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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콩가루 집안'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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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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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콩가루 집안' 출신이다. 부모님은 내가 10대 때 이혼했고, 나는 아버지를 선택했으며, 그 과정에서 친모와 연을 끊게 됐다. 그녀가 나를 위자료를 더 많이 뜯어내기 위한 흥정의 도구로 삼은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조부모 두 분 모두 세상을 떠나자 그 전부터 서먹서먹했던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 그들이 이룬 가족들이 모두 한곳에 모이는 일도 완전히 끝났다. 거기에는 각자 다른 입장으로 서술할 어른의 사정이 있을 테다.

10대 때는 내 가정사가 유별나다 생각하며 자기 연민에 빠지곤 했다. 이제는 안다. 사연 하나 없는 집안이 더 희귀하다는 것을. 내밀한 집안사를 고백한 이들이 왕왕 눈에 띈 덕분이다. 소셜 미디어든 뉴미디어든, 진솔하게 자기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늘어났고, 오만 가지 드라마를 접할 수 있게 됐다. 대중매체를 통해 전시되는 '화목함'과 동떨어진 집안이 참으로 많다는 것, '정상가족'을 유지하는 가족이 오히려 소수라는 것, '다름' 그 자체는 흉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한 뒤 나는 비로소 담담해졌다.

이제는 '콩가루 스웩(SWAG)'마저 갖게 됐다. 특히 명절 때 그러하다. 20대 이후 본 적 없는 친척들이지만 지금도 단편적인 기억은 남아있는데, 별로 좋은 기억이 없다.... 살이 쪘네, 빠졌네, 대학에 가네, 못 가네 하며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도 않으면서 말 한마디 쉽게 보탰던 밉살스러운 얼굴들. 여자애 팔다리에 상처가 그렇게 많으면 '시집' 못 간다는 오지랖들. 설날에는 돈이라도 던져주니 그것을 연료 삼은 감정노동을 해냈지만, 돈 봉투를 손에 쥐지 못하는 추석에는 얼굴 구겨지는 것을 참기 힘들었다. 그런 순간들로부터 해방된 지 십 년 넘었다는 것이 자랑이다. 명절노동 하지 않는 것도 자랑. 명절 음식은 기분 내기 위해 소량 구매하여 맛만 보는 정도다. 어쩔 때는 그 조차도 하지 않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핵가족 단위의 식사를 해결한다. 심신이 평안하다. 명절에는 콩가루 집안 구성원인 것이 이득임을 절감한다.

포털사이트에 콩가루 집안을 검색해보니 '분란이 일어나거나 가족들이 모두 제멋대로여서 엉망진창이 된 집안'이라고 의미가 나온다. 하지만 이것은 20세기에 규정된 단어다. 21세기적 관점으로 보니, 가족들이 '모두' 제멋대로일 수 있다는 게 퍽 민주적으로 느껴진다.

어쩌면 이것이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엉망진창'이라는 말도 '개성적', '다원주의'라는 말로 윤색하게 된다. 게다가 콩가루의 맛을 떠올리며 다시 발음해보자. 콩가루... 어감이 나쁘지 않다. 뭔가 이국적인 언어의 질감에, 고소하고 뽀송뽀송하며 산뜻한 맛이 느껴지는, 개인의 권리 침해를 지양하는 거리 조절이 느껴지는...

쓰다 보니 본격_콩가루_권장글.txt 같다. 꼭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다만 각자의 상황에서, 각자가 불행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추수의 계절, '가장 밝은 달빛 아래 그해의 산물로 만든 음식을 가까운 관계의 이들과 다정하게 나누며 즐겁고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추석의 본질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추석을 '전통적'으로 보내려다 오히려 본질과 멀어져버리는 이들이 있다.

보상 받지 못할 착취적 노동에 밀어 넣어지는 이들, 고된 시간을 보낸 뒤 앓아 누워 남은 연휴 동안 회복을 위해 다시금 시간을 '소비'한 뒤 허겁지겁 일상으로 복귀하는 이들. 이들을 전통이라는 이유만으로 방치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흑인노예 제도도 당시의 누군가에겐 고수해야 마땅할 전통이었을 거라 응수하고 싶다. 누군가의 희생과 노역 덕에 꿀 빠는 입장이니까 전통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쩌렁쩌렁 외치는 사람들, 너무 얄밉다. '적당히 사먹기'를 선택하는 것이 구성원이 고루 즐거울 수 있는 명절이 되는 길로 보인다.

즐거운 명절이 되기 위해서는 프로 불참러가 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명절이 아니면 볼 일 없는 사이, 낯설고 서먹한 사이, 뻘쭘함을 메우기 위해 공격적이고 억압적이며 진부한 질문을 내던지는 친척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뻔히 예측된다면 불참하는 것이 나을 수도... '명절 아니면 볼 일 없는 사이'라는 것은 사실상 '명절에도 안 봐도 되는 사이'라는 뜻 아닐까? 그런 사이에서 듣는 명절 잔소리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어차피 참석하든 불참하든 싫은 소리 할 사람이라면, 나 없는 데서 하든지 말든지 내버려 두고, 나는 다른 즐거운 사람들과 축제를 벌이는 것이 이득 아닐까? 금전적 여건이 허락한다면 불참을 꺼림칙해 하는 부모님께 비행기 티켓을 끊어드리며 농도 짙은 즐거움을 맛보시도록 돕는 것은 어떨까? 새로운 가족의 전통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나는 <월간잉여> 창간 이래 설날이나 추석 당일 점심은 가족과 식사하고, 저녁에는 나욕대(나라 욕 대잔치), 사생대회, 독서토론, 수저게임 플레이 등 행사를 진행하곤 했다. <월간잉여> 안식년인 올해는 동네술집을 점거하고 내가 만든 단편영화를 상영해볼까 한다. 다른 이들이 즐거운 명절을 보내기 위해 어떤 기획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작고 새로운 축제와 그에 대한 후기의 공유가 더욱 활발하길 희망한다. 그런 행위의 집합을 통해, 우리는 좀 더 풍요로운 전통 문화를 전승하게 될 것이다.

P.S. 달라진 문화는, 그리고 그것이 반영된 미디어는 80대 노인도 변화시킨다. 내 친구 중 집안일에 손 하나 까딱 않는 '한국 남자'가 있다. 그 친구의 할머니는 3~4년 전만 해도 그런 친구를 오냐오냐 해줬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엔 "너 요즘 그러면 장가 못 가"라며 한 소리 한다고. 아직까지는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이들에 대한 걱정보다는 손주가 장가가지 못하는 것을 우려한 '실리적인' 접근에 가깝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것도 진보로 보인다. 다른 목소리들이, 다른 사례들이 지속적으로 뚫고 나온다면 앞으로 또 어떻게 진보할지 모르는 일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