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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에 웃고 같은 시간에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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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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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와 처음 만났을 때 컴퓨터는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 되어주었다.

글을 쓰고 읽을 수 있었고 독서도 학습교재도 워드로 제작된 파일만 있으면 컴퓨터란 녀석이 모두 읽어내었다.

편지는 쓸 수 없어도 이메일은 주고 받을 수 있고 채팅을 통해서 무언가 동등하다는 느낌을 받는 교류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그건 아무리 노력해도 보통의 사람들만큼 활용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컴퓨터 환경은 몇몇 개인의 역량으로 시각장애인용 프로그램들이 연구되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최신 소프트웨어가 발표되어도 그에 맞는 스크린리더가 개발되는 동안 우리는 아주 오래된 구닥다리 프로그램들을 사용해야만 했다.

다른사람들은 모두 WINDOW를 사용할 때 나는 한참 동안이나 DOS환경에 있었고 인터넷이라는 광활한 정보의 바다에서 사람들이 헤엄치고 있을 때도 PC통신 정도의 작은 우물에서 놀아야만 했다.

독서할 책들도 공부에 쓰이는 교재도 마찬가지여서 베스트셀러도 내가 읽을 때쯤엔 이미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후였고 2000년대에 대학에 다닌 내가 본 책은 80년대 수학의 정석이나 성문기본영어 같은 것들이었다.

물론 그나마라도 볼 수 있고 쓸 수 있게 도와주시는 여러 손길들에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했지만 일반적인 문화나 지식들을 시대의 흐름이나 트렌드에 맞게 공유할 수 없다는 건 늘 진한 아쉬움으로 남고는 했다.

문화도 예술도 지식도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 없이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으나 아무리 큰 감동이라도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에 그 희열을 나눌 이가 없다면 그 가치는 생각보다 많이 퇴색되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관심으로 비장애인들과의 정보접근 시간차가 조금씩 줄어갈 때 나의 환희와 감동이 남달랐던 걸 보면 난 정말로 큰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듯하다.

윈도우를 읽어주는 스크린리더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는 거의 하루 종일 웹서핑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고 여러 자료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마음은 대학 리포트 작업마저 즐거움으로 다가오게 했다.

처음으로 서점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있는 책을 그 목록이 바뀌기 전에 읽었을 때도 화면해설 영화라는 것을 통해서 영화 속 장면을 온전히 이해했을 때에도, 동시대 사람들과 같은 시간 속에서 정서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그 대상이 나의 취향이건 아니건을 떠나서 또 하나의 인권회복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 나의 문화접근권리를 또 한 번 확장시켜줄 이벤트에 다녀왔다.

스튜디오 뮤지컬이란 회사에서 제작하는 배리어프리 뮤지컬 상영이 바로 그것이었다.

같은 공연 같은 장면을 보면서 동시에 웃고 울을 수 있도록 나에겐 작은 수신기가 주어졌다.

회사의 대표이기도 한 고은령 아나운서는 눈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작은 기계 안에서 고운 목소리로 전달해 주고 있었다.

같이 간 동료에게 질문을 할 필요도 동료 또한 나의 이해도를 살피느라 장면을 놓칠 염려도 없었다.

그냥 같은 순간 같은 곳을 보면서 각자의 감정대로 감상하면 그걸로 되었다.

한 사람의 눈과 한 사람의 목소리가 수십 수백명의 시각장애인들에게 셀 수 없을 만큼의 웃음과 감동을 되찾아주고 있었다.

시각장애인으로 20여년을 살면서 세상은 내게 많은 부분에서 동시접근을 허용해 주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아쉬운 것은 그것들의 대부분은 컨텐츠의 제작자가 제공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화면해설 영화도 복지관이나 시각장애 후원단체에서 제작하고 도서나 강의도 시각장애와 관련돼 기관 종사자들의 재가공으을 통해서야 음성컨텐츠 등으로 다시 태어나고는 한다.

큰 돈이나 큰 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작품을 만들어낼 때 시각장애인에 대한 작은 고려가 없다는 이유 하나로 다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거쳐야만 내게도 전달 될 수 있는 것이다.

몇몇 나라에서는 소프트웨어가 개발될 때 의무적으로 접근성에 대한 지침을 지켜야만 한다고 들었다.

영화관이나 공연장 스포츠 경기장에서 까지도 자체적인 해설시스템이나 인력이 갖춰진 나라에 대한 사례들도 들었다.

뉴스를 보다 보면 대한민국은 IT강국이고 세계적인 한류문화를 가진 문화강국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작은 기술 약간의 관심으로 문화소외계층이 없는지 지식접근성을 차단하고 있지 않은지도 살폈으면 좋겠다.

초중고에서 필요한 교과서도 관련한 참고서들도 시각장애인들이 볼 수 있는 형태로 서점이나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수십억 수백억을 들여 제작한다는 영화들 나도 작은 이어폰 하나 있으면 세심한 설명 들으면서 볼 수 있도록 제작단계에 의무적인 절차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TV 수신료 면제는 안 해줘도 좋으니 혼자서도 모든 장면들이 이해되도록 공영방송만이라도 모든 방송 화면해설을 탑제했으면 좋겠다.

스크린리더 프로그램만 있으면 인터넷 쇼핑도 웹서핑도 어디도 지장 받지 않도록 웹접근성 지침에 강력한 강제조항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욕심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이상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으나 배리어프리 뮤지컬이 그랬듯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작은 생각의 변화로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고집쟁이 미치광이로 불렸던 스티브 잡스 덕분에 세계의 시각장애인들은 피처폰에서도 누리지 못했던 편안한 정보접근을 누리면서 살고 있다.

한 사람의 노력으로 수백명의 시각장애인들은 뮤지컬을 보고 한 사람의 끈기로 수천만의 시각장애인들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고은령 아나운서 같은 사람이 세상에 스티브 같은 사람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