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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은 기관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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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rio31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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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제자 녀석들은 하고 싶은 것들이 참도 많다.

선생님도 되고 싶고 가수도 되고 싶었다가 어느 날은 갑자기 대통령이 되고 싶기도 한가 보다. 어떤 녀석은 수녀님도 되고 싶으면서 멋진 왕자님을 마나고 싶기도 하고 어떤 녀석은 비행기 도움 없이 하늘을 날아보고 싶기도 하단다.

천진난만한 녀석들의 장래희망들에는 나름 꼭 이뤄내야 할 탄탄한 논리들도 있어서 세상에 찌든 어른들의 틀에 갇힌 어설픈 설명으로는 그 황소 같은 의지를 쉽게 꺾기 힘들다.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꼬마들의 꿈 이야기는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조금씩 현실과의 타협을 시도하는데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가장 큰 문제는 그 녀석들의 온전치 않은 시력이다.

"의사는 제 시력으로 할 수 있을까요?" "일반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될 수 있을까요?" "미대에 진학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는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은 제자들의 고민들을 듣고 있노라면 그런데로 세상풍파 먼저 경험한 나로서도 시원한 조언이나 결론을 내려주기가 쉽지 않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녀석들이 나를 찾아올 때쯤이면 이미 현재의 지구상에서는 그런 일들은 시력 없이 해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자기결론을 내린 뒤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마음은 아프지만 하소연과 위로 몇 마디가 오가면 그럭저럭 씁쓸한 마무리에는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한 녀석의 고민은 조금 더 특별했고, 그 의지도 너무 강력했다.

기관사가 되고 싶은 녀석은 제법 내 강의들도 여기저기서 찾아 들은 듯 내 말들까지 인용해 가면서 내게 할 수 있다는 대답을 종용하고 있었다.

"선생님! 작은 가능성만 있다면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하셨죠?"
"실패는 다른 모양의 열매로 과는 과정이라고 하셨지요?"
"할 수 없어 보이는 일도 그 안에서 작은 부분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거라고 하셨지요?"
"기관사가 하는 일 중에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있거나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죠?"

흡사 울부짖음과도 비슷한 간절한 호소에 나는 나도 모르게 할 수 있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불편한 점이 많긴 하겠지만 천천히 같이 고쳐나가 보자고 이야기 하는 나의 말은 최면에라도 걸린 듯 나도 모르는 사이 굳은 의지마저 담겨 있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그것을 단정 지을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었다.

나 또한 겨우 교사자격증 하나로 어느 누구의 꿈을 재단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현실을 근거라 이야기하지만 그건 내가 보는 세상일 뿐인 것이다.

내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논리쯤은 꿈꾸는 녀석들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선구자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안 보이는 눈으로 잘 할 수 있는 것만 가르칠 수도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지팡이 없이 낯선 길을 찾는 것은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것이나 비슷하고 마트의 수많은 물건 중에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것 또한 우리에겐 외과의사의 수술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후배들이나 제자들에게 그건 스스로 하기 힘든 일이니 도움을 받는 것이 낫겠다고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다.

거리의 디자인이 바뀌고 물건을 구분할 수 있는 보조기구만 만들어지면 지팡이 없이 걸어다니고 처음 가는 마트에서 도움 없이 물건을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현재의 불편함 혹은 불가능을 경험하고 있는 내 역할은 제자들에게 그것들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하나씩 바꿔가고 가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현실적 불가능을 냉정히 알려줘야 하는 것은 교사로서 선배로서 나의 책임이지만 분명히 현재라는 시점으로 한정해야만 한다.

미래의 상황까지 현재를 근거로 판단하는 것은 나의 오만이고 그것을 좌시하는 것 또한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그 녀석은 아직도 기관사를 꿈꾸고 있을까?

우리 아이들의 작은 눈 두 개가 세상을 향한 큰 꿈에 장애로 여겨지지 않는 세상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