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안승준 Headshot

불편함과 불가능은 다르다

게시됨: 업데이트됨:
IMPOSSIBLE
blackred via Getty Images
인쇄

세 개의 사발면과 세 명의 사람이 있다. 그런데 젓가락이 한 개밖에 없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떤 이는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 불만을 늘어놓고 음식을 포기하겠고 다른 누군가는 젓가락을 자르거나 특별하지 않던 공동체의 친밀성을 갑자기 높이 평가하여 하나의 젓가락을 돌아가며 사용하도록 유도하거나 그도 아니면 주변의 다른 도구를 식사도구로 사용하는 등의 다양한 새로움을 찾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배고픔의 정도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데 배 속에서 보내는 즉각적 에너지공급신호가 강하면 강할수록 해결의 방법을 찾으려는 의지도 강력해질 가능성이 높다.

며칠 전 나의 이어폰 한 쪽이 단선되었을 때 나의 선택도 그리 오랜 시간의 고민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노트북의 스크린리더 음성을 한 쪽만 들리는 이어폰에 의지해서 내게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기에 그 공간의 소음도는 너무도 높았지만 내게 주어진 얼마 남지 않은 제한시간은 한 쪽이라도 기능을 남겨 놓은 이어폰에 감사를 보내고 의지하는 것 이상의 좋은 선택지가 없었다.

사람들은 때때로 불편함과 불가능을 착각하는데 그것은 많은 가능성을 놓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젓가락이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은 라면이 세 개가 있다는 현존을 부정할 수 없고 이어폰이 한 쪽만 나온다는 사실 또한 멀쩡하게 작동하는 노트북 앞에서 나의 시간을 불평으로 허비할 자격을 부여해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날의 불편함은 또 다른 나에게 젓가락 준비나 이어폰 관리에 대해 좀 더 철저히 대비할 수 있는 경험적 대비태세를 선물할 것이고 혹여 같은 상황이 반복될지라도 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상황을 극복하는 노화우의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우리학교의 교육과정과 시간표는 일반학교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통교육과정을 온전히 이수하기 때문에 국어, 영어, 수학, 체육, 미술까지도 교실 한쪽 벽에 걸린 시간표에 온전히 담겨 있다.

그런데 학교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부터가 신기함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국어는 한자도 많고 분량도 많은데 어떻게 하고 수학은 그래프나 도형이 있는데 어떻게 하고 체육은 움직여야 하는데 어떻게 하고 미술은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하냐는 물음을 한 가지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끊임없이 추가로 썰물처럼 쏟아낸다.

특별할 것 없는 맹학교의 수업방식 몇 가지가 대답으로 이어지면 대부분은 경악과 존경의 메시지를 온몸과 최고의 감탄사로 쏟아낸다.

나와 깊은 친분관계에 있는 몇몇마저도 나와 공유한 수많은 평범한 경험들은 까마득히 잊은 채 예수의 기적이라도 보고 듣는 양 눈물마저 흘릴 기세로 감동한다.

그들은 분명히 불편함을 불가능으로 강력하게 착각하게 하는 마법에 걸린 것이 분명했다.

미적분을 암산으로 해결하고 소리 나는 공들을 예민한 감각으로 쫓아다니며 공을 차는 모습은 분명 익숙한 장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보는 것처럼 엄청난 사건은 또 아니다.

교사들과 아이들은 여전히 아쉬움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수업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의 영역으로 시간표를 도배할 수는 없지 않는가?

젓가락 하나로 라면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세 명의 배고픈 사람들처럼 특수교사와 그들의 학생들은 늘 고민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다.

그것은 그 불편함의 횟수가 반복되고 고민의 횟수를 늘려감에 따라 불가능과의 거리차이를 벌이고 가능의 영역을 넓혀간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하는 일 중에 완벽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카레이서처럼 운전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고 운동선수처럼 신체능력을 가진 사람도 드물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차를 운전하고 운동을 즐긴다.

모든 가정의 음식이 유명한 식당의 요리사를 따라갈 수 없고 나의 가르침이 세계최고의 완벽한 수학교육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요리를 하고 나는 아이들을 가르친다.

늘 아쉽고 많은 시간 불편을 느끼지만 우리는 그것을 불가능이라 단정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고 만족을 느낀다.

그 과정에서 배고픔이나 장애는 조금 다른 방법을 좀 더 빠르게 찾는 촉매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 학교 중학교 녀석들이 이번 주부터 현대무용이라는 또 다른 불편한 영역에 도전장을 던진다.

작년 '안심댄스'의 대성공을 이끈 안은미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또 다른 가능성의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사람들은 또 다시 기적을 바라보듯 눈 못 보는 아이들의 춤사위를 눈물 흘리며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또한 우리에겐 그냥 시간표에 한 과목이 추가되듯 자연스러운 또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또 한 번 불가능이라 여기던 영역이 아이들의 꿈의 영역으로 옮겨오기를 강력히 바란다.

사람들은 원래 완벽하지 않다.

그냥 불가능과 완벽함 사이의 가능태들을 누가 더 많이 가지고 있느냐의 작은 차이일 뿐이다.

불편함을 불가능이라 착각하고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