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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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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말처럼 요즘 서점가는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에 여러 권 포함되어 있다. 그 가운데 '82년생 김지영'은 수십만 권이 팔렸고 지금도 언론이 꾸준히 다루는 화제의 책이다.

이 책은 김지영이라는 82년생 여성(2017년 기준 36세) 주인공이 태어나 사는 동안 겪은 여러 종류의 성차별을 실제 통계자료를 근거로 풀어낸 소설이다. 픽션이라 해도 통계와 당시 언론 기사들을 곳곳에 배치한 구성 때문에 현실 고발 논픽션의 기능도 겸한다.

이 책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여성,남성 불문 두 종류였다. "여자라면 누구든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다", "사례가 좀 극단적이어서 공감이 덜하다. 실제 이 정도까지는 아닌 거 같은데..." 소설인 듯 소설이 아닌 이 책이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어떤 면이 공감이 되는지, 공식 통계를 근거로 쓴 사례에 왜 극단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지, 본문에 언급한 통계와 기사들의 원본 자료를 직접 찾아보았다. 그 덕에 '82년생 김지영'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와, 뭔가 찝찝하다고 했던 여성들이 가진 불편함의 이유를 알게 됐다.

딱 거기서 끝낸 이야기

"김지영씨가 졸업하던 2005년, 한 취업정보 사이트에서 100여 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여성채용 비율은 29.6퍼센트였다. 겨우 그 수치를 두고도 여풍이 거세다고들 했다.(동아일보)

같은 해 50개 대기업 인사 담당자 설문 조사에서는 '비슷한 조건이라면 남성 지원자를 선호한다'는 대답이 44퍼센트였고, '여성을 선호한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연합뉴스)"

책의 한 구절이다. 2000년대 중반 우리 사회의 성차별 지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문장이다. 내가 만난 여성도 저 대목을 읽고 우울해졌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어떻게 단 한 명도 없을 수가 있을까. 어떤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궁금해 하며 원본 기사를 찾아보았다. 2005년 7월 11일자, '연합뉴스'를 받아 쓴 '한겨레' 기사다. 기사의 전문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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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채용 시 외모·성차별 여전'

신입사원 채용시 성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외모도 당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11일 대학생 인터넷신문 '투유'( www.tou.co.kr )가 50개 대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비슷한 조건이라면 남성 지원자를 선호한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44%를 차지한 반면 '여성을 선호한다'는 응답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다'는 응답은 56%였다.

취업지망생 52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68%가 '성적이 비슷할 경우 남자가 유리할 것'이라고 답한 반면 '여자가 유리할 것'이라는 응답은 9.1%에 그쳤다. 또 '비슷한 조건이라면 외모가 나을수록 유리하다'는 응답 비율이 인사 담당자의 경우 50%를 차지했고, 취업준비생의 경우 '외모가 채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이 94%에 달했다.

'비슷한 성적이라면 명문대 출신을 선호하느냐'는 질문에는 인사담당자의 74%가'상관없다'고 답했다.

수도권 대학 출신과 지방대 출신 간 업무 능력에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76%가 '별 차이가 없다'고 답했고 '이런 차이가 있더라도 신입사원 채용에는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응답이 80%를 차지했다. 반면 취업지망생의 경우 80.2%가 '비슷한 성적이라면 명문대 출신이 취업에 유리할 것'이라고 답했고 '수도권 대학 출신과 지방대 출신 간 차이가 채용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도 76%를 차지했다. '학업성적이 실제 업무능력으로 이어지느냐'는 질문에는 인사 담당자의 70%가 '관계없다'고 답했다.

대학졸업자와 졸업예정자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졸업예정자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52%, '상관없다'는 응답이 46%를 각각 차지한 반면 '졸업자를 선호한다'는 응답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인사담당자들은 지원자 평가 시 중시하는 요건으로 창의적 사고력(43%)과 협동성(33%)을 주로 들었고, 최근 채용된 신입사원들에게 부족한 점으로는 책임감(19.4%), 애사심(14.3%), 직장 내 예절(7.1%) 등을 지적했다.학력 외에 중시하는 경력으로는 자원봉사. 아르바이트 등 사회활동경력(44%), 해외유학경력(24%), 수상경력(14%) 등을 꼽았다.(서울/연합뉴스)

소설은 "'여성을 선호한다'는 응답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로 끝나지만 기사에서는 바로 다음 구절에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다'는 응답은 56%였다."는 구절이 이어진다. 인사담당자 56퍼센트가 같은 조건이라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관계없이 채용하겠다는 의견을 말했음에도, 여성 선호가 한 명도 없었다는 구절만 언급하고 거기서 끝낸다. 여성들은 절망한다.

