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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만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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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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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응원하던 수원지역의 청년 여성대표에게 페북 메시지를 받았다. 자신이 마을사업을 함께하던 남성대표에게 성폭력을 당했는데, 이를 공론화해서 꼭 해결하고 싶다고, 글을 공유해서 도와달라는 간절한 메시지였다. 바로 글을 공유하고, 사건 뒤 일이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지 찾아보았다. 가해자는 자신이 고용한 변호사와 함께 당당하게 피해자를 찾아가서 미리 짜놓은 듯한 형식적인 사과를 했다고 한다. 사건이 있고 난 뒤, 잠도 못 자고 괴로워하는 피해자와 달리 가해자는 '이성적으로' 재빨리 변호사를 선임해서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사건 이후 그의 행보를 보면, 술김에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가해자의 '우발적인'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그는 당당했다. 가해자의 페이스북에는 민주주의, 생태주의, 마을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잔뜩 도배되어 있었다.


피해자의 글을 읽던 중, 눈길이 머물렀던 곳. "당신이 남고 내가 떠나는, 당신은 활개 치고 내가 피하는 이 세상이 너무 싫다."


조금 전, (전) 청년녹색당 공동위원장의 데이트폭력 글을 보았다. 7월에 올라온 경위서였다. 가해자의 이름을 보고 놀랐다. 익숙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6월 초에 춘천에서 만났었다. 녹색당 춘천지역 청년 모임에서였다. 그때 서울에서 활동하는 그도 참여했었고, 그 자리에서 해달과 나는 몇 시간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베가 가장 잘못한 건 '일베'라는 뚜렷한 적을 상정해서 사람들이 '우리 안의 일베'를 못 보게 했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뚜렷한 적을 타자화하는 것만큼 성찰을 막는 건 없으니까요."라는 나의 말에 그는 맞다 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분명히 '우리 안의 일베'가 문제라면서 적극적으로 평등과 평화를 위해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만남 이후 불과 한 달 사이에 이런 일들이 터졌다. 그에게 데이트폭력을 당했던 피해 여성의 증언, 가해자의 경위서가 <청년녹색당> 페이지에 올라왔었지만,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 뒤의 당 차원의 대응을 찾아보니 대응도 무척 허술하고 폭력적이었다. 피해자는 녹색당을 떠났다. 피해자의 글을 읽던 중, 눈길이 머물렀던 곳. "당신이 남고 내가 떠나는, 당신은 활개 치고 내가 피하는 이 세상이 너무 싫다."


나는 '자신을 정의롭다고 믿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가장 경계하는 편이다.


나는 진보정당, 마을 공동체, 사회적 경제, 시민단체와 같이 '자신을 정의롭다고 믿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가장 경계하는 편이다. 그들은 손쉽게 '인권'과 '평화'를 외치지만, 그 인권이 여성이나 성 소수자, 장애인, 동물 등 사회적 소수자를 향할 때에는 그것을 부차적이라고 여긴다. '그'들이 말하는 인권은 절대적이고 마땅한 개념일지 모르지만, '그'들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인권은 언제나 투쟁적인 쟁취의 과정이었다.

나는 2008년에 촛불집회에 나갔었고, '촛불 여대생'으로 이름 붙여졌었다. 한참 촛불이 번졌던 2008년 나는 민주노총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고, 조직적 은폐를 했던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때 조직적 은폐에 가담했던 사람이 비례대표로 나오는 정당에서 열심히 선거 운동을 하고, 대승적 민주주의를 외쳤던 순진무식한 사람이었다. 2008년과 2016년은 얼마나 다른가?


집회 현장에서 박근혜와 최순실을 '년'으로 욕하지 말라는 발언이 집회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거라는 식의 글을 당당히 올릴 수 있는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문제를 사소하게 만드는 권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소한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집회 현장에서 박근혜와 최순실을 '년'으로 욕하지 말라는 발언이 집회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거라는 식의 글을 당당히 올릴 수 있는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 발언이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순진한 태도는 자신이 누리는 권력을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의 오만함일 뿐이다. 국가주의, 민족주의, 공동체주의 그 '-주의'가 아닌, 당신이 누리는 또 다른 교차적 권력을 보아라. 당신들이 '조개'라고 '사소하다'고 외면해왔던 문제는 여전히 나와 내 주위 사람을 떨게 하는 일상적 공포이다. 국가 폭력에 저항하면서, 왜 당신의 폭력은 성찰하지 못하나. 당신의 폭력은 술 때문인가? 박근혜 때문인가? 자본주의 때문인가? 통일이 안 돼서? 미국의 공작 때문인가? 왜 당신은 당신의 잘못을 그대로 보고 성찰하지 못하는가?

나는 지금 이곳에서 울리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함성을 일부 믿고, 일부 믿지 않는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허무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집회 현장 내 성추행을 지적하지 말라 입막음하고, 혐오 발언을 허용하라며 '대의'를 외치는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에 소수자의 자리는 없다. 당신들이 말하는 사소한 문제는 언제나 사소하지 않았다. 당신들의 민주주의에 여전히 나는 없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