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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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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이른 더위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사람들은 체온상승을 저지하기 위해 의복을 간소화하고 수분의 섭취를 늘리는 등의 각자의 생존기술을 발휘한다.

학교 안의 내 제자 녀석들도 요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발휘하는 기술이 있는데 그것은 지친 목소리나 표정 짓기 등으로 아이스크림의 섭취 없이는 더 이상의 정상적 수업진행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신호를 교실 내의 물주 바로 나에게 보내는 것이다.

녀석들의 목적이 달성될 시에는 갈증해소, 체온조절, 바이오리듬의 정상화 외에도 자연스러운 휴강과 진도의 지연으로 인한 시험범위단축의 부가적 효과도 발생하기 때문에 기술의 형태와 완성도도 날이갈수록 진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때마다 대뇌를 컨트롤 타워로 하는 나의 판단능력도 수많은 젊은 뇌들의 연합전선에 어떠한 대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최고수준의 경계태세로 빠른 결단을 요구받는다.

수십년 전 아이스크림 요구자였던 나의 상태를 기억하여 녀석들의 진실성을 파악하고 지쳤다는 신호의 목소리의 파장과 실제 기상의 연관함수식을 고려하여 지폐의 발사여부를 고민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내 결정의 방향은 녀석들의 요구에 못 이기는 척 순응하는 횟수를 늘려가고 있다.

그 결정의 기준은 아주 간단한 근거로부터 출발하는데 지금 이 순간 난 녀석들에 비해 월등하게 우월한 경제능력을 가지고 있고 몇천원의 지출만으로 녀석들의 기분을 급상승시키는 것은 내게 있어 지금이 아니면 주어지지 않는 기회라는 것이다.

몇 년만 지나도 나의 지폐 한 장은 대학생이 되어버린 제자 녀석을 즐겁게 만들어주기엔 너무도 초라해질 것이고 그때 나는 나눌 수 있을 때 나누지 못함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특별히 교육과정의 수행에 있어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나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 사주는 일을 완강히 거절하지는 않는다.

김영란법이라는 거대한 벽이 우리 사이를 가로 막고 있지만 그것은 학급발전기금 조성 등의 귀여운 편법으로 나름대로 극복하고 있다.

동료 선생님들과의 관계에서도 나의 나눔기조는 그 맥을 유지하는 편이다.

기능을 대부분 상실한 나의 눈 때문에 난 많은 도움을 받는 편이지만 시력과 관련 없는 일에서는 내 것을 나누는 것에 인색하지 않으려고 나름의 노력을 다한다.

무거운 짐을 나를 때가 대표적인데 운동 좋아하는 나의 신체능력은 단순 짐 나르기에 있어서만큼은 대부분 교사들에 비해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그것 또한 지속적인 것이 아니어서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진 힘으로 짐 나르기 곤란한 동료를 돕지 않는다면 난 언젠가 세월의 흐름에 얇아진 내 팔뚝을 바라보며 그때 나누지 못한 힘을 뼈저리게 후회할 것이다.

친구들에게도 가족에게도 난 많은 부분 도움을 받지만 의외로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서 내가 가진 많은 것들은 그들을 위해 쓰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이 아니면 내가 나눌 수 있는 많은 우월함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 후회의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능력은 모두 똑같지 않다. 균형 있게 나눠지지도 않았고 같은 방향으로 발달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고 대기의 물질들이 농도가 낮은 쪽으로 확산하듯 나눠지고 베풀어질 때 비로소 균형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많이 가졌다면 그렇지 못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내가 가진 것들이 우월하고 대단한 것이라면 그것의 나눔이 필요한 상대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가지고 있는 무엇도 영원할 수 는 없다는 사실을 가지고 누리고 있는 지금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