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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현대무용에 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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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의 좌우명은 '하면 된다'였다. 언젠가부터인지 누구에게 어떤 교육을 받고부터인지는 몰라도 포기라는 건 내게 있어 상황불문하고 나쁜 것이었고 비겁한 것이었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때로는 고집 세고 무모하고 이기적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시각장애인으로서 살면서 본능적인 저항이기도 했던 것 같다.

혼자 걷고 혼자 생활하고 혼자 여행을 떠나고 혼자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내겐 위험해서 안될 것 같다는 걱정이 따라붙었다.

수학을 전공하고 대학을 정하고 진로를 결정했을 때도 현실을 몰라서 그런다는 회유와 설득이 늘 따라다녔다.

걱정해 주시고 생각해 주시는 분들께는 미안했지만 그때마다 고집불통이 되지 않았다면 내 삶에 있어서 너무 많은 부분 포기하고 기계처럼 살아야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런 나도 어른이 되고 교사가 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계를 정하고 편한 길을 권하는 뻣뻣한 조언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되도록 제자들의 꿈을 응원하고 지원해주고 싶다는 맘을 가지면서도 새로운 길 색다른 도전을 고민하는 녀석들을 보면 걱정이 앞설 때가 종종 있다.

일본에서 시각장애인 화가가 있다는 소문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지만 우리 아이들이 오케스트라를 만든다고 할 때도 내 머릿속에 현실적인 성공의 확신은 없었던 것 같다.

잔존시력이 있는 저시력 화가일 거라는 의심을 하기도 했고 안 보이는 것 치고는 좀 하네 정도의 소리를 듣는 동정 받는 감동악단을 상상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직접 일본인 화가를 만났을 때도 완성된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처음 들었을 때도 난 그저 내 유치한 한계짓기를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전혀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몇 가지 도구들만 사용하면 훌륭한 작품전시회를 할 수 있었고 악보 전체를 암보한 오케스트라의 선율은 내 마음을 울리기에 한 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특별한 경험을 하고 나서도 우리 아이들이 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할 때도 뮤지컬을 준비한다고 할 때도 맘을 열어 찬사를 보내는 것은 그럴듯한 결과를 보기 전까지 매번 어려웠던 것 같다.

내 자신에겐 언제나 도전의 문을 열어주면서도 제자들에겐 온갖 걱정만 늘어놓는 걸 보면 나도 그저그런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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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나의 걱정덩어리 제자녀석들이 또 한 번 깜짝 놀랄 만한 새로움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현대무용' 쉽게 말하면 예술적 막춤에 출사표를 던졌다.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춘다는 것 이건 시각장애인에게는 쉽지 않은 것 혹은 불가능한 것으로 꼽아왔던 또 하나의 그것이었다.

왜인지도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막혀있던 그 벽을 이 녀석들이 또 한 번 깨려고 하고 있다.

처음 프로젝트 계획을 들고 직접 안은미 선생님이 찾아오셨을 때만 해도 내게 그 제안을 받아들일 마음은 거의 없었다고 생각하는 게 맞았다.

대단하신 분이라는 건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 놓은 이후였지만 종종 찾아와서 시각장애 아이들을 싸구려 감동의 도구로 쓰려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분도 그런 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무엇보다 과연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대화를 나눌 때도 초면이었지만 불신에 가득찬 질문들을 쏟아내었다.

안될 것 같은 이유를 설명하기도 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무례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신기하긴 했지만 제자들을 아무에게나 소개시켜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안 선생님에게서는 확신이 보였다.

다년간 무모함에 부딪혀서 작품을 만들어 온 내공 같은 것이 느껴졌다.

무용 같은 건 털끝도 모르는 젊은 교사에게 섬세한 설명한 당당한 포부를 밝히실 때 이분에게는 한 번 아이들을 맡겨봐도 되겠다는 믿음 같은 것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뭔가에 이끌리듯 승낙을 하고 최대한의 인맥을 동원해서 참가자들을 소개해 드렸다.

소개해드리기는 했지만 물론 그전부터 무용 관련 일을 했던 참가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시각장애인들 중 그런 사람을 찾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냥 관심 많고 의욕 넘치는 것을 기준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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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은 생각보다 혹독했나 보다. 하루하루 전화를 받을 때마다 제자들은 재미는 있는데 너무 힘들다는 하소연을 전해왔다.

하루 다섯 시간도 넘는 연습을 매일 하는 강행군 속에서 조금씩 자신감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나름 안도하며 무용이야기는 잠시 잊고 있었다.

개학을 하고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쯤 팜플렛과 초대장이 날아왔다.

아이들은 기대에 찬 웃음을 짓고 있었고 무대는 이미 완벽히 준비된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 역시 가슴도 뛰고 기대하는 맘이 크지만 이 순간도 어쩔 수 없는 꼰대는 쓸데없는 걱정들이 더 많다.

안은미 선생님은 성공을 확신하고 계셨다. 이미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 것도 같았다.

세계 최초 시각장애인 현대무용이 무대에 오를 날이 정말 며칠 남지 않은 것이다.

두려움에 가득 찬 부끄러운 선생도 힘차게 응원을 보낼 것이다.

이번 기회에 난 또 부끄러워지기를 원한다. 내 생각들이 모두 뻣뻣한 고정관념이었다고 또 한 번 반성하게 되기를 원한다.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도전들이 있었기에 많은 것이 바뀌고 많은 사람들이 편한 길을 선물받았다고 생각한다.

전에 없던 새로운 개척자들의 탄생! 많은 분들이 함께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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