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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누구도 완성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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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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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예순을 넘겨서 이혼을 했다.
나는 마흔을 넘겨서 이혼을 했다.

엄마의 경우도 그렇지만,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으나 이혼을 결정하는 일은 명확했다. 엄마는 농담 삼아, 결혼하는 데에는 몇 달이 걸렸는데 이혼하는 데에는 40년이 걸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다행히, 아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지만, 관계를 서로의 변화에 맞게 갱신하지 못했다. 각종 상담을 받으며 노력도 해 봤지만, 우리의 결론은 자연스럽게 이혼으로 향했다. 이혼이라는 여정을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새롭게 고찰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더 깊고 명료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혼 후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다시 결혼할 의사가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제 막 결혼을 벗어난 사람에게 곧바로 결혼이라는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것이 당황스럽지만, 간편하게 대답한다.
"이제 막 결혼을 끝냈어요. 한동안은 결혼 생각 없이 살아보고 싶은데요."


내 인생을 모두 결혼과 남자, 가족 관계와 연결시켜 바라보는 시선을 접하는 건, 결혼 전이나 이후, 이혼 후까지 변함이 없다.


가장 당황스러운 반응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혼의 상처가 컸으니 남자가 지겨운 건가요,부터, 이혼을 인생의 실패로 바라보는 동정까지. 대답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입을 다물게 하는 말들이다. 내 인생을 모두 결혼과 남자, 가족 관계와 연결시켜 바라보는 시선을 접하는 건, 결혼 전이나 이후, 이혼 후까지 변함이 없다. 재혼 여부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에게, 먼 훗날 홀로 늙는 일의 괴로움까지 미리 염려해주기까지도 한다. 그럴 때면 대꾸한다. 늙어 죽을지 젊어 죽을지 알지도 못하는 인생인데, 늙어 외로울 것까지 왜 미리 염려하나요. 내가 하는 말이나 쓰는 글에서 줄기차게 결핍과 외로움을 발견해내는 사람도 있다. 일부러 괜찮은 척하는 것이 안쓰러워 보인다며 걱정까지 해 준다. 그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혼의 스트레스보다, "정상값"을 설정한 채 "비정상"을 걱정하는 그 오만이 더 피곤하다고.

아이들이 다니는 미국의 작은 사립학교는 개방적인 교육으로 근방에서는 잘 알려진 곳이다. 7년 전, 만 다섯 살 아이가 학교에서 첫 날을 보낸 날 집에 돌아와서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세상에는 다양한 모습의 가족이 있어요. 아이와 엄마, 아빠로 이루어진 가족도 있고 엄마, 엄마 그리고 아빠, 아빠 혹은 엄마 하나, 아빠 하나로 만들어진 가족도 있어요. 벌써 내 단짝이 된 친구 엘리는 아빠가 둘이나 있대요. 정말 멋지지 않아요?"
지금까지 같은 학교를 다니는 딸의 학급을 살펴보면, 그간 함께 했던 부부가 이혼하기도 하고 재혼 혹은 동거 등의 관계 변화를 겪었다. 아이들은 그 속에서 가족이란 다양하게 시작되어 다양한 형태로 거듭날 수 있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덕분에 나의 이혼도 아이들에게 큰 무리 없이 이해될 수 있었다. 친한 친구 클로이의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혼해서 싱글 맘으로 여태껏 클로이를 키워오고 있다. 현재 사진작가인 남자친구가 있지만, 그는 근처에 살며 일상의 일부를 함께한다. 그들의 느슨한 관계를 클로이 역시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언제나 미완의 상태이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정신적 신체적 결함으로 여겨진다.


