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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문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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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 Images / Ve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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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사를 정말 많이 했다.

어릴 적엔 아버지의 전근 덕분에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고 최근엔 쉽게 자리 잡지 못한 나의 직장 때문에 또 몇 번의 이사를 경험해야 했다.

한 번씩 이사를 다닐 때마다 가장 힘든 것은 언제나 사람과의 이별인 것 같다.

더 좋은 곳으로의 동경도 새로운 만남과의 설렘도 짙은 인연들과의 짠한 그리움을 쉽사리 덮지 못하는 것은 삶의 본연의 가치가 사람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아주 오래 전 서울로 전학 오던 첫날 처음 보던 아파트 숲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을까도 꽤나 두려운 일이긴 했지만 언제나 곁에 있던 든든한 친구들이 없다는 건 몇 배나 가슴 횡한 두려움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쌍문동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산지도 벌써 7년이 다 되어간다.

차도 많고 골목도 복잡스런 시장통 한 귀퉁이에 사는 내가 하얀 지팡이 짚고 다니면서도 특별한 탈 없이 잘 살고 있는 건 역시나 정 많은 이웃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침마다 동네 어귀로 인사 나오시는 구의원 아저씨는 지나는 누구라도 날 우습게 볼까 염려라도 되신다는 듯 "선생님 출근하시네요. 방학은 아직 멀었나요?" 하며 내 직업이 교사라는 걸 몇 번이고 홍보해 주신다.

지하철 역 요구르트 아주머니는 내 발길이 조금이라도 삐뚤어지면 물건 다 팽개치시고 내 안전에 온 몸을 던지시고 인심 좋은 쭈꾸미집 아저씨는 눈이라도 내리면 우리집 앞부터 먼저 챙기시느라 가게 앞엔 눈이 쌓이는지도 모르신다.

껍데기집 사장님은 바쁜 저녁 시간에도 고기 구워주시는 것도 모자라 쌈까지 챙겨주시고 선술집 이모님은 내가 주문한 메뉴를 잊을 정도로 이것저것 챙겨주시면서도 더 잘해 주지 못해 미안해 하신다.

어쩌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어디선가 나타나신 치킨집 아저씨가 우산을 챙겨주시고 낯선 택시라도 타고 귀가하는 날엔 아랫집 호프집 사장님과 사모님이 골목 밖까지 뛰어 나오셔서 팔짱을 끼신다.

안 보이는 눈으로 길을 걷는다는 건 아무리 익숙한 곳이라도 늘 위험하기도 하고 조금은 불편하기도 하다.

갑자기 공사를 하기도 하고 비가 오면 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눈이 오면 바닥의 랜드마크가 모두 사라질 때도 있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장애물의 등장이지만 쌍문동 거리에서만큼은 진한 사람향기들 덕분에 어디라도 편안하게 뛰어라도 다닐 수 있다.

일 년에 몇 번 찾아뵙지 못하는 나를 단골이라며 여기저기서 안내의 손길을 내밀어 주시는 동네 어르신들 덕분에 우리동네 쌍문동에서만큼은 난 장애 없는 장애인으로 살아간다.

시간이 지나면 난 또 어디론가 이사를 갈 수도 있고 또 다른 좋은 인연들과 만날 수도 있겠지만 무척이나 오랫동안 이 동네 이 느낌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시대 요즘세상에서 정말로 찾기 힘들다는 이웃의 가치를 알게 해준 쌍문동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더 많은 동네 더 많은 사람들이 이웃의 향기를 느끼고 살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