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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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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ducu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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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나의 인관관계가 내 시력의 캄캄한 상황과 큰 상관관계가 없는 것을 보면 그것은 해부학적인 안구의 상태나 혹은 그것과 관련된 기관들의 생리학적 활동성과 직접적인 관계를 논한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그것이 '만남'이라고 하는 물리적 거리의 축소 혹은 그에 준하는 여러 통신수단의 연결횟수를 의미한다면 시각의 장애는 관계의 형성이나 유지 혹은 발전에 부정적 요인이 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 위해서는 그 사이를 이어주는 이동의 수단이 필요한데 시각의 장애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선택할 수 있는 이동의 경우의 수를 현저히 축소시키는 작용을 동반한다.

현재를 기준으로는 운전면허 소지가 불가하므로 자동차를 운전할 수 없고 지팡이나 안내견 스마트폰의 지도어플마저도 완벽하게 세밀한 목적지의 위치를 알려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목적지의 경우 대부분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된다.

버스의 번호를 구별하거나 원하는 종류를 타고 다니는 것은 고도의 재활과 다수의 경험을 필요로 하지만 그렇게 획득한 능력도 익숙한 정류장들에서나 쓸 수 있는 한정적인 때가 대부분이다.

그 때문에 상대적으로 접근이 편리한 지하철역 근처나 익숙한 장소들을 약속장소로 정하지만 매번 만남의 장소를 나의 의지로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시력의 장애로 인한 이동권 불편은 만남의 횟수나 강도를 제한하게 된다.

대학에 다니던 어느 날 메신저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게 되고 또래 친구들 사이에도 트렌드가 되었던 때가 있었다.

같은 장소에 있거나 정해진 사이트에 들어가지 않아도 컴퓨터만 켜면 친구로 연결된 상대와 채팅을 나눌 수 있었다.

입시지옥을 벗어난 새내기들에게 메신저의 단체채팅 기능은 친밀도를 높여주는 초고속 촉매제가 되어주었다.

시간표를 함께 짜고 스터디 모임을 정하는 것부터 미팅을 정하고 맘에 드는 이성에게 구애를 하는 수단으로 까지 메신저는 눈에서 멀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최상의 도구였다.

그러나 당시의 스크린리더 프로그램의 기능은 내가 파릇파릇한 관계의 물결에 휩쓸리는 것을 도와주기엔 너무도 역부족이었다.

여러 명의 대화를 확인하고 커서를 옮겨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입력하고 전송버튼을 찾아서 누를 때쯤에는 이미 주제가 다른 곳으로 옮겨간 후였고 느릿느릿 작동하거나 내용을 빼먹고 읽어주는 프로그램 때문에 늦어지는 내 답변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기는커녕 오해만 높여주어서 직접 마주보고 말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중요한 과제준비나 만남을 앞두고는 나의 채팅속도나 환경에 맞추어서 친구들의 배려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 또한 매번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스크린 리더가 발표되던 어느 날 나도 친구들과 속도를 맞춰가며 채팅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되던 날이 있었다.

소리를 들어가며 동시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입력하고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도 있었다.

대학 새내기의 풋풋한 모임들도 메신저의 뜨거운 인기도 많이 식어버린 이후였지만 뒤늦게 체험한 연결의 기쁨은 나의 채팅창을 해가 지지 않는 곳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SNS가 발달하고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나의 일과 중 많은 시간도 그곳의 이야기들을 듣고 전하는 시간을 늘려가고 있다.

그 공간에서만큼은 나의 시력은 큰 불편함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자주 보지 못하는 지인들과도 소식을 공유하고 안부를 나눈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적어도 그 안에서 만큼은 내 시력의 부족이 마음이 멀어지게 하는 원인으로 작동되지는 않는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은 분명 옛말이다.

이동의 수단도 불편하고 시간적 거리가 공간적 거리를 극복할 수 없었던 그때 그 시점에서는 진리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통신이 발달하고 연락수단과 이동수단이 발달된 요즘 사람들은 마음에서 멀어지지 않을 수 있는 도구들로 인해 그 말의 의미를 점점 체감하지 못게 되어가고 있다.

국내를 넘어서 어느 시점에는 세계가 1일 생활권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메신저의 채팅창을 온전히 소유하던 그날처럼 사람들도 세계를 한 눈에 품을 날도 머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그렇지만 이 시점에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적지 않은 소수들은 이동하고 만나는 방법의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약속을 정하고 장소를 정하는 것도 전보다 분명히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 나의 이동은 대학 새내기 시절의 메신저 창처럼 느리고 불편하다.

시각장애인의 버스이용도 다른 불편한 이들의 대중교통 이용도 새로운 스크리더가 발표되던 그날처럼 조금 더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서로 더 자주 만나고 가까워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문제에 다수가 공감하지 못하고 이질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자주 만나지 못해서 눈에서 멀어졌기 때문은 아닐까?

모두가 편하게 이동하고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인자동차도 좋고 개인비행기도 좋지만 버스부터 지하철부터라도 모두 편안히 이용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만남은 관계의 시작이고 관계는 서로를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약자에게도 소수에게도 동등한 접근을 허락해가는 SNS처럼 우리 사는 세상도 모두가 편히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무 눈에서 멀어져서 너무 마음이 멀어지기 전에 너무 늦기 전에 서로 다가갈 수 있는 이동수단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