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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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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Yun Han Xu / EyeEm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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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페를 그다지 자주 가지 않는다. 커피를 즐겨 찾지 않는 기호 탓일 수도 있겠고 언제든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혼자만의 공간이 있어서일 수도 있고 커피보다는 다른 종류의 성인음료로 투자경로를 정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쨌건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며칠 전의 카페 방문도 나에겐 굉장히 오래간만의 사건이었다.

함께 간 동료들의 주문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그 내부의 모습들과 그 곳이 돌아가는 원리들은 내겐 그래서 좀 다른 느낌들로 다가왔던 것 같다.

바로 옆 편의점에서는 기다리지 않고도 천원 정도면 살 수 있는 음료들을 사람들은 몇 배의 가격을 지불하면서 이곳을 찾는 것일까에서 나의 질문은 시작되었다.

커피의 브랜드 가치와 풍미를 모르는 내 생각은 일단 커피 자체의 품질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음을 전제로 그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난 카페의 부가적인 서비스들에서 그 차이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복잡한 도시 안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콘센트와 음악에까지도 우리는 이미 커피값에 포함된 가격을 지불하고 있었다.

점원들의 상냥한 도움과 청결한 분위기 게다가 유명 브랜드의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약간의 자부심마저도 그 가격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진짜 의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정말 그런 것들 때문에 몇 배의 가격을 지불한다면 급히 테이크 아웃을 선택하는 사람들과 몇 시간 공간을 점유하는 사람들이 어째서 동등한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인가?

이것이 혹시 보편적 복지의 모델은 아닐까?

같은 가격을 지불한 사람들의 자본은 공간과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집약적인 서비스로 제공된다.

테이크 아웃을 선택한 사람들이 당장의 높은 지불에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 것은 시간적 상황과 욕구의 변화에 의해 얼마든지 역할이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즉 공동체를 위한 투자이므로 조금 여유가 있는 자본가는 나눔을 불평하거나 생색내지 않고 복지수혜자도 미안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수혜자의 권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다만 여기서도 몇 가지 문제점은 보이는데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을 혼자서 독점하고 타인의 불편함을 유발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내겐 규칙의 사각지대를 이용한 복지의 독점 혹은 부정수급의 사례로 여겨졌다.

이때 필요한 것이 조정인데 점원들은 이러한 편중적 수혜를 막기 위해 감시와 제도개선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한 명만 앉아도 되는 자리가 있는데도 넓은 자리를 독차지 하고 있다면 이동을 지시하고 혹시 소규모 테이블이 부족하다면 혼자 오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의 확보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만약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테이블만 남아있는 상황에서 나홀로 고객들의 증가가 급속히 이루어진다면 카페는 합석을 유도하고 고객들은 상황을 이해하여 방침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이것은 다양성의 존중이자 다름이 함께 사는 방법이기도 하다.

고객들의 입장에서도 카페가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혹시 과도한 지불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세심히 살피고 내게 주어진 권리가 보장되고 있는지에도 꾸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내겐 세금이고 복지정책인 듯 보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소외되는 계층은 발생하는데 아메리카노 한 잔 정도의 지불능력이 갖춰지지 않은 카페 밖 사람들이다.

이들을 위해 카페는 음료를 주문하지 않아도 쉴 수 있는 일정한 쉼의 공간을 마련하고 때로는 무료쿠폰 등을 발급하여 잠재적 경제능력을 가진 그들을 위한 복지정책도 마련해야 한다.

그들은 머지않은 시간 내에 공동체의 공간을 보다 발전된 모습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 지불능력을 갖추게 될지도 모르고 혹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의 동료이고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기초생활 수급이나 성년후견제 같은 적극적 복지의 모델 아닐까?

카페가 만약 이러한 정책들을 받아들이고 지속적으로 실행한다면 매출은 오르고 브랜드의 가치도 덩달아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고객들은 그런 브랜드를 이용하는 것에 더 큰 자부심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난 이것이 카페복지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람들은 프렌차이즈 카페에 밥값의 몇 배를 지불하면서 큰 불평을 쏟아내지 않는다.

내가 느낀 카페의 서비스와 제공되는 편의는 그 가격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고객들은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복지의 증대와 그로 인한 세금의 증가는 늘 불만의 대상이고 역차별의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카페에서 그렇듯 우리는 언제든지 기여자가 될 수도, 수혜자가 될 수도 있다.

몇천원의 커피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불하는 것처럽 넘치는 것들을 나누다 보면 우리 사는 사회도 카페 안처럼 쾌적하고 평화로운 공간이 되지 않을까?

유명브랜드의 커피를 마시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듯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지 않을까?

난 커피를 잘 모르듯 국가 정책은 더더욱이 잘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 사는 나라도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카페 안 공간처럼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카페복지! 한 번 내가 사는 공간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