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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호 Headshot

일베의 '손가락'과 메갈의 '티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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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연 성우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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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부가 등장했다

티셔츠 하나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더니 결국 이 티셔츠를 인증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살생부까지 등장했다. 온라인에서만 끝나는 어뷰징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하던 일을 타의로 그만두어야 했다.

지난 7월 18일 성우 김자연씨가 자신의 SNS에 한 장의 사진을 올렸다.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박힌 티셔츠였다. 이 티셔츠는 페이스북 페이지 < 메갈리아4 > 운영자가 페이스북의 부당한 페이지 삭제정책에 법률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소셜펀딩의 형식으로 판매한 물품이었다. 이 소셜펀딩은 애초의 목표보다 십 수배가 넘는 1억 3천여만 원을 모았다.

모금이 완료되고 티셔츠가 배송될 때까지도 소란이 크게 일진 않았다. 논란은 김자연 성우가 티셔츠를 입은 후부터 시작됐다. 넥슨 게임 <클로저스>의 티나 캐릭터를 연기했던 김 성우는 이 티셔츠를 인증한 다음날 넥슨 측에서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다. 유저들이 티셔츠 인증에 반발한다는 이유였다. 넥슨의 계약해지 통보 사실이 알려지자 SNS상에서는 김자연 성우의 부당계약해지를 반대하는 해시태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용이산다>의 초,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해츨링 등 창작자들도 SNS에 김자연 성우의 부당계약해지에 비판하는 글을 남겼다. 이는 '살생부'라고 명명되는 리스트에 차곡차곡 기록되었다. 웹툰 작가 선우 훈 씨는 이 사건을 두고 네티즌과 입씨름을 벌이다 부천만화축제 사회자 자리에서 교체될 위기에 처했다. 한국웹툰산업협회 이사장은 '메갈 유저와 같이 갈 수 없다'고 공개적인 선언도 했다.

이게 다 티셔츠 한 장을 두고 불과 며칠 만에 일어난 일들이다.

'메갈티'의 낙인과 일베의 '손가락 인증'

이 티셔츠를 향한 비난의 내용은 짧은 시간을 두고 계속 바뀌었다. 처음에 '저 티셔츠를 입었으니 메갈'이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은 '메갈리아'와 이 티셔츠의 제작 주체인 '메갈리아4 페이지'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 둘은 고도의 연관성이 있다'고 반박하기 시작했다. '메갈리아4 페이지'는 기존 메갈리아 커뮤니티와는 다르게 언어의 과격함을 선택하지 않은 공간이라고 주장했더니 '어쨌든 메갈이라는 이름을 쓴 게 문제'라고 반론했다. 메갈리아라는 상징성은 일베의 그것과 같으니 이 이름을 위시하는 모든 것들은 사회적으로 매우 '위험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나는 앞서의 주장 또한 어떤 여성혐오적 결과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일베라는 상징은 보통 그들의 손가락 인증을 통해 도출된다. 이는 커뮤니티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부여하는 암묵적 사인 같은 것이다. 그들은 특유의 손가락 인증을 통해 '일베'라는 주체성을 자신에게 스스로 부여한다. 그런데 과연 '메갈'도 그럴까? 메갈 티셔츠를 옹호하는 이들 중 적잖은 수는 자신이 메갈리아 사이트의 유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그들 중 일부는 '나는 메갈리아의 언어적 과격성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들은 단지 티셔츠를 인증했다는 이유로, 김자연 성우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모두 '메갈리아'로 낙인찍혔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메갈리아'라는 정체성은 주체적 개념이 아니다. 부여받은 정체성이다. 이 모호한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는 이들은 무엇이 페미니즘이고 무엇이 '메갈'인지 심도 있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다 메갈로 통칭할 뿐이다. 그리고 이에 의해 누군가는 목소리를 잃었고 누군가는 사이버 린치를 당하고 있다.

자신이 '일베'라는 걸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일베 유저는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낼지 말지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메갈도 그럴까? 티셔츠가 예뻐서 샀든 해당 펀딩의 취지에 동의해서 샀든, 아니면 정말로 '메갈리아'의 정체성을 갖고 있어서 샀든 상관이 없다. 티셔츠 구매의 모든 이유들이 '메갈'로 등치되고 있다. 이 티를 입은 자들이 말하는 모든 언어가 메갈의 것으로 치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페미니즘적 언어도 '메갈'이라 비난받을 수 있다.

비난하는 자들은 손쉬운 낙인을 택했다. 이제 벗어나기 위한 해명은 낙인 받은 자들의 몫이다. 이제 누구라도 메갈이 될 수 있다. 과거 누구라도 김치녀가 될 수 있었듯. 어떤 성범죄 피해자라도 꽃뱀이 될 수 있었듯.

티셔츠를 둘러싼 진짜 보편성, '우리는 일베와 다른가?'

그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메갈리아의 정체성과 관련한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비판할 수도 있을 거다. 나는 '메갈리아'가 성역이 되어야 한다거나 비평의 대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다만, 그 전에 먼저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 있다는 말이다. 메갈리아가 반작용으로서의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 메갈리아를 잉태한 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티셔츠 논란은 메갈리아를 '보편적인 남성 혐오의 공간'으로 정의하려는 일종의 레이블링(Labeling) 작업이었다. '모든 혐오에 반대한다'는 미명 아래 행해진 일들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메갈리아 콘텐츠에는 원본이 있다. 남성이 여성에게 해왔던 그것들이다. 과거부터 수많은 여성들이 가만히 보고 넘겼어야 했던, 남자애들의 과격한 장난이라 여기고 참아야 했던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껏 그것을 일베로 통칭하진 않았다. 여성을 집단화하며 놀려대는, 성적 대상으로만 소비하고 유희로만 치부하는 온갖 이야기들이 유머 페이지에 올라왔지만 아무도 그것을 일베라 부르지 않았고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낄낄거리며 친구들을 태그했다.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것을 '정복'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여기에 '일베'라는 낙인 대신 '남성들의 문화'라는 딱지를 붙였다.

이 불공평한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지 않은가?

정말 페미니즘 자체는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남성 혐오'와 여성혐오 모두 반대하고 싶다면 적어도 일베를 위시한 보편적인 여성혐오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비난을 가해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여전히 SNS 유머페이지나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가면 수많은 여성혐오 콘텐츠들이 넘쳐난다. 그것들이 보통 혐오가 아닌 '유머'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남혐'을 경계하는 이들이 정의하는 그 '메갈'의 실체가 정말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여성 혐오는 뚜렷한 실체가 있다. 우리의 카톡방에도,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우리가 쉽게 건네는 농담 한마디에도 스며들어 있다. 너무 흔해서 우리는 그것을 모두 일베라고 쉽게 낙인찍지도 못한다. 그러나 낙인찍지 못한다고 해서, 흔하다고 해서 그것이 당연하고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몰아내자'는 말은 너무 염치없고 이상하다. 이상한 세상을 방관해 온 사람들이 이제 와 마녀들만 때려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