흰바탕에 검은글씨가 잘 보이는 친구, 검은바탕에 흰글씨가 잘 보이는 친구들도 있다.

장애의 원인질환, 시야, 시기능훈련의 시기와 정도 등에 따라서 달라지는 저시력 친구들의 잔존시각의 형태에 따라 맹학교에서는 최대한 개별화 된 맞춤형 자료와 보조기기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하고는 한다.

확대자료는 기본이고 광학확대기기나 녹음자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눈의 피로도가 일찍 오거나 질환의 진행성 경향이 있는 경우에는 부분적으로 점자를 병행하기도 한다.

맞춤형 자료의 제작은 단지 글씨를 좀 더 편안히 보는 것뿐 아니라 학습의 효율을 높이고 시력 관리에까지도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는 어느 시점엔 시력이나 질환의 종류와는 아무 관계없이 문자매체를 하나로 고정해야 하는 강요를 받게 된다.

점자면 점자 묵자(보는 글씨)면 묵자 하나로 매체를 통일하라는 강요는 오직 하나 수능 때문이다.

과목에 따라 학생의 개별적 시각상태에 따라 두 매체 모두를 제공해 주는 시험장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둘 중의 하나만을 억지로 택해야 한다.

필산을 하기 위해 수학과목을 묵자로 시험 보려 맘을 먹었다면 국어나 영어처럼 텍스트의 양이 많은 과목도 온전치 않은 시력으로 눈이 빠지도록 볼 수밖에 없다.

반대로 녹음테이프가 제공되는 점자시험장을 택했다면 수학시험지도 점자로 보고 미적분도 당연히 암산으로 풀 수밖에 없다.

빛에 예민한 친구도 야맹증이 있는 친구도 하나의 조도로 통일된 시험장에서 시험 외적인 스트레스를 견디며 다른 수험생들과의 경쟁을 치러내야 한다.

약간의 배려만 있으면 최적의 시력상태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친구들이 행정적 편의를 위한 획일화되고 단순화된 시험장에 맞추기 위해 수학능력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훈련을 견뎌야 한다.

심지어는 그런 이유로 몇몇 과목은 시험준비에서부터 포기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필산만 가능하면 풀 수 있는 수학은 암산부담에 포기, 녹음테이프만 제공되면 전부 풀 수 있는 언어시험지는 눈의 피로 때문에 반도 못 풀고 포기하는 것이다.

수학능력시험이 검증해내고 싶어했던 능력은 적어도 이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매체로 장애와 고통을 견뎌가면서도 얼마나 점수를 얻어낼 수 있는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대학에 들어가서도 직장을 다니면서도 절대로 그들은 그런 환경에서 억지로 무언가를 해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확대가 필요하면 확대경을 쓰면 되고 눈이 피로하면 녹음되거나 점자로된 자료를 보기도 할 것이다.

컴퓨터도 사용하고 다양한 보조기기도 사용하면서 그들은 과정의 모양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다르지 않은 모양으로 성취해 낼 것이다.

올해도 수능 원서를 접수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아이들은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잔존시력의 상태와는 관계 없이 점자인지 묵자인지를 또 다시 하나로 택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그들의 점수에 매우 큰 영향을 주고 그것은 그들의 진로에 혹은 그들의 삶의 모양에 매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현재도 교육과정 평가원에서는 장애영역에 따라 나름의 노력으로 편의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다.

점자시험지도 제작하고 시험시간도 1.5배 이상 주고 그 외의 편의도 매년 새롭게 연구하고 계발한다.

그러나 아직은 제도와 서비스가 도와주지 못하는 영역에서 선의의 피해를 보는 장애친구들이 적지 않다.

장애친구들이 아니라도 시험장의 환경은 최대한의 개별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번의 수능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 어떤 행정편의보다 앞서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우리 학교 저시력 아이들은 수능 하나를 위해 남아있는 잔존시력을 불가피하게 희생해 가며 책을 읽고 있다.

배우지 않아도 될 복잡한 점자를 익히고 편하지 않은 조명에서 억지로 교재를 보는 연습하는 아이들을 보면 무엇을 위한 진학공부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돈이 많이 들어도 고쳐졌으면 좋겠다.

조금 많은 인력이 들더라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현재 존재하는 지원서비스만이라도 아이들이 각자의 욕구에 맞게 과목에 따라 고르고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불편한 아이들이 수능시험에서만큼은 최선의 상태로 시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