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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핑계 삼아 함부로 넘어서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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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는 여자를 앞에 두고 아무 짓도 하지 않는 놈이 남자냐?"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의 아파트를 뛰쳐나왔다. 온몸을 압박하는 공포감에 무작정 거리를 걸어 나갔다. 몸을 숨길 곳을 찾고 싶었지만, 날은 화창했고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지하철역 옆 대로 한복판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울기 좋은 곳은 때로는 좁은 방구석보다 익명의 사람들 틈이란 걸 그때 알았다. 쏟아내듯 울어버리고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그제야 내가 있는 거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파리의 17구, 21세기가 막 시작되던 여름이었다.

가난한 유학생으로 산다는 건 그만큼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었다. 행사 관련 통역 일을 몇 차례 맡으면서 출장온 남성들이 외국을 방문하는 것, 그것도 파리라는 도시에 머무는 상황에 어떤 환상과 해방감을 느끼는지 목격했다. 중년의 남성이 나이 어린 아르바이트생을 상대로 벌이는 일은 가벼운 로맨스를 의도했으나 실체는 성급한 성추행에 가까웠다. 문제는 나에게는 명백하나 남들의 시선으로 어떻게 해석될지 자신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지레 겁을 먹고 미리 수치심에 시달렸다. 나는 1년 전 그의 성추행을 한 차례 눈감아준 적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화를 냈고 사과를 요구했고 그가 한 사과가 진심 어린 것이었다고 믿어버렸다.

우리는 제법 호흡이 잘 맞았고 함께 일하는 동안은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개의 자리에서 벌어진 성추행은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했다. 나는 그를 용서했고 좋은 친구가 되었다고 믿었다. 일이 마무리된 이후 다시 파리를 방문했던 그를 대가 없이 돕기조차 했다. 사건이 벌어진 날은 함께 술도 마셨고 잠시 가져올 물건이 있어서 아파트에 올라가야 한다는 그의 말에 아무런 의심 없이 따라가기까지 했다. 그가 입맞춤을 시도하는 순간까지 나의 상상력은 단 한 번도 그의 욕망에 닿지 못했다.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상대를 두고 미리 방어하는 일은 생각만큼 자동적으로 벌어지지 않는다. 완력으로 거듭하여 나를 끌어안는 상대를 밀쳐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때는 모든 것이 한 발짝 늦어 보였다. 그의 정중한 사과는 다시 반복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들은 말은 자신은 수컷이니 들이댐은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경계를 침범하는 일에 너무나도 당당하면 침범당한 자는 더 위축되기도 한다. 그 뻔뻔함에 화가 나면서도 공포를 느꼈다.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가 길을 걷는데 아득함이 사라지자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죄책감과 수치심이었다. 그를 의심하지 않은 죄, 그와 술을 마신 죄, 그를 따라 아파트까지 올라간 죄. 그리고 그 모든 일을 멍청히 방관했다는 수치심.

지금은 그 순간을 또 다른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때 제대로 대응했어야 했다. 그의 행동이 엄연한 성추행이라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알렸어야 했다. 나를 자책하던 에너지를 다르게 사용했어야만 했다. 이후로도 끊이지 않는 그의 성추행 소문이 바람처럼 흘러들었다. 씁쓸한 기분으로 소식을 외면했다. 어쩐지 공범이 된 기분이었다.

어릴 적 언니와 함께 썼던 방은 가족 누구나 함부로 열고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내가 개인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사적 공간이란 어디에도 없었다. 공간은커녕 내 몸조차도 호기심에 들춰지고 까발려지는 세상이었다. 아이스케키를 하는 남자아이의 행위는 짓궂은 관심의 표현으로 해석되었다. 당한 여자아이는 적당히 소리 지르고 한 번 꼬집는 정도로 사태를 마무리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화가 나서 소리를 질러대도 주변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은밀하든 노골적이든 각종 성희롱을 받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날마다 곳곳에서 상대가 남성이라는 이유로 공포를 느꼈다. 후미진 골목, 인적이 드문 계단을 걸어갈 때 낯선 남자의 등장은 끔찍한 상상의 원천이 됐다. 이성애자라는 사실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때로 매혹되는 존재를 잠재적 공포와 불쾌의 대상 속에서 발견하는 피로함을 아는가. 쫓기고 지키는 일로 점철된 성장 과정 속에서 여자인 내 몸을 알고 고유한 욕망에 익숙해질 공간적, 시간적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경계에 관한 인식조차 배우지 못하며 성장했다. 이중적 성윤리를 내면화하면서, 몸은 성숙했으나 철저히 외면당한 채 정신은 성숙한 여성이 아닌 소녀의 단계에 머물렀다. 천진하다 못해 무지한 여자아이로 남는 것이 매력적 여성이 되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것이 힘겨운 버티기임을 깨달은 때는 이미 상처투성이가 되고 더는 감내할 수 없다고 느낀 뒤였다. 주도권을 잃은 채 욕망의 대상으로 소비되는 것이 부당하다는 걸 알기까지 청춘의 빛나는 시간을 낭비했다. 가끔은 생각한다. 나는 그때 가장 아름다운 몸을 두고도 행복하게 누리지 못했다고. 사용법을 모르는 채로 남아야 '좋은 여자'가 되는 길이라고 믿었다고. 내 욕망은 검열되기도 전에 삭제되었다. 왜곡된 해석에 길든 몸을 다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길은 멀리 돌아가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욕망은 험난한 지형 속에서 실종되기도 한다.

