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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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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ELCHAIR ST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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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계단 높이가 2m 정도로 말도 안되게 높아진다면 어떤 느낌일까?

서점에서 구입한 책의 글씨가 흰색이어서 아니면 1포인트 이하의 작은 글씨여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우리는 매번 휴대용 사다리를 들고 다니거나 특수렌즈를 들고 다니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도 그 정도는 불편할지언정 해결할 방법은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아예 고층건물에 계단을 만들지 않거나 책에 글씨가 적혀 있지 않다면 그때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

아마 당신은 모든 일에 무기력을 느끼거나 혹은 매우 극렬한 저항의식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장애문제를 이야기 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주제 중 하나가 접근성에 대한 문제이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에겐 곳곳에 산재한 턱과 계단들은 우리에게 2m 높이의 계단이 주는 느낌과 비슷한 정도의 난감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서점의 책들은 글씨가 모두 없어져 버린 책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이게 바로 이동권이고 정보접근성이라는 것이다.

어디서 강의 좀 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장애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것이라고 쉽게 말하곤 한다.

그런데 그때의 느낌이 어떤 것일지까지는 예상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냥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으니 주변에 불편한 사람들이 보이면 열심히 도와야 된다는 정도가 일반적인 이해들인 듯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높은 계단을 오를 때 매번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거나 사다리를 들고 다니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계단의 높이를 줄여주는 것이 나을지를 생각하면 답은 좀 쉬워지리라 생각한다.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책들을 읽기 위해 마음씨 좋은 친구들을 찾아다니는 것과 내게도 잘 보이는 글씨로도 책을 만들어 주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지 않을까?

장애를 갖게 된다는 것은 세상의 계단이 커 보이고 글씨가 사라지는 정도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만약 모든 사람이 그때를 대비해서 엘리베이터나 경사로를 곳곳에 만들어 놓고 또 다른 모양의 글자로도 책을 출판한다면 우리는 장애를 마주하더라도 불편함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삶의 모양이 변한 것쯤으로 가볍게 여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크린 리더를 활용해서 인터넷을 하다보면 웹접근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사이트를 자주 만나는데 내게 이런 사이트는 공학박사들이나 이해가능한 기계어 코드들처럼 느껴진다.

개발자들은 고객을 위해 이런 복잡함을 쉬운 버튼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지팡이를 들고 거리를 다니다 보면 어제까지 없던 공사장이나 불법 구조물들을 만나곤 하는데 이것들은 내게는 마치 갑자기 나타난 맹수들처럼 엄청난 공포로 다가온다. 가끔은 그 맹수들이 실제로 나를 물어뜯기도 한다.

만약 도심의 환경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느낌이었다면 도시를 설계한 사람들은 당장 보다 안전한 거리를 위해 특단의 대책들을 마련했을 것이다.

세상은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내가 보는 세상에서는 이정표 없는 길들과 목적지 붙어있지 않은 버스들이 우글거린다.

시력 하나 바뀐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그로 인해 느껴지는 세상은 너무도 불편하게 변해버렸다.

당신이 바라보고 걸어가는 세상도 언제 갑자기 변해 버릴지 모른다.

계단이 너무 커 보이기 전에 돌아가는 편한 길도 만들면 어떨까?

책이 글씨를 모두 삼켜버리기 전에 소리 나는 책도 만들고 컴퓨터의 화면이 복잡하게 변하기 전에 작은 버튼 하나만 달아준다면 또 어떨까?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목적지 모르는 버스들을 허탈하게 바라보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보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접근성을 허락해 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만드는 그것들에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초대의 길을 열어주는 것 그것은 어쩌면 미래의 당신을 위한 초대장일 수도 있다.

너무도 갑자기 너무도 무섭게 너무도 당황스럽게 너무도 답답하게 세상이 변해버리지 않도록 모두 함께 준비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