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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혐: 정숙씨의 게장에는 있고 정은씨의 성명서에는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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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며칠 트위터에서는 영부인 정숙씨가 재미교포 만찬에 손수 만든 간장게장(과 새우장 깍두기 등이었다고 한다)을 대접한 것에 대한 비판과 김정은의 성명서에 여혐이 없어 신선하다는 칭찬이 이슈였다.

trump kim jong un

'정숙씨'가 미국교민들을 만난 자리에 직접 담근 간장게장을 공수해 접대했다는 미담성 기사에, 트위터 페미니스트들은 영부인이라는 공적지위를 가진 여성을 요리하는 성역할로 고정해 가부장제에 복무시킨다는 비판을 가했다. 독립적인 활동을 했던 미셀 오바마를 본받으라는 말도 있었다.

이처럼 청와대 홍보담당자의 젠더감수성을 비판하니 미셀 오바마가 스파게티를 요리한 사진기사가 바로 반박근거로 올라온다. 김정은이 직접 썼다는 미국비난 성명서에 여혐이 하나도 없다며 신선하다는 칭찬에는 여혐만 안하면 미사일 쏴서 다 죽여도 괜찮느냐는 조롱이 따라붙는다. 날마다 트위터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트위터가 넷페미니스트들의 공간이 되면서 여초커뮤니티 유저들이 많이 유입되었고, 폐쇄적이었던 여초커뮤들 의식의 흐름을 들여다보기 쉬워졌다. 이들은 모든 사안을 여혐인가 아닌가, 페미니즘에 부합하는가 아닌가라는 기준으로 본다. 물론 그 기준이 중요하다고 여긴다면 그럴 수 있다. 문제는 자신들의 기준에 반하면 곧 부정의로 규정해버리는 위험성과 편협함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후 알려진 '정숙씨'의 행보는 다양했다.

정숙씨는 지난 7월 독일 방문 일정에 올해 탄생 100주년인 윤이상의 묘소를 참배하면서 특별히 그의 고향 통영의 동백나무를 가져갔다. 그녀 자신 음악을 전공했던 사람으로서 영감을 주었던 위대한 예술가를 기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반공과 분단, 독재가 지배했던 시절 간첩으로 낙인 찍혀 끝내 조국에 오지못한 그의 명예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8월에는 군의문사 문제를 다룬 연극 '이등병의 엄마' 를 관람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연극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는 가족들은 그녀와 함께 펑펑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얼마전 독일 방문에는 교민 만찬 자리에 파독 광부에 이어 파독 간호사도 대표로 연설을 할 수 있도록 즉석에서 남편인 대통령에게 제안해 이를 성사시킨 장면이 화제가 됐다.

전 주한미국대사 부인한테는 입고 있던 한복을 즉석에서 선물로 주며 한국의 전통문화 홍보를 톡톡히 했다는 기사도 있고, 수해 현장에 직접 찾아가 일하기 편한 차림으로 복구작업에 뛰어든 장면도 많이 회자됐었다.

취임 후 영부인으로서 그녀는 조용하게 다니는 듯 하면서 여러모로 계속 화제가 됐다. 정숙씨의 행보는 울퉁불퉁했던 현대사로 인해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이 정부가 잊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 대외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와 정체성을 알려야 하는 위치에 대한 자각, 현재 고통받는 국민들의 현안을 이 정부가 외면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들이었다. 기획된 것이든 아니든 결과는 그렇다.

설사 그 행보가 기획의 산물이라 해도 이를 행하는 당사자가 사안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인지, 행동양식이 어떤지에 따라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정숙씨는 소탈하고 편안한 옆집 아줌마 같으면서도 체제에 저항하는 삶을 산 남편과 한 시절을 겪어낸 이력이 이따금씩 드러나는 캐릭터다. 한 인간의 총합적인 이미지가 기획으로만 완성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정숙씨가 전업주부로서 충실하게 내조에 집중하는 살림의 여왕이라 해도 비판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래 전 고국을 떠나 해외에 살고 있는 교포들에게 고향의 맛을 손수 전하고 싶다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장기를 살려 지위에 부합하는 일을 하고 있는 여성으로서 정숙씨의 주체적인 행위 또한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가치다.

사람은 누구나 잘 하는 일이 있고,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 일을 즐겁게 여긴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지만 그렇지 못하다 해서 의미 없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방식대로 사는 삶이 모여 우리 공동체가 유지되고 굴러간다. 여성성이 돋보이는 내조의 여왕 영부인이냐, 독립성이 돋보이는 퍼스트레이디냐는 호오의 영역일 수는 있으나 옳고 그름의 영역은 아니다.

애초 영부인이라는 지위 자체가 대통령에 세트로 묶여 설정되는 자리다. 페미니스트들의 기준대로라면 내추럴 본 가부장제의 산물이다. 아예 영부인이라는 지위를 없애도록 제도를 바꾸는 투쟁을 하거나, 메르켈의 남편처럼 자기 직업을 가지고 독립된 개인으로 살도록 촉구하거나 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정숙씨의 다양한 행보 가운데 그녀와 청와대 홍보담당자의 젠더감수성을 비판하기 위해 이번 간장게장 대접사건을 가져오는 것은 공정하지 못할 뿐 아니라 부당하다. 세상의 모든 사안을 이처럼 한 가지 기준으로만 보면 한반도가 전쟁의 위험으로 긴장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에서 핵위협을 가하는 당사자의 성명서를 보고도 여혐이 없어 신선하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이런 의견이 차라리 농담이면 좋겠는데 진지하다. 공동체의 위기의식과 동떨어진 주장들을 보면 그들이 잘 쓰는 용어가 떠오른다. 크리피함.

당신(진영)의 기준이 모두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당신의 예민함이 곧 정의가 아니며 당신의 불편함이 곧 부정의의 근거도 아니다. 우리는 좀 더 공정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와 <직썰>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