이혼해서 좋은 점은 엄마이자 아내로서의 틀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나라는 인간을 아이들에게 소개할 수 있어서다. 엄마란 아빠와 한 세트로 이해되는 존재만이 아니라, 따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온 존재로 보여주는 일을 치렀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이들과의 관계도 더욱 긴밀해졌다. 아이와의 관계 외에 이혼 이후 더 좋아진 점이 있다면, 남녀관계로부터의 자유로움을 들 수 있다. 대학에 입학한 직후부터 마흔 넘어 이혼할 때까지, 내 곁에는 항상 연인들이, 결혼 후에는 남편이 있었다. 아버지의 딸로 자라난 시간을 지나 한 남자의 아내로 연결되는 지점까지, 어쩌면 단 한 번도 온전한 내 자리를 누린 적이 없었다. 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 자랐고 남들 보기에 부성을 마음껏 누리지 못한 존재일지 모르지만, 누구보다도 긴밀한 사랑 속에 자랐다. 할머니의 포근한 사랑이 있었고 두 살 차이 나는 언니와의 끈끈한 연대와 존중의 관계가 있었다. 착한 딸로서 기대에 부응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애써야 하는 부모와의 관계보다 더 넓고 자유로운 사랑이었다. 나의 자존감이 누구보다 단단한 이유는, 사랑이란 반드시 정해진 자리에서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 수용하고 누리며 자라났기 때문이다. 성장 과정을 통해 잊지 못할 우정을 맺었고 그들이 내게 미친 영향은 부모의 사랑 유무보다 어쩌면 더 대단했다. 그럼에도 이 사회 속 인간의 성장은, 부모의 가장 큰 영향력 속에서 결정된다고 믿어지고 이후에는 결혼 유무 및 출산 여부에 따라 일률적으로 평가된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언제나 미완의 상태이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정신적 신체적 결함으로 여겨진다. 나라는 개인은 매번, 아빠의 딸에서 한 남자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이어야만 제 구실을 다하는 듯 설명된다. 채워도 내내 부족한 채로, 미완의 삶을 어떻게든 제도의 틀 속에 완성시켜 보려고 애를 쓴다. 행복은 여기에 없고 저기에 있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 속에, 바라던 상대를 만나 부부가 되었을 때, 아이를 얻었을 때, 보란 듯이 잘 키웠을 때 등등, 아무리 달려도 새로운 목표가 제시되는 경주와도 같다. 이탈자는 현재의 불행만 보고 미래의 불행을 미처 깨닫지 못한, 어리석고 무책임한 종족으로 가치 폄하되곤 한다. 싱글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의 미완이고, 아이를 낳지 않음은 언제 무너질지 모를 불안한 결합의 징조가 된다. 그러나 부부가 있고 아이가 함께 하는 가정생활이라고 완벽한 것도 아니다. 이혼이라는 실패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참고 인내하고 현재의 불행을 감내하는 대신 정상의 안정성에 기대어 비정상성을 분류하여 폄하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한국의 이혼율은 악명 높은 미국의 이혼율을 거의 따라잡은 지 오래고 그나마 부부 관계를 유지한다고 해도 관계가 즐거움보다 고통의 연속으로 설명되는 사람들투성이다. 14년 전 미국 생활을 시작할 때, 먼저 와서 정착해 살던 한 친구가 말했다.
"미국의 이혼율과 한국의 이혼율은 의미가 달라. 이곳에서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의 단위로 생각되거든. 어디를 가든, 가족 단위나 커플 단위로 초대받아. 그러다 보니 사이가 좋지 않으면 일상을 견디기 힘든 지경이야. 한국처럼, 남편 따로 아내 따로의 삶이 가능하지 않으니 유보하지 않고 결정을 더 명확하게 내릴 수밖에 없는 거야."
그녀의 말은 옳았다. 게다가 결혼 관계 속 경제적 약자가 보호되는 이혼법에 의해 많은 여성들은 이혼을 한국 여성들만큼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그렇다. 사회적 편견이 덜한 것도 한 몫 한다. 아이의 학교 선생님 중 한 여성은 결혼을 하지 않은 채로 임신을 했고 올해 가을이면 아이를 낳는다. 모두들 그녀의 임신을 축하했고 그녀의 여정에 응원을 보냈다. 나는 그들 속에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자연스러움을 배운다. 연인 없음이 얼마나 많은 결핍을 애초에 삭제하는지도 경험 중이다. 남편이자 오랜 연인이었던 한 존재가 사라지면서 깨달았다. 연인과의 사랑은 때로 내게 더 큰 결핍을 느끼게 했다. 애인이 있으니 남자가 필요해졌다고나 할까. 사람이 있으니 그 자리가 생긴 것처럼. 남편도 연인도 없어지자 그들의 자리가 사라졌다. 자리가 사라지자 결핍도 사라졌다. 앞으로의 사랑은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을 비로소 품게 되었다. 14년의 길다면 긴 이민자로서의 삶에서 나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여성들의 공동체를 얻었다. 그녀들과 함께 보살피며 의지하며 결혼을 넘어 이혼을 지나가는 중이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에는 마을 하나가 아니라 나라의 수고가 필요하다. 더 이상 결혼 제도와 육아를 한 데 묶어 사고하기에는, 결혼은 너무 낡았다.


