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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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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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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싶지 않았던 일마저도 호기심과 관심의 욕구가 생기는 것은 사람에겐 본능의 영역인것을 나는 확신한다.

하물며 하고 싶거나 필요한 일에 제한이 생기는 경우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필요도 없겠다.

빠져나갈 구멍 하나 없는 억압은 쥐가 고양이를 물게 할 만큼의 예상 불가능의 반사적 저항을 반드시 동반한다.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친구녀석들의 군대이야기에 초코파이나 뽀글이 라면 따위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스토리가 빠지지 않는 것은 최고조의 식욕사이클을 달리는 그들의 상태와는 어울리지 않는 최소한의 영양소공급이라는 비인간적 억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군발이라 명명된 그들이 20여년간 정립한 이성에 대한 이상형과는 관계없이 이성에 대한 잣대를 국경과 나이를 초월한 기준으로 평준화하는 것도 폐쇄적 공간 안에서 동성끼리 살아야 하는 상태와 무관하지 않음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수백만 중고딩들이 하나같이 공부나 학교를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도 대상이 원래부터 혐오스럽거나 무쓸모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강제적이고 억압적인 시간 소비가 그들에게 자유와 선택의 권한을 박탈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다수가 공감하는 고부간의 갈등이나 직장 상사의 스트레스도 관계의 본질적 문제라기보다는 고압적 권위를 내세운 상위포식자의 억압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광화문이나 종로 같은 유동인구 많은 거리를 다니다 보면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되는 것이 농성천막이고 그들의 외침을 담은 서명운동이다.

전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도 보이고 힘내라는 응원을 보내주기도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 예뻐 보이지 않은 천막들과 때로는 과격하기까지 한 시위의 현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외치는 그들의 목적과는 반대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런데도 왜 그들은 거리로 나오고 자리를 지키고 구호를 외치는 것일까?

난 그것이 바로 환경적 억압으로부터 근거한 어쩔 수 없는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절차적 정당성이나 시민으로서의 품위 따위로는 관철시킬 수 없는 약자들의 요구가 세상을 향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한 그들의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기본적 욕구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누구도 먼지 날리는 도로를 점거하고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 쇠사슬을 묶는 것에 쾌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20살 허우대 멀쩡한 청년이 쵸코파이 몇 개나 라면 한 그릇 따위에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이는 장면을 그의 군복이 설명해 주고 변호해 주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결과적 매우 왜곡되고 삐뚤어질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적용받는 최소시급도 받지 못하는 그들의 상황과 최소한의 행복추구권조차 제한받는 시대적 국가적 상황이 강력한 원인제공인 것을 알기에 우리는 미안해 하고 안타까워 하는 것이다.

광장으로 나온 그들의 이야기도 젊은 군인들의 상황과 많이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으로 느껴지는 권한과 작은 혜택들이 그들에겐 박탈되었을지도 모른다.

시위라는 이름으로 농성이라는 결과적 모습으로만 그들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것은 무작정 군인들을 욕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모두 알게 된다면 우리는 엄청나게 공감하거나 미안해할지도 모른다.

군인들이 그랬고 아이들의 낮은 성적표가 그러했듯 시위 현장의 사람들에게도 들어줄 이야기가 있고 원인을 제공해 준 비정상적인 과정과 환경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고부간의 갈등도 직장 상사와의 충돌도 현상적 결과만으로의 평가는 문제의 상황을 지속시키고 확대하는 촉매제로 작용할 뿐이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우리는 평범함을 박탈당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의무가 있다.

언젠가 현역이었을 노병이 젊은 군인에게 위로를 건네듯 지혜로운 교사가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듯 우리는 거리의 사람들을 불편하게 보기보다 그들을 그곳으로 나오게 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불평등한 차별도 뼈아픈 억울함도 털어놓을 곳도 들어주는 이도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 사회인가?

학생이 교사가 되고 군인이 또 민간인이 되듯 들어줄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사람도 언젠가 들어달라고 외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그들의 소리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갈 때 언젠가 우리에게도 다가오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수많은 밤들을 새워가며 한 글자, 한 글자 적고 나눠 주는 그들의 종이들에 잠깐의 시선을 건네보자.

서명을 하고 힘을 건네고 위로를 전하는 그 시간은 그들을 향하고 있지만 어쩌면 세상을 향하고 나를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