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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에 대처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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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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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어느 세미나의 발표자로 초대된 적이 있다.

격식을 갖춰야 하는 모임은 학생이었던 내겐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던 터라 꽤나 긴장을 했던 것 같다.

며칠 전부터 한 벌밖에 없는 정장을 다려놓고 구두도 손질하고 넥타이 매는 법도 몇 번이나 복습을 했다.

가방도 정장스타일에 어울리는 것으로 빌려놓고 머리까지 다듬고 나서야 조금 편안해진 맘으로 약속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뻣뻣한 새 구두와 익숙지 않은 정장의 느낌, 답답한 넥타이까지 여전히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불편한 상태였지만 최선의 준비들로 무장했다는 자부심으로 진지하고 무거운 공기들에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었다.

발표 순서가 되고 최대한의 자신감을 담아 나름 만족할 정도의 마무리를 하고 내려올 때쯤에는 제법 여유에 거만을 더한 미소까지 띄고 있었다.

개별적 질문들까지 그럴듯하게 답변하고 어린 발표자에 대한 칭찬들이 이어질 때 나의 어깨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었다.

평소 친분이 있었던 교수님께서는 껄껄 웃으시면서 나의 패션에 대해서까지 이런저런 감탄들을 늘어놓으셨다.

과찬이라며 손사래를 치고는 있었지만 속으로는 준비에 대한 당연한 피드백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머리부터 아래로 내려오던 교수님의 패션평가가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도 코디를 하나봐요' 하는 약간 의아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아뿔사! 양말~' 그게 문제였다.

여기저기 신경을 쓰느라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급하게 나오면서 신은 양말이 문제였다.

실수로 신고 나온 같이 사는 친구의 양말! 하필이면 그 녀석의 패션이 매우 화려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까만 정장과 까만 구두 까만 가방들 사이에 샛노란 양말이라니!!!

파격적이라면서 웃으시던 교수님의 묘사가 이어지면서 내 얼굴은 양말보다 더 노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 발만 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나에게 보내주던 가벼운 웃음소리들이 전부 양말 때문인것만 같았다.

세미나 뒤로 이어진 식사자리는 하필이면 신발을 벗어야 하는 자리 나는 그날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문 모르는 친구 녀석에게 몇 무더기의 원망을 늘어놓고 나서도 양말 트라우마에 사로잡혀서 아침마다 몇 번이고 양말을 확인하는 습관을 한 동안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스스로 거울을 보지 못하는 나는 뭔가 서두르는 아침이면 한 번씩 그날처럼 실수를 하고는 한다.

나름 구분을 해 놓는데도 급히 챙겨 입고 나가다 보면 장례식장에 빨간 넥타이를 매고 가기도 하고 의도치 않게 색이 다른 정장 상의와 하의를 입고 나가기도 한다.

짝이 다른 양말은 물론이고 한 번은 양쪽 발에 서로 다른 신발을 신고 나간 적도 있다.

이상한 것은 그런 일들은 어려운 자리 어려운 분들 앞에 가야 할 날에 주로 나타나고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그런 상황을 알려주는 용기 있는 분들은 꼭 모든 상황이 끝난 이후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고 다양한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위치가 되면서 자연스레 늘어난 옷들 덕분에 나의 실수 가능성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 같다.

다행인 것은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내 자세가 조금씩 유연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뒤집어 입은 옷을 지적하는 분에게는 세탁기가 고장 나서 빨래를 못해서 반대로 입어보았다고 말하기도 하고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을 신었을 때에도 난 평범한 게 싫다고 농담으로 응수하기도 한다.

뻔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부단히 노력해도 한 번씩 벌어질 수밖에 없는 내 실수들에 대한 나의 너그러움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예상치 못하게 부끄러운 상황을 맞기도 하고 갑작스레 당황스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건 그의 전부도 아니고 그의 의도도 아닌 그냥 실수일 뿐이다.

작은 인간미가 새어 나왔다고 느끼고 여유 있게 웃어 넘길 수 있는 부분들이기도 하다.

실수로 위축될 필요도 없고 누군가를 평가할 필요는 더더욱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구멍난 양말을 어머니께 들키고 말았다.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께 허허 웃으면서 괜찮다고 대답해 드렸다.

너무 멋진 부분이 많아서 사람들이 거기까지 볼 시간도 없다며 농담을 건네는 내가 나 스스로 기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은 실수를 지적해 주는 사람들이 너무 고맙다.

볼에 묻은 고추장을 알려주는 사람도 흐트러진 머리칼을 알려주는 사람들도 너무 감사하다.

작은 실수! 우리 모두가 서로의 것들을 너그러이 웃어주고 스스로의 것들에 여유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조금 더 넉넉한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