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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이 아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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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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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순실 사태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분노가 단순히 비선 조직이 있었고 거기에 대통령이 의지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런 거에 매우 익숙하다. 멘토, 조력자 또는 비록 아무런 타이틀이 없지만 삼고초려로 거적때기 위에서 머리를 조아려 고견을 들을 만한 강호의 숨은 고수... 오히려 이런 거 조장하기도 하지 않았나. 찾아가서 만나 뵙고 운운. 다만 그 훈수가 어지간하기만 하면, 더 나아가 그 숨은 고수가 존경할 만한 뭔가를 갖추고 있으면.

그러니까 이 좌우를 가릴 것 없는 맹렬한 분노가 국민이 선택한 최고 권력이 아무런 민주적 내지 절차적 정당성 없는 누군가에게 의사결정의 상당 부분을 의탁했다는 것에서만 비롯된 건 아니라는 거다. 어떻게 세상에 저런 정도의 인간에게, 라는 감정이 더해진 것이지. 최순실과 그 주변의 인간들은 어떤 식의 존경은 그만두고 인정을 받을 구석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참말로 없다. 본인은 대학 청강생 출신, 사이비 교주의 다섯 번째 마누라의 딸, 본인도 역술인 내지는 무속인, 딸도 공부를 못해 어거지로 이대에 보내, 근데 그 딸은 온갖 소문이 있는 남자와 만나 임신,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곤 소위 호빠 마담... 이와 같은 사실은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밝혀졌거나 주장된 것들이다. 어우 차라리 차은택이 매우 '고퀄'로 보일 지경이다.

하여간 보자니 그렇다. 저 최 여사가 뭔가 하나만 제도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아우라가 있었다면. 학벌이든 경력이든. 하물며 인물이라도 멀쩡했다면. 아니 뭐 남자이기만 했어도 이 사건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꽤 달랐을 수도 있다는 거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다. 근대를 한참 지난(줄 알았던) 사회의 최고 권력기관의 의사결정 및 권한 행사 시스템이 저 모양이었다는 것. 다른 기관에 의한 교차 검증 및 통제가 불가능했다는 것. 전혀 투명하지 않았다는 것. 어떤 정권에서도 비선은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 내놓고 하면 안 된다. 그 비선이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아줌마'가 아니라 아무리 번듯한 학력과 빛나는 경력이 있는 '믿음직한 남성'이라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그러니까 권한의 행사는 투명해야 하고 검증과 통제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선진 사회가 되려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