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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희 Headshot

양손잡이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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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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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잡이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우연한 계기로 그가 남들과 손을 다르게 사용한다는 것을 우연히 알았다. 칠판에 글을 쓸 때에는 오른손을 사용했고 책 위에 메모를 할 때엔 왼손을 사용했다. 젓가락을 쥘 때에는 왼손을, 가위질을 할 때에는 오른손을. 도표를 작성하듯 그의 손 사용 행태를 정리하다 양손의 움직임이 능숙한 남자는 연인의 몸을 어떻게 다룰까 궁금해졌다. 저녁식사 중 그의 손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람의 몸을 만질 때도 어떤 규칙이 있어?"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각한 아침 문을 열고 들어선 강의실에서였다. 강사의 앳된 얼굴을 보고 교실을 잘못 찾아왔다는 착각에 문을 닫고 줄행랑을 치려던 참이었다. 그가 닫힌 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이미지의 역사' 들으러 오신 것 맞죠? 그럼, 들어오세요."

100명이 넘는 학생들의 시선을 뚫고 빈자리에 앉을 때까지, 강단에 서 있는 그를 향해 시선조차 돌리지 못했다. 의자를 밀고 책상에 앉아 자리를 잡을 때까지 타악기 주자라도 된 양 온몸으로 여러 소리를 냈다. 그는 수업을 멈추고 기다렸다. 상황이 정리되자 양손을 들어 잡아끄는 시늉을 해 보이며 학생들에게 말했다.
"그대로 가버리려는 그녀를 겨우 붙잡았어요."
그의 손놀림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허공을 가르는 손짓만으로도 그에게 잡혔던 양 어깻죽지가 화끈거렸다. 이유를 알 수 없어 손의 움직임을 유심히 바라보다 잠시 후에 깨달았다. 그는 양손잡이였다. 첫 데이트를 하던 날, 그의 사소한 특징을 알고 있음을 그럴듯하게 밝히고 싶었다. 몸을 만질 때에도 규칙이 있느냐는 질문은, 남다를지 모를 그의 양손의 움직임을 바로 내 몸에 실험해 보고 싶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동안 그를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리고 싶었고 조금은 도발해 보고도 싶었다.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다른 질문들을 누르기 위해 엉뚱한 물음을 던진 것이기도 했다. '어떤 타입의 여자를 좋아해? 마지막 연애는 언제야?' 같은 그런 것들.

호기심과 구체적 욕망의 간극은 어마어마하다. 욕망을 느끼는 것과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데에도 엄청난 거리가 있다. 자신을 보듯 들여다볼 수 없는 미지의 존재는 신비와 위험 사이를 오가기에 더욱 매력적이다. 매혹과 안전 사이 어딘가에 있을 관계의 적정지대를 찾기 위해 도발은 필요하다. 네가 도발했으니 나는 어쩔 수가 없었다는 말은 그래서 무책임하다. 도발에는 바로 항복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맞서는 것이다. 유혹은 도발의 수위를 단계에 맞게 조절하는 협상 테이블과 같다. 나는 미지의 양손잡이 사내에게 도발을 연기할 수 있었지만, 알몸을 드러내는 일이 두렵고 부끄럽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 현실이었다. 서로를 향한 막연한 호감 말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왜 하필 나에게 호감을 느낄까? 이 낯섦을 무릅쓰고 다가갈 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가치 있는 상대일까? 나와 그는 각자의 자리에서 더 깊은 회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점차 도발의 수위를 높여가는지도 모른다. 이대로 돌아서기에는 당신은 너무 매력적이라는 설정에서 당장은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 때였을 거야. 무심코 물건을 집다가 알게 되었어. 왼손을 사용하는 느낌이 꽤 괜찮다는 걸. 마치 오래전에 잃은 무언가를 다시 발견한 느낌 같기도 했어. 그 뒤로 왼손을 더 자주 사용하게 되었어. 양손이 모두 같은 느낌으로 익숙한 경우는 없는 것 같아. 나는 왼손잡이로 태어났다가 오른손잡이로 자라났어.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세상은 오른손잡이를 위해 디자인된 곳이야. 냉장고 문을 열 때도 지하철 개찰구를 지날 때도 따져보면 알 수 있거든. 왼손잡이들은 세상에 어색한 존재로서 길들여지는 거지. 물론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양손을 사용하니 애무에는 좀 더 능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는 해."
그는 대답과 함께 왼손을 들어 내 오른손을 살짝 만졌다.

