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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아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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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소위 좌파 지식인인 중년의 영국인이 가디언에 실린 한국군인들의 한겨울 눈목욕 장면 사진을 들이 밀며, 이거 왜 그러는 거냐, 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서 비아냥을 느꼈더랬고,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남자들은 책임감이 매우 강하다, 그런데 식민지배 때 한국 여자들이 일본에 의해 끌려가고 막 그랬다, 한국남자들은 자기들이 약해서 여자들을 못 지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심신을 강하게 훈련시키는 거다, 알겠냐.

방어적이기도 하고, 질문한 제국 출신의 백인남자의 코를 눌러 주겠다는 다분히 의도적인 대답이었지만, 나는 어느 정도는 이 책임감이, 어쩌면 과도한, 한국남자들의 특징이라고(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외국에서 지내고 있다 보면 한국아저씨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열과 성은 굉장한데(어 물론 고맙다), 지금 그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므로 구체적인 얘기는 생략한다. 하여간 그렇다.

그러나 나는 이 책임감이, 책임을 져야 할 가치가 있는 상대에게만 발현되는 듯하다고도 생각한다. 가족의 일원으로 상대를 치환해야만, 연약하고 보호할 이유가 있어야만, 순결해야만 책임감을 느끼고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상대는 배제되고 잊혀진다.

아직 소녀에 불과했던 순진하고 순결한 딸과 누이가 끌려가 위안부가 되었을 수도 있다. 속아서, 다른 일을 하나보다 하고 갔다가 위안소에서 일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몸을 팔던 여성이, 또는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대략 알면서도 돈을 좀 더 벌려고 갔을 수도 있다. 제발로 갔을 수도 있다는 거다.

요는, 국가 및 군대가 위안소를 설치하고 운영했거나 용인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심각한 인권 유린 및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것이고. 그게 여성에 대한-인간에 대한 거대하고 심각한 범죄라는 것이다. 피해자 개인이 누구든 그것은 관계 없다. 일본군 주둔지 동네에 살던 할머니가 자원하여 위안부 생활을 했더라도 하물며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는 역시 범죄 피해자라는 것이고, 그 궁극적인 책임은 결국 전쟁을 일으키고 군대를 운용한 일본에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왜 애시당초 여성이 몸을 팔지 않으면 안되었겠는가. 누구도 그런 처지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따지고 보면 어려서 팔려간 누군가의 딸이었을 것이고 굶는 아이들을 먹이려 나선 엄마나 아내, 며느리, 할머니였을 것이다. 또는 그저 필사적으로 생존하고자 했던 여성이었을 뿐이다.

피해자를 그 스스로의 개별적 특성에 의하여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성범죄의 피해자가 술을 마시고/ 밤늦게/ 야한 옷차림으로 다닌/ 평상시 행실이 나쁜 여성인지/ 성경험이 있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 옳지 않은 것과 같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순결한 소녀'로 상징하는 것을 흔히 본다. 순결한 소녀로 피해자를 상정하는 것은 호소력 있는 시각임을 안다. 그러나 피해자를 순결한 소녀로 상정함으로써, 그 외의 피해자는 설 곳이 없어진다. 순결한 소녀 이외의 피해자는 진정 하나도 없는가. 다만 여기서 나는 생존한 위안부들의 과거가 의심스럽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밝혀 둔다.

피해자를 억지로 끌려간 순결하고 나이 어린 소녀로만 보는 경우 그 이외의 군 위안부가 존재하였다는 주장에 대하여 불필요한 반박을 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또한 편협하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이다. 다시 말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범죄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