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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팬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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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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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로야구를 좋아한다.

물론 종교만큼이나 타협할 수 없다는 응원팀도 가지고 있다.

그날 우리팀의 승패 여부는 나의 기분을 움직이기도 하고 때로는 꽤 오랜시간의 컨디션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나의 팬심을 온전히 받아내는 그 팀은 최근 10년간 리그에서 가장 많이 진 팀이다.

조금 더 우울한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알기로는 가장 많은 돈을 쓴 구단이기도 하다.

가장 많은 뉴스거리를 만들어내고 가장 많은 기대감을 유발하면서도 프로야구의 하이라이트인 가을야구에는 10여년간 한 번도 진출한 적이 없다.

야구전문가들은 언젠가부터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기 전 리그 전망에서 우리팀의 순위를 10쪽으로 가까이 붙여놓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최고의 감독님을 모셔와도 몸값 비싼 FA선수를 데려와도 메이저 리그 경력 화려한 외국인 선수까지 스카우트해도 변하지 않는 성적이 계속되면서 전문가들의 우리팀에 대한 판단은 큰 고민 없이 하위권이라 단정지어지는 듯했다.

사실 조금만 깊게 들여다 보면 나라도 그런 의견을 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수십 수백 가지의 기록들로 이루어진 세부지표들이 돈 몇 푼, 선수 몇 명 바뀐다고 쉽게 달라지지는 않는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이야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우리팀에 대한 평가는 시즌 전에도 시즌 중에도 늘 최고 평점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전문가들도 10개의 팀을 조사하다 보면 한 팀만 연구하는 나보다 모를 수도 있다고 합리화하기도 하면서 나름의 기대들을 냉정한 객관으로 착각하며 응원을 이어왔다.

몇 년간 우승을 반복하는 어떤 팀도 꾸준히 성적을 상승시키는 새로운 팀도, 저력이 있다는 전통 있는 팀마저도 강팀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머리가 세뇌되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시즌 초라 아직 다듬어지지 않아서 그래" "대진운이 안 좋게 꼬여서 잠시 그런 거야' '선수들의 전력은 좋은데 감독만 바꾸면 되겠어' '부상만 아니면 우승팀인데!' '타격은 최고인데!!' '외국인 운이 안 좋아서 그런 거야!' 하면서 이어지는 각 종 핑계의 수준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었지만 그 어떤 부분을 수정하고 다듬어도 순위표에서 우리팀의 위치는 바닥권을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야구 오래 봤다면서 팬심과 객관적 판단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농담 섞인 비난들도 숱하게 받았지만 뭐가 잘못되어 있는지 몰랐다.

난 우리팀이 늘 좋았고 그들은 늘 강했다. 나의 기억 속 그들은 늘 최고기록들로만 기억되었고 그런 기록들로 합쳐진 팀의 모습 또한 늘 강팀이었다.

그에 비해지는 다른 모든 팀은 당연히 그저 그런 약팀들일 뿐이었다.

언젠가 무참히 이겨버렸던 기억만 남아있는 상대팀들에게 우리 팀이 지는 것은 인정하기 힘든 억울함일 뿐이었다.

보살팬을 자처하며 안타 몇 개, 삼진 몇 개에 작은 의미를 두고 관전한 적도 있지만 솔직한 속마음은 잠시 어지러운 팀사정 때문이라는 위로에 근거하는 여전한 강팀의식이었다.

올해도 포스트시즌은 조금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을 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들었다.

어쩌면 아직도 완전히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조금만 연승을 하면 10연승 20연승을 꿈꾸며 1%의 가능성에 우승을 상상하게 될지도 모른다.

조금씩 저녁바람이 선선해 가는 요즘 올해의 프로야구도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다.

문득 올해의 성적을 돌아보며 조금은 객관적인 관전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리그 전체의 판도도 들여다 보고 상대팀의 멋진 선수들도 응원하면서 조금 더 성숙한 야구팬이 되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물론 팬심마저 접을 수는 없지만 다른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과도 서로 사실을 인정하고 격려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그룹에 속하게 된다.

가족을 이루고 종교를 가지고 직장에 들어가기도 한다.

사는 동네, 태어난 동네, 출신 학교로 묶이기도 하고 때로는 성별로 때로는 세대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어느틈에 내가 속한 그룹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근거 없이 긍정의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상황에 핑계가 있고 모든 일들에는 변명이 있고 그런 치우쳐진 팬심이 야구팀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10년이 지나고 지고 또 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지면서 내 팬심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너무 늦기전에 내가 속한 모든 그룹에 대해 객관적인 생각들을 가지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애정과 이기심은 다른 것이지만 매우 가까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이글스의 팬일 것이다. 그렇지만 베어스도 트윈스도 타이거즈도 함께 사랑할 수 있도록 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해 보려 한다.

나라는 존재에는 좀더 엄하게 상대에겐 좀더 관대한 마음으로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