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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녀'와 '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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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ronosov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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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의 건과 관련하여 '김치녀'는 '일부 한국 여성'을 비난하기 위해 쓰인 말이므로 일반 남성을 비난하는 '한남'과 같지 않다는 항변을 여기저기서 본다. 거의 모든 관련 기사의 댓글에서 보는 듯하다. 이랑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적이냐와는 별개로 '일부 한국 여성'과 '일반 한국 남성'의 비교를 볼 때마다 갑갑하다.

나는 그런 주장을 하는 한국 남성분들이 이 글을 많이 보았으면 좋겠는데, 아마 인터넷의 특성상 그렇게 되지 못할 것이다. 내 페북 친구들은 대체로 '한남'이라는 단어를 쓰는 쪽에 있을 것이고. 그래도 갑갑해서 뭐라고 써 본다. 지나가다 한 명쯤은 읽을지도 모르고.

내 기억으로 '된장녀'와는 달리 '김치녀'는 실제로 한국 여성을 일반화하기 위해 쓰인 단어였다. '된장녀'만으로는 한국 여성 전체를 포괄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인이라면 가장 일반적으로 연상할 '김치'를 앞에 붙였다.

이 논리에 따르면 한국 여성 '일반'은 '남자를 등쳐먹고, 사치를 즐기고, 문란하고, 문란한 삶의 결과로 낙태를 하고, 의무는 없이 권리만을 주장하며, 남성을 존중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배제되는 '일부 한국의 개념 있는 여성'은 '탈김치'라는 호칭을 받게 된다. 일부가 붙은 쪽이 다른 쪽이었다는 얘기다. 그게 아니라면 '탈김치'라는 단어는 존재 이유가 없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신다면, 구글에 가서 "site:ilbe.com 탈김치"를 검색해보고 오시는 것도 좋겠다.

그렇기에 '한남'도 일부 한국 남성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이것은 당신들의 주장대로 '한국 남성 일반'을 지칭하는 단어가 맞다. '한남'은 '김치녀'와 대응하는 항으로 서 있다. 왜 '성매매하는 일부 한국 남성, 여성 비하하는 일부 한국 남성, 여자를 때리는 일부 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단어를 만들지 않고, 굳이 '한남'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가.

나 역시 당신들처럼 모든 남성들이 여성을 '비하'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비하'는 여성은 남성보다 (능력이) 못하다, 혹은 머리가 나쁘다, 성격이 나쁘다, 이런 수준의 일반화를 하는 남성들을 뜻할 것이다. 그런 남성들은 정말로 많지가 않다. 20~30대에는 더 적을 것이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길거리에 나가서 던진다면, 대부분의 남성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할 것이다. 여성은 남성과 같이 노동하고, 투표하고, 활동하는 주체니까.

그러나 이 여성들이 언급하는 '한남'은 그런 수준의 멸칭이 아니다.

한국 남성 일반은 여성 일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남성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외적 기준과 무관하게 시민적 동료로 바라보고 있는가? 젊고 아름다운지가 여성의 가치를 가늠하는 척도가 아닌가? 재생산하는 몸으로서의 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자신이 치근덕거려도 될, 성취해도 될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가? 정말로?

아까 나는 어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한남'이라는 호칭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문제제기한 것으로 보이는 여성의 댓글이 다 지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페이지 운영자는 "OO아, 왜 댓글 다 지웠니. 예쁘니까 괜찮아." 같은 댓글을 달고 있었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고 대답할 당신들은 그 "예쁘니까 괜찮아" 라는 말에 뭐라고 대답할 수 있는가?

나는 '한남'이 '성매수를 하는 남성, 여성에게 폭력적인 남성, 여성을 직접적으로 비하하는 남성'을 뜻하는 단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렇게 안 생겼는데 담배 피우네?' '넌 예쁜데 왜 그런 말을 해?' '여자애가 욕하면 남자들한테 매력 없어.' '그런 색깔로 염색하면 딴 남자들 눈에 띄어서 싫어.' '오빠가 지켜줄게, 오빠 말만 들어.' '네가 남자를 몰라서 그러는데.' '난 네가 헐벗고 다녀서 멍청한 줄 알았어.'

당신이 생각하는 '한남'과 내가 생각하는 '한남' 사이에 골이 있다. 당신은 '일부 한국 남성'이 아닌데 멸칭의 대상이 되어서 억울하겠지만, 사실 이 단어는 진짜로 '일부 한국 남성'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일반적 이데올로기에 호출된 남성'을 멸칭하는 단어다. '일반적'이라는 단어를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신의 이데올로기는 여기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한남'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도, '탈김치'의 용법 그대로 '탈한남'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나는 그 이데올로기의 호출을 외면하는 '탈한남'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당신이 그 '탈한남'이 되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당신들과 동지가 되고 싶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