내가 최초로 남자의 몸에 먼저 반응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중학교 때였다. 이사를 갔고 만원 버스에 올라 학교로 향하는 길이었다. 나는 버스 앞문 쪽에 가까스로 자리 잡고 있었다. 잠시 후 한 남학생이 올라탔다. 짧게 깎은 머리에 희고 갸름한 얼굴을 한, 수줍은 인상의 소년이었다. 동네 서점에서 몇 차례 마주친 적 있는, 그가 읽던 소설을 어쩐지 따라 읽고 싶었던 골똘한 눈빛의 남자였다. 우리는 이리저리 밀리지 않으려고 애타게 손잡이에 매달렸다. 같은 손잡이에 의지하던 터라 그가 나를 뒤에서 감싸 안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필사적으로 거리감을 유지하려는 그의 노력이 등 뒤에서도 또렷이 느껴졌다. 흔들리는 버스 안, 몸과 마음이 까무룩 잠겨서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넉넉한 품 안에 잠긴 듯 아늑한 기분이었다. 5분이 넘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의 몸은 단 한 차례도 부딪치지 않았다. 비로소 상황에서 벗어났을 때에는 내 몸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둘 사이의 좁은 공간이 남기고 간 감각이 한동안 등 뒤에서 어른거렸다. 뒤늦게 깨달았다. 둘 사이에 또렷이 자리 잡은 경계와 거리에 대한 의식이 나를 욕망하게 했다는 것을. 우리는 가까이 있으나 분리되어 있다는 인식, 경계를 짓고 있는 개체라는 인정, 하지만 그 경계가 출렁이는 순간 유혹이 탄생한다는 사실을(오해하지 마시라. 그 이후 수백 번은 벌어졌을 만원 버스와 지하철의 경험 중 단 한 번도 유사한 느낌을 받아본 적은 없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불시에 벌어진 접촉은 불쾌감을 동반했다).

유혹은 독립된 개체로서 상대의 영역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 행위다. 당신과 함께 나 역시 존중받아 마땅함을 알고서 벌이는 놀이다. 명징한 경계를 의식하고 벌어지는 상호작용이다. '유혹'이 즐거운 이유는 다른 인간에게로 다가가는 다양한 루트를 탐험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무작정 침입하여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행위를 인간의 본능인 양 눈감아주는 것은 오히려 그릇된 사회적 가치해석을 강화시키는 일이다.

아직도 곳곳에 경계인식장애인이 들끓는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나마 몇몇 사건이 사회적 이슈화되고 법적 대응이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운 나쁘게 걸렸다고 믿을' 녀석을 조지는 것으로 상황이 축소된다는 인상을 받을 때도 있다. 상대방의 욕구를 배려하되 내게로 이끄는 과정을 습득하지 못한다면 나의 다가감은 폭력적 난입에 불과해진다. 이는 남성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 욕망만으로 다가설 수 있다고 믿는 자에게는 모두 적용되는 사실이다.

욕망 역시 단련된다. 욕망하고 유혹하고 비로소 가까워지는 희열을 배우면서 나의 욕망 또한 구체적이고 정확해진다. 소통과 배려의 여정 속에서 두 사람 사이에 명확했던 경계가 유혹의 서사에 의해 새로운 영토로 재편되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온다. 경계는 있되 움직이는 것임을, 때로는 겹치고 넘나드는 것임을, 유혹의 지도는 끊임없이 다시 읽히고 쓰이고 있음을. 지도를 다시 쓰기 위해 우리는 오래전부터 정확하게 유혹받고 싶었음을.

버스에서 만난 이후 그다음 날도 등굣길에서 소년을 마주쳤다.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침이면 그를 기다려 만원 버스에 올랐다. 매일이 설레었던 성장의 날들이었다.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유혹의 학교>의 내용 중 일부이며, 한겨레 신문 토요판 2014년 10월 18일자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