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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정상외교는 중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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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부녀 2대에 걸쳐 임기 중에 한 번도 일본을 공식방문하지 못한 대통령이라는 희귀한 기록을 남기게 될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11월 13일부터 6일 동안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10월 6일 대외발표에서는 오사카, 교토, 나라 등 지방방문 일정이 포함되며 육영수 여사와 함께 당시 서강대 3학년이던 맏딸 박근혜가 동행한다고 했다. 예정대로였다면 처음으로 일본을 공식방문한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10월 18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10월 유신을 단행함에 따라 방일 계획은 발표된 지 2주일 만에 전격 취소되었다. 국가원수의 해외방문은 몇 달 전부터 치밀하게 사전준비가 이루어진다. 대외적으로 발표되었을 시점에는 어느 정도 밑그림이 마련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방일 계획이 마지막 순간에 취소되었으니 그 배경에 관해 많은 억측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당시 외무부에서 일본 업무를 담당했던 어느 전직 대사에 따르면 방일 계획이 발표된 후 준비상황을 브리핑하기 위해 청와대에 보고 날짜를 잡아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그때마다 기다리라는 대답뿐이었다고 한다. 청와대 보고가 끝나지 않으면 실무적인 준비가 진행될 수 없어서 외무부가 애를 태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10월 유신으로 방일 계획 자체가 취소되었던 것이다.

그는 청와대가 외무부의 방일 준비상황 보고를 계속 미루었던 것을 두고 아마 박정희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일찍부터 10월 유신의 계획이 들어 있었고 일본방문이라는 외교행사는 이를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데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해석했다.

촛불집회가 한창 열기를 더해가던 지난달 17일, 느닷없이 박근혜 대통령이 12월 일본에서 개최될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겠다고 하여 듣는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국민들의 대통령 탄핵 요구가 들불처럼 번져나던 상황에서 참석 방침을 밝힌 것은 국내정치적 국면전환을 위해 외교행사를 이용하려는, 순수하지 못한 의도로 비춰졌다. 게다가 중국이 아직 참석 여부를 확답하지 않고 있는데 한국이 서둘러 참석 의사를 밝히는 것은 외교적으로도 현명하지 못한 일이었다.

지금 일본에서는 최순실과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관한 기사가 넘쳐나고, 늘품체조에서 성형시술 의혹까지 한국 사람들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을 방문하면 피의자 신분의 박 대통령을 스캔들에 휩싸인 연예인을 보듯 할 것이 뻔하다. 정상외교는 회담의 내용뿐만 아니라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 목적인데 도리어 그것을 깎아먹을 상황이라면 추진하지 않는 것이 옳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국회에서 한중일 정상회의는 동북아의 안정과 협력을 위해 중요한 사안인데 국내적인 이유로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하면 많은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중일 정상회의의 외교적 중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자도 한일 간에 2년 넘게 정상회담이 개최되지 못하고 있을 때 한중일 정상회담으로 막힌 곳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맥락이 있는 법이다. 아무리 한중일 정상회의가 중요하다고 해도 지금의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국내정치적 의도를 배경에 깔고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만일 외교부가 국내정치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상외교 일정은 중단 없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외교부라는 존재가 지도자의 정치적 계산에 기계적으로 봉사하는 도구적 전문가집단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 이후 탄핵이든 여야합의든 모든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민들이 박 대통령에 대한 신임을 거두어들였다는 사실이며, 국민의 신임을 상실한 대통령은 더 이상 국가를 대표하여 외교 무대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외교부는 앞으로 몇 달간의 과도적 기간을 이용하여 그동안의 외교정책의 공과 과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진정으로 국익을 위한 합리적인 정책방향이 무엇인지 정리하여 새 대통령에게 제시할 준비에 착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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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NHK방송이 11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담화를 생중계하고 있다.

* 이글은 내일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