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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다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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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RED RUN ANIMAL
santanu nandy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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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극지정복을 준비하는 한 탐험가의 인터뷰를 들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새로운 기록들을 만들어가는 어떤 철학적 근거가 있냐는 질문에 그는 그냥 좋아서라고 대답했다.

높은 곳을 오르면 더 높은 곳이 보이고 고통을 견디고 나면 더 극한 고통을 극복해 보고 싶은 욕구일 뿐이라 말하는 그의 이야기는 어쩌면 인간의 가장 솔직한 본성의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더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더 강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그도 그냥 더 힘든 도전을 찾기 위해 온 몸의 촉수가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나 지금보다는 더 나아지기를 원한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멀리 더 빠르게를 외치면서 인간과 그와 관련된 기술들은 늘 발전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있는데 이것은 거꾸로 생각하면 현재의 인간은 매우 부족한 상태라는 증거임에 분명하다.

남들과 다른 부족함이 장애라고 한다면 그런 의미에서는 인간은 다른 생물들과 비교해서 꽤 많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새들처럼 날지도 못하고 치타처럼 달리지도 못한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 인간 모두는 비행장애이고 지체장애인 것이다.

사람들은 과학기술이라 말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비행기나 자동차는 동물들 입장에서 보면 나는 휠체어나 아주 빠른 전동휠체어로 보일지도 모른다.

더 선명하게 보기 위해 안경을 발명하고 더 멀리 보기 위해 망원경을 만들었지만 매의 눈에 비하면 인간의 시력은 여러 가지로 장애적 요인이 많다.

사람들은 가장 강한 1인이 되기 위해 격투기 링에 오른 근육질의 선수들에 환호를 보내지만 그들 중 누구도 사자와 한 우리 안에서 싸울 맘은 없을 것이고 올림픽 금메달을 몇 개나 딴 수영황제는 바다 속 작은 물고기보다도 물 속에 오래 있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또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머지않아 사람들은 사자 네 마리가 동시에 나타나도 싸워 이길 수 있고 물속의 상어보다도 바닷속을 편안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신기술들을 만들어 갈 것이라는 것이다.

늦은 밤에도 세상을 밝게 비춰주는 전기나 수백명을 한꺼번에 하늘로 들어올리는 비행기는 그것들이 발명되기 이전의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이견 없는 불가능의 영역이었을 것이지만 인간의 욕구는 언제나 그것들을 가능의 영역으로 옮겨 오는 것에 성공이라는 마침표를 달아주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현재보다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세계적인 탐험가들도 미지의 영역이라 여기는 여러 극지들마저도 머지않은 시간에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편안한 여행지가 될 것이다.

우주도 달도 화성도 안드로메다마저도 예외 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한 탐험가의 도전과 욕구가 있고 그를 동경하는 많은 이들의 응원에 섞인 또 여럿의 욕구가 있기에 난 모두 가능의 영역이 될 것임을 어렵지 않게 확신할 수 있다.

기술의 발달은 우리 모두의 부족함을 동등하고 공평하게 해결해주는 시간을 가져오게 한다.

더 빠르게를 해결해 준 자동차 안에서는 스프린터의 다리와 지체장애인의 다리는 그저 자동차에 비해 부족하다는 공통의 약점일 뿐 큰 다름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수천킬로미터 밖을 내다보는 레이더나 위성들 앞에서 나의 시력도 다른 누군가의 시력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발달장애인들의 부족함마저도 그리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다르다고 여기고 부족하다고 구별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조금의 시간차에 의해 같음으로 바뀔 수도 있는 크지 않은 차이라고 생각한다.

짐승보다도 못한 신체적 우월함으로 잘난 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잠시의 불편함으로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은 철학적 위로가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미래의 예측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