그의 아파트는 파리의 퐁피두센터 근처 거리의 5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번잡한 거리 위였는데도 아파트 안은 거짓말처럼 고요했다. 아파트가 자리 잡은 오래된 건물의 오래된 엘리베이터는 자주 작동하지 않았다. 계단을 밝히는 전등은 불이 나가기 일쑤였다. 그의 집을 처음 방문한 날,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았고 우리는 캄캄한 어둠 속 계단을 더듬어 올라갔다. 계단이 들어선 복도는 두 사람의 몸으로도 꽉 들어찼다. 몸을 붙이기보다도 떨어뜨리기가 더 어려운 공간 속에서 손바닥에 땀이 배리만큼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 내가 의존하는 것은 오직, 그의 양손에 밴 감각이었다. 숱한 암흑의 날들 동안 그를 5층 자신의 방으로 이끌었던, 허공을 더듬고 휘저었던 양손의 기억에 온전히 기대는 중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와 나의 숨결만이 가쁘게 오고 갔다. 그의 숨에서는 단내가 났다. 얼굴로, 귀로, 목덜미로 쏟아지는 달콤한 열기에 어둠으로 곤두선 감각이 요동을 쳤다. 하지만 훤한 불빛 아래 들어서자 낯선 모습이 세세히 드러났다. 귀는 너무 커다랬고 턱은 너무 뾰족했다. 거실을 가로지르는 걸음걸이는 생소했다. 좀 전에 우리를 휩쓸고 간 느낌에만 매달리기에는 자의식이 너무 또렷했다. 서먹함은 나 혼자 느끼는 감정이 아님에 분명했다. 그는 조금 머뭇거리는 몸짓으로 나를 서재로 안내했고 차를 대접했다. 책과 음반을 구경하며 서로의 취향을 알아내려 애썼고 좀 더 빨리 습득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책장에 서 있는 내게 그의 입술이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리자 그가 말했다.
"앞서갔다면 미안해."
나는 대답했다.
"너에게 호감이 없는 건 아니야. 다만 이렇게 빠른 속도에 익숙하지가 않아."
"네가 원할 때까지 기다릴게. 내가 얼마나 오래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인 줄 알게 되면 아쉬워질지도 몰라."
그의 얼굴에 살짝 번지는 미소는 어처구니없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의 말에 웃어버렸고 쑥스러웠을 순간도 무사히 지나갔다. 작별을 고할 시간이었다.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그의 집을 나와야 했다.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작동하지 않았고 복도 전등에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그의 손에 의지해서 계단을 내려와야 했다. 은밀한 둘만의 공간이 아닌 인파로 붐비는 거리로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기 전 두 손을 들어 그의 목을 휘감았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에게 먼저 입을 맞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왼손을 사용하는 느낌이 꽤 괜찮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마음껏 사용한 적 없는 내 욕망을 들어 활짝 펼쳐 보이는 즐거움을 깨달았다. 지금껏 나는 오른손을 쓰는 왼손잡이처럼, 혹은 왼손을 쓰는 오른손잡이처럼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무슨 손을 당신에게 내밀고 싶은지조차 알 수 없었으니까. 나의 욕망은 오해받을까 먼저 두려운 손이었고 드러냈다가는 손가락질 받을까 망설여지는 손이었다. 그렇게 사용법을 절반쯤은 잊어버린 손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인적이 드문 골목을 지나면서 양팔을 들어 올려 보았다. 울퉁불퉁한 돌길의 선을 따라 발을 내디뎠다. 균형을 잡는 데에는 양손의 힘을 빌리는 편이 더 좋다. 우리 모두 양손잡이가 되어야 할 시간이 있다. 그리고 양팔을 벌리는 데에 필요한 건 이만큼의 공간이다. 마음껏 욕망해도 쫓기지 않을 수 있다고 안심하자 상상의 폭은 한껏 넓어졌다. 조급하게 내몰리지 않을 만큼 넉넉한 공간을 확보하자 과감하게 다가서고 싶어졌다. 다음에 만날 때면 나는 그 앞에서 좀 더 도발하는 여자가 될 것이다.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유혹의 학교>의 내용 중 일부이며, 한겨레 신문 토요판 2014년 10월 18일자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