통계를 활용한 기사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언론은 대개 극단의 수치를 뽑아 선정적으로 활용한다. 위 기사에서 볼 수 있듯 원 설문조사에서는 취업준비생과 실제 인사담당자들의 인식 차이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성별, 외모, 학벌, 지방대, 졸업유무 등 여러 요인에 관한 질문을 던져 취준생이 느끼는 불안감이 현실과는 간극이 있으며, 실제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조언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기사는 "성별, 외모차별이 여전하다"를 타이틀로 뽑는다. 실재하는 차별을 입증하는 조사가 아니라 인식에 대한 설문인데도 그렇다. 이 기사의 선정적인 구절은 다시 <82년생 김지영>의 본문처럼 심각한 성차별 사회라는 주장의 근거로 활용된다.

어느 대목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글의 뉘앙스는 달라진다. 컵에 물이 반이나 있는지, 반밖에 없는지의 차이처럼,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적어도 성별 선호 없이 공정하게 채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학벌보다는 실력, 창의력 등을 중요시 여긴다고 답했다. 또 남성을 선호한다는 44퍼센트 답변 역시 들여다보면 남성이 여성보다 낫다는 우열의 개념은 아닐 것이다.

여성들 자신이 절실하게 경험하고 있는 경력단절이라는 리스크. 결혼, 출산, 육아로 인해 공백이 생길 가능성이 있는 인재를 굳이 감당하려는 기업이 얼마나 존재할까. 그 현실을 반영한 답이라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 44퍼센트라는 수치를 변화시키려면 지금처럼 사회문화적으로 압박하고 제도가 강제해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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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속에 숨겨진 이야기

소설 속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입사부터 지금까지 남자 동기들의 연봉이 쭉 더 높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남성 임금을 100만원으로 봤을 때 OECD 평균 여성 임금은 84만 4천원이고 한국의 여성 임금은 63만 3천원이다.

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서도 한국은 조사국 중 최하위 순위를 기록해, 여성이 일하기 가장 힘든 나라로 꼽힌다."

한국의 성별임금격차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통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통계 또한 들여다보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다른 문제들이 있다. 최근 82년생 김지영들의 현실을 전면으로 다룬 '한겨레'의 기사를 보자.

"육아 해결할 길 없어 일 포기" 82년생 김지영들의 좌절"

남성 경제활동참가율 93.4%지만 / 여성은 독박육아 탓에 59.8%뿐
동년생 남성보다 월급 67만원 적고 / 아이 낳으면 사실상 퇴사 내몰려
부모가 아들과 차별없이 공부시킨 세대 / 대졸 고학력으로 사회에 나왔지만
여성에게 덧씌워진 겹겹의 굴레에 / 2017년 대한민국의 김지영들은 오늘도 힘겹다

'김지영들'은 성별에 따른 교육기회의 차별이 거의 사라진 시대에 태어나 고학력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두명 중 한명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포기한다. 전업주부의 삶을 선택하더라도 성취감은 사라지고 자존감은 무너져 우울감에 시달린다. 직장을 계속 다니더라도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으며 육아 책임자로서 하루하루 버텨내며 살아간다.
...근속기간·노동시간 등을 따지지 않고 단순 비교할 경우, 김지영들의 월평균 임금은 219만원으로, 82년생 남성(286만원)보다 67만원 적었다. (2017. 11. 15일자 한겨레)

우리가 접하는 성별임금격차의 의미는 같은 일을 하고도 여성은 남성의 60퍼센트 밖에 못 받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주장하는 여성주의자들도 있다. 나는 아니더라도 세상 어딘가에서 다른 여성들은 그런 차별을 받고 있으려니 생각한다. 여성이 차별받는다는 건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고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사실을 들여다보면 좀 다르다.

