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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서는 안 될 일, 써서는 안 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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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PAPER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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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섬마을에서 참으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

언론들은 앞다투어 끔찍했던 그 날의 일들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여교사 성폭행 사건'이라는 저급한 타이틀을 찍어냈다. 흡사 저급한 야설책이라도 되는 듯 장면묘사도 단어선택도 점점 도를 넘어서는 듯했다.

몇몇 언론에서 자정의 노력을 하자면서 가해자 중심적인 사건 언급을 하자고 하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진 듯 보인다.

쉽게 생각하면 여론을 모아 재발을 방지하자고 하는 것처럼 볼 수도 있겠지만 이제 사람들은 섬마을의 여교사를 떠올릴 때마다 자연스레 끔찍한 범죄의 가능성을 함께 떠올리게 될 것이다.

정부의 대책이라도 보도되는 내용들 또한 여교사의 남교사 대체 배치 따위인데 마치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 피해자가 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떠드는 것 같다.

피해자의 행실이나 주변 상권을 걱정하는 생각없는 인터뷰마저 여과 없이 방송되는 걸 보면 도대체 언론은 얼마나 더 싸구려 장사를 하고 싶은지 씁쓸하기만 하다.

취업이 어려워지고 경제가 팍팍해지면 어김없이 뉴스에서 등장하는 장면은 스펙쌓기에 열중하는 청년들이다.

부동산 값이 오르고 가계부담이 더욱 무거워졌다는 기사에는 심심치 않게 살림살이가 어려운 장애인이 언급된다.

미디어의 힘이란 생각보다 무서워서 사람들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다가도 반복되는 보도들에 노출되다 보면 각인효과라는 덫에 걸려 버리는 것 같다.

이 시대 청년들도 스스로의 적성을 찾고 싶고 각자의 원하는 꿈을 갖고 싶어한다.

비전도 보이지 않고 재미도 없는 자격증 획득에 그 누가 목을 매고 싶겠는가?

그들을 그럴 수밖에 없는 곳으로 내모는 사회의 시스템이 정말 근본적인 문제가 아닌가?

가난해지고 싶고 번듯한 직장 따윈 관심도 없는 장애인도 난 거의 없다고 본다.

그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실제로 유의미할 만큼 도드라지는 것이라 하더라도 난 그 원인은 그들의 의학적 손실상태보다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장벽들에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청년 장애인인 나의 간곡한 외침에 비해 신문과 방송은 너무나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어른들은 청년들을 자립심도 꿈도 없는 나약한 세대라고 혀를 찬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비친 장애인들의 모습은 자연스레 경제적 빈곤 더 나아가 세금 먹는 하마쯤으로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아주 어릴적부터 글쓰기를 배운다.

주제를 정하고 제목을 정하는 것이 글에 있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글을 쓰는 기자님들이 그런 것 따위를 모를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펜 몇 번 굴리는 작은 움직임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한다.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느끼는 여성들과 그런 여성들에 대한 적의를 감추지 않는 남성들과의 갈등도 뿌리 깊은 지역감정이나 세대간의 불협화음도 언론이 그 원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생각하기도 더러운 피해자의 쓰린 아픔을 가십거리 기사로 써 대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짓거리인지 글 쓰는 그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낚시 바늘 던지듯 뿌려대는 자극적인 제목들이 사람들의 머리 속을 얼마나 삐뚫게 비틀어대고 있는지 그들은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기사 조회수나 방송시청률에만 눈이 먼 싸구려 장사는 언론인이라는 타이틀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세상을 보는 창을 열어주는 양심 있고 정의로운 기사들과 자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