얼마 전 한국에서 만나 서로 마음으로 아끼게 된, 2년 후면 서른이 될 여자가 내게 말했다.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아요. 아이도 낳고 싶지 않고요."
그녀에게 대답했다.
"결혼하지 않아도 좋아요. 아이를 낳지 않아도 좋고요. 그리고 결혼과 육아를 함께 묶어 생각하지 않아도 좋아요. 여성들이 결혼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죠. 그리고 그렇게 되고 있다고 믿어요. 그래도 숨고 싶을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럴 때면 나한테 와요. 숨겨줄게요. 쉬고 싶은 만큼 쉬다 가세요."
웃으면서 덧붙였다.
"혹시 조용히 아이를 낳고서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면 나를 찾아도 좋아요."
나의 엄마는 내가 두 아이를 낳았을 때 한국에서 먼 타국으로 한 달음에 날아와 그들을 품에 안고 돌봤다. 이와 같은 나눔은 엄마와 딸이라서 이루어진 것만이 아니란 것을 이제는 안다. 나의 여자친구 B와 나는 임신 기간부터 지금까지, 서로의 아이를 안고 보듬고 함께 키웠다. 여성은 여성을 돌본다. 우리의 사회가 우리에게 고난이었던 것만큼, 우리는 서로를 돌보는 일에 더욱 더 익숙해졌다. 다만 나는 보살핌이 가족의 의무나 개인의 호의가 아닌, 제도로 정착되어 모두가 여유롭게 누리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누군가의 선의에만 의지하여 굴러갈 수는 없다. 급격한 출산율 저하를 겪는 저성장의 고비용사회가 결혼 제도의 장려만으로 구성원의 지속적 유지는 불가능하다. 결혼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지향하는 신인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에는 마을 하나가 아니라 나라의 수고가 필요하다. 더 이상 결혼 제도와 육아를 한 데 묶어 사고하기에는, 결혼은 너무 낡았다. 인류는 진화한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역사적인 순간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질서가 유지되는 한, 권력을 거머쥔 자에게 사랑이란 비교적 수월한 행위이다. 사랑이 민낯을 드러내는 자리는, 바로 자신이 정의한 질서가 흔들리는 곳이다. 사랑이 탄생하는 자리는 나의 질서가 흔들리며 나의 질서를 되묻고 세상의 질서를 의심하며 너의 질서를 발견하는 그곳에 있다. 사랑은 지나가는 자리에 피어나는 생명이다. 결혼하지 않고도 혼자 삶을 즐길 권리,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고 키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이를 향한 과정은, 제도와 개인이 어떻게 협상하며 살아남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현장이 될 것이다.

과도기는 새로움을 동반하는 창조적인 시기다. 과도기에는 종종 평소에 알지 못했던 생명력이 발휘되고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과도기는 인생 중에 만나는 '시적인 지대'다. 과도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질은 무척이나 달라진다.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나탈리 크납 저, 프롤로그 중)

사회 역시 그러하다. 섣불리 질서와 안정을 설파하지 말라. 우리는 과도기에 있고 우리의 과도기는 생명과 연대와 보살핌으로 넘쳐나는 '시적인 지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