위 기사에서도 언급했듯 성별임금격차는 '근속기간, 노동시간 등을 따지지 않고 전체 여성임금과 남성임금의 평균을 단순 비교한' 임금의 격차다. 그런 변수들을 통제한 후 다시 분석했을 때 3~4퍼센트 이내로 격차가 좁혀진다는 연구결과들이 외국에는 존재하고, 한국의 여성정책 전문가도 설명되는 변수들을 해결해도 남는 4퍼센트 정도의 격차를 언급한다. 이 4퍼센트야말로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차별로 해석할 수 있고, 문화적 요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여겨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임금격차의 수치를 강조하는 매체들일수록 이런 이야기는 의미 있게 다루지 않는다.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 93.4%인데 여성은 독박육아 탓에 59.8%뿐'이라는 기사 내용처럼 경제활동 참가자 수가 훨씬 많고, 임금에 큰 영향을 미치는 노동시간과 근속기간에서 여성과 남성은 차이가 크다. 이런 변수들을 통제한 후 나온 결과가 본래 의미로는 정확하지만, 통제되지 않은 변수들에서 성별격차의 주요한 요인들을 알 수 있으니 이 또한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성별임금격차 문제는 우선 평균임금 단순비교보다 더 정확한 통계자료가 필요하다.

여성관련 통계 해석의 오류 이야기

2017년 통계청이 주최한 '통계바로쓰기 공모전'에서는 성별임금격차 통계의 오류를 지적한 '대한민국의 성별 임금 격차에 숨겨진 진실'이 1위를 차지했다. 2위를 차지한 주제 셋 중에도 '한국 남녀 임금격차 꼴치 통계의 왜곡 해석'이 포함되어 있다. 중위값과 평균값의 단순 비교 오류, 남성의 근로시간과 근속연수 등 주요 변수 누락, 20대는 성별임금격차가 거의 없다는 사실 등이 지적되어 있다. 강력범죄 피해자의 89퍼센트가 여성이라는 통계는 성범죄를 강력범죄에 포함시킨 카테고리 분류의 변화에서 나온 숫자다.

이번 공모전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여성관련 통계의 왜곡과 오류를 분석한 내용이 다수 수상했다는 점이다. '세계 성격차 보고서의 왜곡 및 확대 해석에 따른 오용', '데이트 폭력 기사 속 왜곡된 통계로 부풀려지는 불안감', '정확한 범죄문제인식: 강력범죄의 89%여성 피해자 그 속에는', '고위직 여성공무원의 비율과 그 속에 숨겨진 진실', '저출산의 원인은 과연 여성들의 출산 기피 때문인가?' 등의 주제들이다. 이는 최근 여성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많은 통계들이 대중에게 노출된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에서 언급한 한국의 유리천장 지수가 세계 최하위를 기록했다는 '이코노미스트' 통계의 경우도, 유리천장 지수를 분석하는 요인들이 무엇이고, 함께 비교된 다른 나라와 우리의 중요한 차이는 무엇인지까지 들여다봐야 정확한 의미를 해석 할 수 있다. 비교국가들에 비해 한국은 산업화의 후발주자이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그만큼 늦게 시작되었다. 국가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평면적인 비교를 근거로 '82년생 김지영'에서처럼 여성이 일하기 '가장' 힘든 나라라 규정하는 건 비약이다. 미국만 해도 유급 육아휴직제도가 아직 극히 일부 주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한국은 여성이 일하기에 여전히 부족한 면이 많지만 변화하고 있고, 노력하는 국가다.

성별임금격차의 중요한 원인은 경력단절 문제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문제도 상당 부분 여성차별과 연관되어 있다. 최저임금도, 장기근속자 중심의 임금체계도, 육아와 출산에 대한 지원도 모두 여성의 임금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성차별 뿐 아니라 다양한 차별이 개선되어야 여성에 대한 차별도 줄어들게 된다. 정부는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책을 계속 마련해서 시행하고 있다. 그 정책들이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게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사태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나 목적에 부합하는 통계만을 취사선택한 주장들을 많이 본다. 운동가들과 언론매체가 흔히 쓰는 방식이다. 단순하고 선명한 구호, 본질을 드러내는 간결하고 압축된 문장을 위해 많은 것을 생략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불러오는 반동과 부작용에 대해서는 얼마나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을까?

동료시민과 대결할 것인가, 함께 해결할 것인가?

