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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에 부당함을 느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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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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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몰랐던 이야기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스무 살 중반까지 나는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착하게 포장한 혐오를 내뱉고, 다른 사람과 나를 구분 지으며 차별을 당연하게 여겼던 사람이었다. 나는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있다고 믿었다. 나는 '동성애자를 이해하지만 내 눈 앞에만 보이지 않으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말했던 때의 내 세계는 분명 지금보다 평온했다. 나는 내 앞의 마주한 내가 겪을 고통만 생각하면 되었다.

운 좋게 나와 다른 세계에 살던 친구들을 만났다. 그 친구들은 내게, 세상이 여러모로 불공평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때부터 모든 게 불편해졌다. 그제야 내가 발 딛고 있는 세상 곳곳에 차별과 고통으로 절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어떤 소수자들의 고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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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내게 고백했다. 혼잡한 버스에서 가슴을 만지고 도망가는 아저씨. 짧은 치마를 입었다고 소리를 질러대며 위협하던 할아버지. 더러운 성적 농담을 재미삼아 던지던 택시 기사. 어떤 친구는 너무 일상적인 일이라 지하철에서 자기의 다리를 주무르던 놈을 그냥 뒀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 억울해서 내릴 때 정강이를 힘껏 차줬다고 한다. 나는 그 친구가 체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지, 차마 상상도 되지 않았다.

이 모든 이야기는 내가 지금보다도 더 후진 사람이었을 때는 듣지 못했던 이야기다. 무서웠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으레 '조심하라'든가 '네가 당한 건 특별한 일'라든가 '과민반응 아니냐'고 이야기했다고 하더라. '네가 예뻐서 당했다'고 말하며 그걸 칭찬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하더라. 미안했다. 지금보다 더 부족했을 때의 나는,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으며 나의 평온을 챙겼고 그렇게 비명이 입막음된 사회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내가 살던 세계는 너무나 평온하게 잘 돌아가고 있었는데 누군가의 세계는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불공평한 세상을 방조했다. 내가 직접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지만, 나는 불공평해서 나에게 더 유리하게 설계된 세상을 즐기며 살아왔고 아직도 그 유리함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어떤 결백의 구호들

강남역 10번 출구에 모인 사람들은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여성들을 향한 각종의 가해들이 너무 '무차별적'이어서 일상이 공포로 얼룩져 있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그 근처에선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혐의를 벗으려 피켓을 들었다.

"나는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니 모든 남성을 범죄자로 몰지 말라"

나는 이 광경이 너무나 의아했다.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이 과연 여성들이 남성일반에 대해 혐의를 씌우기 위해 꺼내든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말이 추모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면서까지 피켓을 꺼내들어야 할 이야기인지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남성 모두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다. 다만, 힘이 약해서 맞아야 하고, 대중교통에서 성추행을 당해야 하고 누군가에게 끌려가 강간을 당해야 하는, 너무나 일상적인 여성을 향한 각종의 가해행위들이 공포로 다가온다는 당연한 사실을 고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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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사건은 전부가 아니라 하나의 증거일 뿐이다. 여성이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일상의 침해는 그 기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오래되었다. 나는 밤늦게 들어오는 여자 형제들을 걱정했던 많은 남성들이 그 일상의 침해를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의문이 든다. '이 살인은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 벌인 짓이고, 따라서 피해자가 여성이었던 것은 우연이다. 나는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다'라고 말을 해서 벗고 싶은 혐의가 무엇인지.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구호에 담긴 절박함은 한 치도 이해할 생각 없이 모조리 치워버리는 대신에 '우리는 가해자가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그곳에 피켓을 들고 선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잠재적 가해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스스로 잠재적 가해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나도 피해자'임을 호소하며 이 불편하고 불공평한 세계를 외면하고 싶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린 모두 방조의 혐의가 있다.

어떤 미디어들은 그렇게 말한다. 청년들의 삶이 힘들기 때문에 남녀가 싸우고 있다고. '여성혐오'와 그에 대항하는 '남성 혐오'가 갑자기 생겨난 것처럼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번에 일어난 끔찍한 살인사건. 그리고 그곳에 모여서 절규하는 이들은 어쩌다 일어난 사건에 분노하는 게 아니다. 이전에는 감히 문제제기도 못했던 일상의 폭력에 대해 이제야 비로소 말이라도 꺼내기 시작한 거다.

과거에 연쇄살인범이 여자만 골라서 죽였을 때, 우린 그걸 연쇄 살인이라고만 이야기했고 숱하게 벌어졌을 데이트폭력과 가정 폭력에 대해 가정사일 뿐이라며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린 일상에서의 성추행과 성희롱에 대해 '남성들의 성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에서야 우리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분노 찬 젊은이들의 성별 간 싸움이 아니라 이전부터 있었던 '어떤 차별과 혐오'에 대한 집단적 반응이다. 우리가 미처 혐오와 차별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시절을 '더 평화로웠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살인사건이 이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나오는 주장은 살인사건만을 분별하지 않는다. 이번 살인 사건은 여성이 일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지만 그게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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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심코 던졌던 우리들의 발언과 행동들, 이를테면 '옷을 그렇게 입고 다녀서 강간을 당했다'든가 '여자가 맞을 짓을 했으니 남자가 때렸겠지'라는 말들 혹은 여성이기 때문에 쉽게 제압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큰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을 행사하려는 제스처를 취했던 행위'들이 이 불공평한 세계를 강화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방조행위는 '그게 방조인 줄 몰랐다'는 이유로 혐의를 벗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에 부당함을 느낀다면 우리는 피켓을 드는 대신 차별에 기여하는 우리의 일상적 행위와 말을 중단해야 한다. 그건 '여성을 위한 배려' 같은 게 아니라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타인에 대한 '지극히 기본적인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