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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울 게 나이밖에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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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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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모임 뒤풀이 장소에서 우연히 제자를 만난 적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선생에게 스스럼없이 소주 한 잔을 권하던 그 녀석의 자연스러운 태도와는 반대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뻣뻣한 고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가고 말투도 변해 있는 나는 친구들의 핀잔과 놀림의 술안주거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제자와 술이라는 뭔가 불편한 소재들의 결합, 혹은 교사로서의 직업적 책임감 따위로 상황을 핑계 댈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그냥 제자 앞에서의 본능적 허세질에 가까웠던 것 같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지위, 체면, 정신줄마저 내려놓았던 술자리에서 고상한 척하는 나를 다시 돌아 생각해보면 민망하기가 그지 없기까지 했다.

몇 해 전 운 좋게 대학에 들어갔던 제자 녀석의 개선장군 같은 모교방문기가 떠올랐다.

공부도 진로계획도 미래에 대한 설계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녀석은 제도와 상황의 절묘한 결합에 의해 대학생이라는 지위를 얻었다.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긴 하겠지만 후배들 세워놓고 벌이는 일장연설에는 제법 그럴듯한 입시전략들이 들어있었다.

꾸준한 계획수정과 정보수집 그리고 냉철한 부분포기들로 버무려진 대학입시전략은 완벽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 녀석의 과거와는 다른 모양들을 창조해내고 있었다.

자기최면에라도 걸린 것인지 약간의 울먹거림이 섞인 강연은 몇 년 동안 그 녀석을 지도한 교사들마저도 혼란스러우면서도 순간순간 빠져들게 만드는 재주마저 지니고 있었다.

후배들 앞에서 영웅이 되고 싶었던 그 녀석이나 제자 앞에서 만큼은 고상하려 했던 내 모습이나 그냥 커 보이고 싶었고 그냥 난 큰 존재라고 본능적으로 믿고 있었던 것 같다.

몇 달 빠른 생일을 훈장인냥 빠른 몇 년생이라고 강조하는 어린아이들처럼 사람들은 나보다 어린사람 앞에서만큼은 후배 앞에서만큼은 누구 앞에서만큼은 이유 없이 커 보이고 싶고 위에 서 있고 싶고 그런 것 같다.

나라가 온통 어지러운 이때 학생들도 아이들도 앞다투어 시국선언을 내고 거리로 광장으로 뛰어나와 목소리를 내고 있다.

4.19 때도 3.1운동 때도 세상을 바꾼 것은 10대라고 말하지만 뼛속까지 뻣뻣한 교사인 내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들의 선언문과 발언들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이번에도 내가 꼰대였다는 반성들을 하게 되었다.

그 녀석들은 누군가의 선동에 의해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인 그냥 철부지가 아니었다.

수학문제 좀 더 잘 푼다고 영어듣기 좀 더 잘한다고 선생이라고 아이들의 생각마저 사상마저 통제할 권리는 없다는 새삼스런 반성이 들었다.

나라도 세상도 어른들만의 것은 아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의 세상을 지키고 싶은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최소한의 숭고함 권리이다.

어른 된 입장으로 아이들을 지키고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할 의무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나이 많음에 근거한 무조건적인 통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 굳어져버린 고정관념들 그것들로 아이들에게 고압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 노력 없이도 1년이면 한 살씩 늘어가는 그 유치한 훈장들로 고고한 자부심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밤 열 살, 스무 살쯤 어린 제자들의 격 없는 소주잔을 편히 받는 스승이 되고 싶다.

생각을 들어주고 서로를 인정해주는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고 싶다.

사람과 사람 우리가 서로를 그렇게 인정해 줄 때 힘이 모이고 비로소 원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