극단적인 수치를 강조해 실제 존재하는 차별을 왜곡되게 인식하고, 분노와 불안, 대결을 자극하는 방식은 사회구성원들의 연대의식을 해치고, 배제에 대한 분노를 만든다. 여성을 언제나 피해서사의 주인공으로만 두는 일은 여성 자신에게 해롭다. 스스로를 변화의 주체와 동력으로 인식하기보다 피해자라는 정체성과 불행한 현실 속에 가두게 된다.

'남성 경제활동참가율 93.4%지만 여성은 독박육아 탓에 59.8%뿐'이라는 표현의 성별 비교는 여성의 피해사실을 강조한다. 93.4%라는 숫자에는 여성이 독박육아를 하는 동안 가계를 책임지기 위해 '독박노동'하는 남성들이 포함된다. 93.4%도, 59.8%도 자발적인 선택인지 비자발적인 감수인지 알 수는 없다. 93.4% 남성이 원했던 삶도, 59.8% 여성이 원하지 않는 삶도 우리는 알 수 없다. 그저 피해자로서 여성, 여성보다 우월한 지위의 남성이라는 대립구도가 남는다.

함께 연대해 문제를 해결할 동료시민을 피해자/가해자 구도로 인식하게 하는 한 공존의 해결방식을 실행하기는 어렵다. 혐오와 대립이 쌓여 일어나는 성별대결의 사건들을 우리는 계속 목격하고 있다. 남성 중심 사회의 구조적인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사실만큼, 우리는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는 공동체의 성원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중요한 건 누구도 배제하지 않은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모든 여성이 취업과 재취업을 원하는 건 아니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선택으로 취업 대신 전업주부의 삶을 택한 여성도 많이 있고, 그게 더 행복하기 때문에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여성들이 있다. 여성이 모두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걸 정상의 상태로 가정하면 그렇지 않은 삶은 비정상적인 것이 되고, 그녀들의 욕구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게 된다. 82년생 김지영 이야기는 많이 들을 수 있지만, 전업주부의 삶에 만족하는 다른 김지영들,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일하고 아내의 고통을 이해하고 도우려는 김지영의 남편, '79년생 정대현'들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국가는 사회구성원들이 최대한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고 싶은 사람은 그 욕구대로, 그 중 하나를 선택하고 싶으면 그것대로 정책이 설계되어야 한다. 어떤 성별이 어떤 선택을 하든 국가는 그에 따른 불이익이 없도록, 중요한 건 국가의 생산성이 아니라 개인의 삶이 행복한가에 맞춰져야 하고, 성별임금 문제도 그렇게 다뤄지면 좋겠다.

대결보다는 해결 중심의 사고를 우선으로 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솔직하게 패를 꺼내놓아야 한다. 주장에 유리한 44%만 보여줄 게 아니라, 56%라는 비차별적인 수치를 함께 보여줄 때 구성원들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같이 인지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 왜곡하고 거짓말을 한다는 오명을 굳이 감수할 이유는 없다. 과장한다고 해서 더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솔직하게 보여준다고 해서 이 문제가 결코 사소해지지도 않는다. 공정하고 좀 더 정의로운 방식으로도 우리는 약자의 편에 설 수 있다.

분노는 대상과 초점이 정확할 때 변화의 동력으로 작동한다. 그렇지 않은 분노는 증오사회의 거름으로 쌓일 뿐이다. 왜곡된 선동을 하는 사람들, 목적을 위해 부정의한 수단을 사용하는 사람들,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 극단주의자들이 우리를 대표하게 해서는 안 된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우울했다는 젊은 여성은 56퍼센트가 성별관계 없이 채용하겠다고 답한 사실을 알게 된 후 위안이 되었다고 했다. 딸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후 직장에 복귀한 그녀는 내 딸이 살아갈 세상이 여전히 불행할 거란 생각에 우울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이런 우울과 불안을 여성들에게 안겨줄 필요는 없다. 우리 사회는 약자들에게 여전히 부족한 숫자들을 가졌지만 괜찮은 숫자들도 꽤 보유하고 있다. 82년생 김지영들 뿐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의 이야기가 솔직하고 정확하게 드러날 때, 누구의 이야기도 배제되지 않고, 어떤 문제도 사소하게 취급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