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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내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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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작은 제목은 '시작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인데 처음 실명했을 무렵의 일들을 지금의 시선으로 풀어내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견딜 수 없을 것만 같고 시간이 멈춰 있는 것만 같던 그 때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는 나를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과거를 닮아 있을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시행착오를 줄여주려 과거에 집중하다 보면 때로는 그때의 아픈 느낌들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기고된 글을 자랑스럽게 읽어내시던 어머니도 그때가 떠오르시는지 살짝 목소리가 울리신다. 많이 힘드셨을 것은 알지만 그 크기는 몇 십 년 지난 지금도 난 짐작할 수가 없다.

어머니가 그 시절 이야기로 무거웠던 입을 여셨다.

"이젠 진짜 많이 지났으니까..."로 시작되는 회고는 아직도 털어내지 못한 묵은 잡념마저 내려놓으시려는 듯 씁쓸한 웃음마저 동반되고 있었다.

그땐 웃는 사람은 웃는 대로 우는 사람은 우는 대로 하나같이 우리 가족만 쳐다보는 듯 느껴지셨단다.

비웃는 것만 같고 동정하는 것만 같은 사람들 속에서 작은 선물들마저 모욕으로 느껴지셨단다.

도움도 응원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극도로 거칠어지고 날카로워진 어머니에겐 그 어떤 감정도 호의로 받아들일 힘이 남아있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도 모두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치료를 이야기하고 요양을 권해도 희망과 기대만큼 의심과 불신도 함께 커져만 갔다.

갑자기 영어노래를 무작정 외우고 닥치는 대로 녹음도서를 읽었던 것도 학교 다니지 못하고 있는 나를 누가 얕보지나 않을까 하는 괜한 충동들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머니의 경계와 나의 의심들과는 달리 우리를 비웃을 생각도 무시하거나 동정할 마음도 없었다.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웃고 있었고 그냥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두 변하지 않았는데 내 안의 자격지심이 세상을 왜곡하고 삐뚤어뜨려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약해졌을 뿐인 내 눈 하나 때문에 나 스스로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문제는 내 안에 있던 것인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신문을 보다 보면 그때의 나처럼 곤두선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심심하면 논란이고 한 줄 걸러 갈등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높은 윤리의식을 가졌다고 들이대는 잣대는 세상 다수를 파렴치로 몰아세운다.

인권보호도 여성운동도 장애운동도 정치마저도 논리와 지향점은 다 좋다.

이것도 저것도 다같이 잘 살자고 하는 것 아닌가?

문제의 본질도 보기 전에 상대가 소속된 집단이 어디인가부터 확인하고 나와 이질적 소속인 것이 확인되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고 물어 뜯는 건 궁극적 목적마저 상실한 듯 보일 때가 많다.

인간적이지도 않고 용서할 가치마저도 없는 몇몇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마저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작은 실수들 혹은 잘 몰라서 저지른 과오들을 향해 의도한 바 없음을 뻔히 알면서 단칼에 단죄하라고 떼거지로 달려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실수투성이의 인간이다. 언제든 완벽하기는 힘들다.

그러기에 용서하고 고쳐가고 타이르고 하는 것 아닌가?

어쩌면 문제는 스스로에게 있을지 모른다.

내 안의 피해의식이 내 안의 작은 상처들이 세상을 경계하고 모두를 적으로 바라보게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적이라고 느끼고 공격하고 있는 그들은 실제로는 우리를 해할 의도도 어쩌면 특별한 관심조차도 없을지도 모른다.

담담하게 돌아보자.

나만 바뀌면 우리 모두가 좀 더 여유롭고 넉넉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