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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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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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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면 웃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땐 내가 나름 유머감각이 있다는 깊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친구들은 그냥 내가 좋았던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때의 연애사들은 아스라한 추억이 되었지만 누군가에게 웃음을 줄 수 있었던 장면들은 지금 기억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좋은 기억들인 것 같다.

엄마와 아기가 그렇고 결혼식장의 신혼부부가 서로에게 그러하듯 서로에게 웃음이 된다는 것 만큼 기분 좋은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나를 보고 웃는 사람보다 우는 사람이 몇 배는 더 많은 것 같다.

강연을 다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아팠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 우는 사람들은 그래도 이해가 된다.

실수담을 이야기하면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하고 울고 농담이라도 하면 저렇게 이야기 할 때까지 얼마나 가슴 아픈 시간들을 견뎌왔을까 하면서 운다.

공연을 다녀도 슬픈 노래는 슬픈 노래대로 기쁜 노래는 또 기쁜 노래대로 나름의 생각들을 덧씌우고 울곤 한다.

"너무 감동적이었어요."라는 감사한 표현들로 인사들을 하시지만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그냥 재미있었다는 정도이다.

난 그리 슬프게 살지도 않지만 감동이란 말을 듣기엔 너무 민망하게도 평범하게 살고 있다.

난 장애도 가벼운 소재가 때로는 웃음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릴 적 영구나 맹구 같은 캐릭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 어떤 사람들은 발달장애인을 희화화한다고 항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들의 평소모습이 대부분 그런 것 아닌가?

포레스트 검프나 마라톤처럼 잘 하는 부분들만 보여주는 것은 괜찮고 일상의 부족한 부분들은 보여주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난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무대 위의 연사일 때나 노래를 부를 때의 모습도 나이지만, 떨어뜨린 물건 하나를 찾기 위해 바닥을 더듬어야 하는 것도 나이다.

무대 위에 나를 보고 환호하거나 감동한다면 떨어진 물건 찾고 있는 내게도 편히 "이것도 못 찾아?" 하면서 웃으면서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장애는 쉽게 말하거나 재미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성역이 아니다.

뻣뻣하게 굳어있는 배려나 생각들은 오히려 장애를 어렵고 슬픈 소재로 각인시키고 비장애인은 언급해서도 안 되게 구별짓는 고리타분한 고집이 된다고 생각한다.

폄하하거나 조롱할 의도가 아니라면 장애도 얼마든지 유머의 소재로 열어놓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에게 조심스러운 대상이 된다는 건 차별받는 것만큼이나 불편한 일이다.

더 이상 사람들이 나를 보고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 감동보다는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안 보이는 것, 안 들리는 것, 잘 못 걷는 것, 그것들 모두 농담의 소재로 삼아도 아무도 불편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