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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역사교과서,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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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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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연설문을 비롯한 여러 정부 문건들이 최순실씨가 사용했던 PC에 대거 저장되어 있다는 JTBC의 특종 보도를 시청하는 순간, 정말 혼돈상태에 빠졌다. 솔직히 최순실이 박대통령의 연설문을 수정하고 있다는 의혹이 일었을 때, "설마 그렇게까지야"라고 반신반의했다. 이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상조차 힘든 일이었다. 필자는 나름대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이를 어떤 방식으로든 설명해보려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자신이 없다. 그저 멍할 따름이다. 소수 실세들의 보이지 않는 작용을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음모론적 시각이 이 나라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 더 적합한 것일까?

유신체제의 긴 그림자, 주술화된 국가주의

최근 언론은 최태민과 그의 딸 최순실 등 최씨 일가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 이들에 의한 국정농단의 실상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마치 과거에는 몰랐거나 알 수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최씨 일가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는 유신체제기 '새마음운동'으로부터 시작된 오래된 현재이다.

'새마음봉사단' 등의 재단을 만들어 협찬금을 유용하는 방식과, 최근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을 설립하고 대기업으로부터 엄청난 돈을 동원하는 방식은 매우 유사하다. 새마음운동은 '충효'를 내세우며 국가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과 충성을 다짐하는 국가주의 계몽운동이었다. 미르·K스포츠 재단은 문화융성과 스포츠 진흥 등 좀더 탈정치화되고, 세련된 논리를 보여준다. 그러나 역시 국가발전, 국위선양 등 "국가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법과 제도를 유린하는 것을 '순수한' 것으로 합리화한다는 면에서 여기서도 국가를 절대화하는 사고를 볼 수 있다.

유신체제를 밑받침했던 국가관은 국가를 개인들이 형성해가는 하나의 장치와 제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개인들을 국가의 부속물화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많은 학자들이 유신체제와 일제 군국주의체제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 일제의 통제하에 있었던 만주국은 이른바 '왕도(王道)', '대동(大同)' 등 유교적 정치이념과 충과 효 등의 덕목을 강조했는데, 새마음운동도 비슷하다.

일제의 군국주의 국가관은 신사참배 등에서 나타나는 바처럼 신도(神道)와 겹쳐져 주술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국가를 절대화하다보면, 이것이 그야말로 절대적인 것이기에 국가를 숭배하고 찬양하는 데 있어서 어떤 신앙적 요소와 결합될 가능성도 커진다. 최태민은 한때 승려였지만 나중에는 기독교 목사를 자처한 인물이었다. 1973년 초 "불교에서의 깨침과 기독교에서의 성령강림, 천도교에서의 인내천"을 모두 조화시켰다고 표방하는 '영세계(靈世界)'라는 유사종교를 만들고, 자신을 "조물주께서 보내신 칙사님"이라 했다. 영세계의 논리를 설파하는 전단은 "대한민국은 세계주인국(世界主人國)이 될 운세를 맞이했다"라는 등 국가의 위엄과 영광을 거의 주술적 수준으로 찬양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혼을 바로잡겠다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어찌해야 하나?

유신체제가 선포된 지 40년 만인 2012년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박근혜와 최씨 일가의 관계에서도 어떤 주술적인 요소가 작용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특히 박대통령의 연설에 나오는 "우주의 기운", "혼" 등의 표현들이 의심을 자아낸다. 이러한 발언 중 대표적인 것이 2015년 11월 박대통령이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을 옹호하며 행한 다음과 같은 언급이다.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魂)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를 성찰하는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혼' 같은 것을 말하는 것도 무척 어색하지만, 도대체 이 '혼'은 무슨 혼일까? '영세계' '오방낭' 류의 주술적인 것과 무관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논란이 되었던 국정 역사교과서 내용이 이달 말에 마침내 공개될 예정이다. 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역사학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강하게 반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이상한 사람들로 몰아가면서 집필자 명단도 공개하지 않은 채 온갖 무리수를 거듭하며 진행되었다. 그 내용을 두고 논란이 다시 일겠지만, 일단 교과서 국정화라는 형식 자체가 민주주의 국가에 어울리지 않고, 이를 추진한 집권자와 정부의 의도 또한 의심스럽다.

역사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하면 불행한 일이 반복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어리석고 타인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다. 아버지 박대통령이 '유신이념'을 뒷받침하기 위해 교과서를 국정화한 것이 비극적이었다면, 딸 박대통령의 국정화 작업은 다분히 희극적이었다. 현재 중고등학생까지 촛불을 들고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는 상태에서, 교육당국은 국정교과서를 학생들의 책상 위에 올려놓으려는가. 가만히 두어도 짜증내는 십대들에게 정말 이렇게까지 심한 일을 해야 할까. 국정교과서를 박물관으로 보내 불행한 과거가 세번 반복되는 것을 막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을 좀더 설명 가능한 나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