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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CCTV로 하루 종일 나를 바라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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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지팡이 보행을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께서는 흰지팡이는 시각장애인에게는 눈과 같은 것이니 소중히 다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조금 지팡이를 들고 조금 장난이라도 치다가 걸리면 매까지 꺼내시고 엄하게 호통치시던 선생님이 그땐 괜시리 깐깐한 고집쟁이로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고 실제 생활에서 지팡이를 사용하게 되면서는 그때 그 말씀들은 하나도 과장되지 않음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냥 보면 하얀 막대기로 보일지 몰라도 내가 혼자 낯선 곳을 찾을 때 이 녀석은 항상 내 앞에 서서 위험한 장애물을 알려주기도 하고 길을 찾을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내기도 한다.

만약 갑자기 지팡이가 없어지거나 부서진다면 나의 품위 있는 보행은 꿈도 꾸지 못할 뿐더러 어쩌면 겁이 나서 몇 발짝 떼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가 언젠가의 선생님처럼 지팡이를 향한 장난에 극도의 예민한 감정을 보이는 건 어느 순간 이 녀석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나의 일부이고 나의 눈이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눈이 많이 나쁜 사람에게서 안경을 빼앗는 느낌을 상상한다면 아주 조금은 비슷한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고속버스를 타려는 휠체어 장애인들과 버스회사 사이에 벌어진 마찰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휠체어는 화물칸에 넣고 승객은 직원들이 들어서 좌석에 태워주겠다는 회사 측에 맞서 장애인들은 휠체어와 함께가 아니라면 탑승할 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것 같다.

이것도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단순한 떼쓰기나 고집처럼 보였던 듯 불편했던 상황에 불만을 표출하는 여러 댓글들도 보았다.

그러나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고서는 무엇 하나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믿게 되어버린 그들의 간절함도 조금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휠체어도 그들에겐 그냥 바퀴 달린 의자가 아니라 한 지체이고 한 몸인 것이다.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 입장에서야 번쩍 들어서 옮겨주는 것이 승객에게도 편하고 운행에도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이 배려이고 희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어느 순간에도 내 의사와 반하는 친절은 폭력이 될 수 있다.

길을 가다 불편해 보이는 여성이 있다고 해서 내 맘대로 업으려고 하거나 들어 안는다면 어떻겠는가?

겪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평소에 잘 보거나 함께하기 어려운 소수자들의 생각들에 공감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팡이 하나에 혹은 바퀴달린 쇳덩이 하나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언제까지나 불편한 장면이고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지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느끼려고 노력한다면 조금은 비슷한 느낌이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어느 국회의원 한 분이 인권의 보호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모든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에 CCTV를 설치하는 법안을 내놓았나 보다.

학부모들도 교사들도 입법에 참여한 다양한 사람들도 각자의 논점을 내세우고 있어서 접점을 찾기가 쉬워 보이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그 인권이라는 것 휠체어나 지팡이처럼 어느 순간에도 당사자의 감정상태가 느끼는 방향으로 존중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일반학교의 아이들에게는 못하는 것을 장애아이들에게만 편히 들이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연히 극도로 반대하고 나설 아이들의 목소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노인이나 여성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마다 CCTV를 설치하자고 주장하지 못하는 건 그것 자체가 또 다른 인권침해라고 반대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말이다.

지적능력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청각, 시각, 지체 장애아이들의 극렬한 반대는 논외로 하더라도 의사표현 못하는 발달장애아들은 국회의원 맘대로 카메라 달고 지켜봐도 된다는 말인가?

사생활 훤히 드러내고 일거수 일투족을 발가벗긴듯 하루 반나절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해도 장애아이들은 안전하기만 하면 된다는 발상은 누구의 머리에서 시작된 것인지 궁금하다.

혹시 교사의 교권도 아이들의 프라이버시도 무시할 만큼 특수학급의 현재상황이 매우 급박한 위기상태라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심각한 범행의 우려가 있는 교사와 우범지역인 학교에서 얼른 아이를 격리시키는 게 더 우선적이고 효율적인 조치 아닐까?

극도의 위험 상황이 느껴지는데 원인은 제거하지 못하고 열심히 지켜보는 것이 무슨 대책이고 예방인지 난 도저히 모르겠다.

사방에 CCTV를 설치하고 무얼하는지 무얼 먹는지 무슨 실수를 하는지 무슨 행동을 하는지 지켜볼 수 있는 자격은 부모에게도 교사에게도 그 어떤 누구에게도 없다.

제발 입장 바꿔서 한 번만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누군가 내가 위험해 보인다고 하루 종일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나의 인권이 다르고 불쌍한 장애인들의 인권은 다르다고 제발 멋대로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아직도 그 법안이 정말 훌륭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집에 먼저 CCTV를 달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당신 딸도 당신의 아내도 당신마저도 어떤 위험에 빠질 줄 아무도 모르는데 그 좋은 것을 왜 먼저 스스로 시행하지 못하는가?

지하철에도 수영장에도 국회의원실에도 위험하거나 범죄의 우려가 있는 모든 곳에 CCTV를 설치한다면 그 땐 공평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날만 되면 제멋대로 찾아와서 카메라 들이대고 목욕시키고 원하지도 않는 기념품들 들이대면서 인증샷 날리고 필요하지도 않고 받고 싶지도 않은 도움들에 스스로 취해 있는 그런 종족들 이제는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인권의 보호! 안전한 교실! 과연 누구 입장에서 생각한 것인지 곰곰이 다시 생각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흰지팡이에 보내오던 그 시선들처럼 휠체어를 바라보던 생각들처럼 당신의 판단은 이번에도 그들의 바람과는 너무도 다르다.

우리 아이들은 말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의 언어로 부단히 이야기 하고 있는데 당신의 언어로만 들으려고 하니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것이다.

정말 인권을 소중히 여긴다면 아이들이 걱정된다면 눈을 맞추고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찬찬히 듣는 것부터 시작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