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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을 위해서라면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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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에게도 다른 직업군과 마찬가지로 일 년에 며칠 정도의 연가가 주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것들이 사용되어 지지 못 하는 것은 그와 관련된 학생들에 대한 수업권 때문이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시는 우리 어머니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가게 문을 같은 시간에 열고 닫으시는 것도 고객과의 소리 없는 약속 때문이다.

내가 맡은 학생이 아무리 적어도 어머니 가게의 손님이 달랑 한 명만 있어도 출근을 하고 문을 여는 것은 그것이 최소한의 직업적 책임이고 소중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대선과 관련한 뉴스들을 보다 보면 대통령쯤 바라보는 높은 분들에겐 그런 약속과 책임 따위는 큰일 하시려면 잠시 잊으셔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경선에 참여하신 분들의 면면을 보다 보면 수십만은 기본이고 수백만의 시정과 도정을 살펴야 하시는 분들이 연일 광폭행보를 보여 주신다.

우리는 분명히 그들을 투표로 뽑았고 그들을 임명하고 각자에게 해야 할 일까지 구체적으로 부여했는데 그들이 있는 곳도 그들이 하고 있는 일도 우리와의 약속과는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지역을 대표하고 나라를 대표하시려는 분들이라 남다른 능력을 가지신 것은 알겠지만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그 바쁜 와중에 원래의 역할까지 정상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분들에겐 그에 대한 책임도 질책도 크게 쏟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뽑은 일꾼이 우리가 시킨 일은 하지 않고 다른 일만 하는데 일꾼들은 그 대가로 월급도 받아가고 몇몇은 그것을 대가로 적지 않은 연금까지 보장받아간다.

하루만 결근해도 난리가 날 것 같은 나의 상황과 비교하면 참으로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수십 년 꼬박 성실을 증명해야 주어진다는 일반 직장인들의 연금수급과 비교하면 더더욱이 박탈감이 느껴진다.

최근 어느 후보는 국민의 세금이 낭비된다는 말 같지도 않은 핑계로 지역민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어이없는 발표를 했다.

지지율이 급상승한 다른 후보는 국회의원 배지를 내려놓겠다는 것이 대인배의 큰 결심인냥 듣기에도 어색한 사자후를 날리고 있다.

한 나라의 국민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 출마의 결심이 그리 짧은 시간 안에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급작스런 상황으로 대선이 다소 앞당겨지기는 했으나 원래대로 치러진다 하더라도 그들 각자의 임기들이 끝나는 시점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과연 국회의원을 지역의 대표를 대통령 후보로 나가기 위한 발판 정도로 생각하는 것일까?

지역민을 볼모로 생각하고 더 큰 일을 위해서는 그 정도 책임은 중간에라도 화끈하게 버리는 것이 대통령 되려는 자들의 덕목이라도 되는 듯하다.

특별한 국민적 요구로 불가피한 결심을 내렸다는 연설문을 쏟아내는 후보들도 있겠으나 우리는 십여명도 넘는 후보들에게 그런 열망을 보내 준 적이 없다.

그러므로 지역민과의 약속을 져버린 그들에게 작은 면죄부도 줄 필요는 전혀 없다고 본다.

나는 그들에게 눈물 어린 사과를 요구하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요구하고 싶다.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닌 중도의 사퇴는 어느 자리를 막론하고 월급도 연금도 주어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로 인해 벌어지는 재선거 비용도 그들이 내는 벌금으로 운용되었으면 좋겠다.

더 높은 자리 더 큰 일이라는 그럴듯한 핑계로 약속을 져 버리는 것에 익숙한 그들이 또 어떤 핑계로 국민을 져 버릴지 모른다.

관습이나 전례 따위의 핑계가 약속을 져버리는 도구가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을 일삼는 나쁜 지도자 때문에 오늘의 이 사태를 맞이한 슬픈 국민이다.

이제는 작은 약속들이 지켜지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작은 책임들도 끝까지 지켜지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힘 없는 국민들이 지켜야 하는 소중한 양심과 가치들이 힘 있고 권력 있는 그들에게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예외없는 바른 나라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