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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술집에서 만날 수 있는 '귀여운 진상' 5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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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이라면 막차로 들르는 술집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참새 방앗간' 같이 들르던 매우 익숙한 술집도 있고, 아주 단골은 아니었지만 마음의 고향처럼 느끼는 추억의 장소도 있다.

작은 술집이라면 손님과 가게 주인의 거리가 가깝고 서로를 알아보기 때문에 친근한 느낌을 갖게 된다. 가끔은 너무 오랜만에 찾아온 단골이 희미한 기억력과 취기로 인해 본의 아니게 실례를 범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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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말 오랜만입니다. 사장님도 참 많이 늙으셨네요."

적당히 대답할 말이 없다. 본인이 나이를 먹고 성장했다고 생각해서 하는 인사겠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반가울 리 없다. 더구나 중년의 나이에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이런 안부를 듣게 되면 괘씸한 생각마저 든다.
이어서 그는 동행에게 자신이 얼마나 오랜 단골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2. "내가 이 술집에 20년 단골이야. 사장님, 이 가게가 얼마나 오래되었죠?"

대답하기 난감하다. 술집은 이제 막 17년을 넘겼다.


3. "여기 본래 지하 아니었어요?"

이제 보니 그는 여기 보다는 다른 술집의 단골인 것 같다. 길 건너편 건물의 지하에 이곳과 분위기가 비슷한 술집이 하나 있다. 후배 같아 보이는 일행이 선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으니 대답하기가 더욱 난감하다.


4. "왜 이래, 내가 낸다니까."

서로 자기 신용카드로 계산을 하라며 각자 카드를 내밀어 돈 받는 알바의 명치나 팔이나 어깨를 찌르며 카운터 안으로 들어온다. 알바는 계산할 카드를 고르지 못하고 쩔쩔맨다. 그들의 우정은 이해하겠는데, 제발 둘 중 아무나 내고 빨리 사라져라.




5. "잘 마셨습니다. 앞으로 자주 오겠습니다."

계산을 한 뒤에는 예의를 갖추어 정중히 인사를 한다. 그러나 오랜만에 찾아와서 자주 오겠다고 말하는 손님은 실제로 자주 오는 법이 없다. 이것은 '마지막으로 딱 한 잔만 더 마시자' 정도의 약속과 비슷하다. 정말 딱 한 잔만 마시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술집에 다시 들르게 되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별 문제될 게 없는 가벼운 거짓말인데, 아마도 아이들의 산타클로스에 대한 믿음 정도 되지 않나 싶다.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한 잔만 더 마실게요>의 내용 중 일부를 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