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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 Headshot

드러내기와 덮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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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tterstock / Ger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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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애가 특별할 것 없는 작은 불편함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장애는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구별의 기준도 아니라면서 강연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내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 중 하나는 "너는 보이는 사람 같아"이다.

의식적으로 그런 말을 듣고 싶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듣게 되면 슬쩍 기분 좋아지는 말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통상적으로 장애인처럼 보인다는 말 속에 들어있는 왜곡되고 삐뚤어진 시선이 싫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특별히 밝힐 필요가 없다면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 더 솔직한 맘이기도 하다.

얼마 전 미용실에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레 팔을 내어주고 안내를 해 주는 친절한 미용사 분에게 감사하다는 표현보다 어떻게 내가 안 보이는 것을 알았을까를 궁금해 했을 정도이니 나조차도 장애를 드러낸다는 게 아직 그리 자연스럽고 편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적당한 도움을 구하거나 약간의 배려가 필요할 때 당연히 알려야 하는 불편함임에도 낯선 사람 낯선 장소에서는 한 번씩은 쭈뼛거리게 되는 것 같다.

중도에 우리학교로 전학을 오는 학생들 중에도 그런 친구들이 종종 있는데 책에 얼굴을 가까이 대는 것이 싫어서 보이는 척을 하기도 하고 지팡이 들고 다니는 게 싫어서 여기저기 상처를 달고 다니는 녀석들도 있다.

뻔히 드러난 장애임에도 장애를 드러낸다는 것은 장애를 인정하는 것과는 또 다른 힘든 과정인 것 같다.

얼마 전 우리학교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학생이 전학을 왔다.

눈이 안 보이는 것도 힘든데 휠체어 까지 타야 하니 이래저래 보통 불편한 게 아닌 듯했다.

화장실 가는 것도 식당에 가는 것도 이동수업을 하는 것도 그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게 그리 마음 편한 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제법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은 친구였는데도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를 빠지는 일이 많아졌다.

정상등교를 하는 날도 일찍 집에 가는 일이 많아서 학교진도를 따라가기가 버거워 보였다.

강당이나 운동장에서 행사가 있는 날이면 당연히 불참이었고 안타깝긴 했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도 전화로 수학 몇 쪽 보충해 주는 것 말고는 없어 보였다.

다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친구들과의 관계는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다는 것이다.

조금 내성적이긴 했지만 밝은 친구들 속에서 생활하면서 웃는 일도 농담도 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방학을 앞둔 축제날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물론 내 입장에서 놀라운 일이었겠지만 강당행사에서도 보이지 않던 그 녀석이 무대에서 친구와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최종성적 2등이라는 노래실력도 당연히 놀라웠지만 나의 박수의 의미는 한 발자국 더 나와준 용기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진짜 멋진 일은 수련회에서 일어났다.

누구의 힘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련회까지 온 것도 고마운데 장기자랑 무대에까지 올라와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깜짝 놀란 건 세 녀석이 부르고 있는 노래가 걸그룹의 댄스곡이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무대가 꾸며지고 있을까를 궁금해 하는 나에게 동료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을 때 나는 눈물마저 핑 돌 정도로 감동의 박수를 쳐야만 했다.

세 녀석이 모두 의자에 앉아서 율동을 하면서 노래 부르는 모습! 그 녀석들은 친구만큼 낮아져서 같은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불편함을 드러내고 당당히 나와준 녀석의 용기 그리고 그 녀석이 나올 수 있게 옆에 있어준 친구들의 소리없는 격려들 그리고 불편함을 자연스러움으로 티 나지 않게 덮어 준 예쁜 생각들이 최고의 무대를 만들고 있었다.

시상이 따로 없는 축제의 밤이었지만 내 맘 속의 1등은 그 녀석들이었다.

함께 하는 세상! 그것은 불편함을 드러내는 용기 있는 사람들과 그것을 아무렇지 않은 듯 덮어주려는 이웃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