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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도, 베트남 정부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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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가 베트남 정부의 문제제기를 받았다. 기사를 보자마자 한국의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우르르 베트남 정부를 지지하는 성명을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충일에서 일주일이 넘게 지난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성명을 낸 단체는 한베평화재단(Korea-Vietnam Peace Foundation)뿐이다.

논평을 냈을 법한 당이나 단체를 떠오르는 대로 서너 개 정도를 검색해 보았는데, 내가 생각한 범주 안에는 관련한 논평을 낸 곳이 없었다. 제국주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는 곳, 전쟁에 대한 반대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곳, 인권에 대한 입장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곳이 모두 문재인의 발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베트남 외교부의 입장은 굉장히 부드럽다. "한국 정부가 베트남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양국 우호와 협력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언행을 하지 않을 것을 요청한다". 잘못을 질책하는 뉘앙스조차 아니다. 이렇게 말하기까지 베트남인들이 삼키고 삼켰을 수많은 말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vietnam korea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에 대한 베트남 정부 입장. © 베트남 외교부 홈페이지

문재인은 "베트남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경제가 살아났다"고, "이국의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생긴 병과 후유장애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채"라고 했다.

물론 사실이다. 베트남 참전자들은 많은 고통을 겪었다. 고엽제부터 시작해서 전쟁의 트라우마까지, 그들이 겪은 고통은 문재인의 말대로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채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에게 부채는 청산되지 않았다. 고엽제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고통속에 살아왔고 PTSD에 시달리며 죽어갔다. 지나간 전쟁의 고통 속에서 이 사람들이 부여잡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애국참전용사〉라는 단 하나의 명예였을 것이다.

고통은 의미가 부여된다면 견딜 수 있다. 고통을 겪는 이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고통 자체 이상으로 고통의 무의미함이다. 내가 당한 고통이 무언가에 기여했기를 기대하는 마음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당연하다. 가난하던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 애국하기 위해서 나는 그 죽음같은 전쟁을 건너왔다고.

그러나 이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이유도 뚜렷하다. 이들은 가해자기도 하기 때문이다. 〈애국참전용사〉라는 명예를 달고서 누군가는 베트남에서 여성들을 강간했고, 누군가는 강간한 여성들을 쏘아죽였으며, 마을을 불태웠고, 수만 명의 라이따이한을 책임지지 않고 남겨두었다. 피해자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해를 한 이들에게도 자신의 가해가 윤리적 고통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행위들이 과연 '명예'가 될 수 있는가. 국가의 이름으로 쉽게 명예를 말할 수 있는가.

누가 이들을 피해당하게 했고, 누가 이들을 가해하게 했는가. 마땅히 이들의 가해와 피해는 모두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제국주의에 한 몫 거들어서 빌어먹어보겠다는 정부의 정책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의젓하게 훈장달고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와 'PTSD에 시달리며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김상사', '베트남의 여성을 강간하고 마을을 불태운 김상사'는 모두 다른 얼굴이 아니다.

어차피 1인 미디어 시대라는데, 성명서가 내 생각만큼 '쏟아지지' 않은 지금 나는 베트남 정부를 지지한다고 밝혀둔다. 이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은 '애국참전용사'들 뿐만이 아니다. 다른 나라의 그까짓 '애국'을 위해 강간당하고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도 책임져야 한다. 개인이 할 수 없기에 나라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이면의 상처를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문재인이 말해왔던 "정의로운 나라" "나라다운 나라"가 실현되는 초석이라도 놓을 수 있을 거이다.


* 이 글은 페이스북에 쓴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