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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명(呼名), 공동체를 세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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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에 있는 천리포 수목원에 다녀왔다. 목련, 가시나무, 무궁화, 동백나무, 단풍나무가 각 수백 종에다 총 1만5천 종이 넘는 식물을 지닌 국내 최대 수목원이다. 꽃과 나무들이 좌우로 촘촘한 5월의 샛길을 걷는데, 무심한 사람들 틈에서 한 여학생이 수목의 그 많고 복잡한 이름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적느라 분주하다. 흐뭇하고 기특해서 같이 걸으며 이런저런 말을 나눴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실은 나무와 꽃의 이름을 많이 알수록 숲을 더 잘 파악한다. 특정 분야의 전문 어휘를 많이 알수록 그 분야에 더 정통해질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아는 만큼 친숙해지기 마련이라는 뜻일 텐데, 5개의 꽃 이름을 아는 사람과 50개를 아는 사람이 꽃밭을 거니는 감회가 다르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나는 평생 종(鐘)이었으나, 누가 나를 들어 쳐줄 때까지 내가 종인 줄 몰랐다." 미국작가 딜라드(Annie Dillard, 1945~ )의 말이다. 산다는 것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무수한 이름들과의 조우여야 하지 않을까.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상대를 이해하고 위로하고 기억하고 안심시킬 준비가 돼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낯선 이와의 첫 대면이, 피차의 처지와 상관없이, 언제나 이름을 묻는 것에서 시작하는 연유 또한 거기에 있으리라 믿는다.

노예사회, 이름 없는 투명인간들의 지옥도

단테는 「신곡」 지옥 편에서 지상에서 범한 죄와 닮거나 대비시키는 방식(contrapasso)으로 지옥의 형벌을 그리곤 했다. 신약성서의 복음서에 나오는 걸인 나사로는 천국에 가서도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지옥에 간 부자는 이름이 특정되지 않은 채 그냥 부자로 묘사된다. 이는 필시-단테의 상상력을 빌리면-지상에서 "오로지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해"(창세기 11:4) 부와 권력과 명예의 바벨탑을 쌓으며 평생을 보낸 이들이 마침내 받아야 할 마땅한 형벌이리라. 누구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투명인간들의 세상, 그곳이 바로 지옥 아니겠는가.

조지 오웰은 그런 세상을 전체주의에 빗댔다. 그는 파시즘과 스탈린주의가 마각을 드러낼 무렵, "노예제가 돌아온다"고 관찰하며 노예제에 근거했던 고대문명들이 4천 년 동안이나 지속됐다는 섬뜩한 사실을 환기시킨다. 특히 그를 전율케 했던 것은 엄청난 세월의 문명이 수천만 노예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면서도 그들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도 모른다. 그리스, 로마를 통틀어 우리가 이름을 아는 노예가 있는가. 내겐 두세 명의 이름만 떠오른다. 스파르타쿠스, 에픽테토스, 이솝.... 나머지는 완전한 침묵 가운데 사라져갔다." 그는 인류가 향하는 곳은 세계의 멸망이 아니라 노예제의 재등장이며, 이름 없는 노예들의 사회는 고대 노예 제국처럼 가공할 안정성을 지닐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의 마지막 소설 「1984」가 보여주듯이, 이런 추세는 과학의 발전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었다.

잊힌 이름들의 복원, 공동체 회복의 첫 길

런던의 피카딜리 서커스에는 영국의 가장 큰 서점 체인 '워터스톤스' 본점이 있다. 널찍한 공간에다 안락한 소파들이 곳곳에 있어서 런던에 갈 때마다 자주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영어로 쓰인 거의 모든 책들이 전자책으로 출판되는 마당에, 이 무심하고도 분주한 종이책들의 수요공급 현장이 반갑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잘 분류된 서가의 '전기(傳記)코너'는 끊임없이 추가되는 전기, 자서전, 회고록, 서간집, 일기들로 인하여 갈 때마다 나를 설레게 만든다.

정치, 문학, 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여 쏟아지는 이런 '일차자료들'이야말로 수많은 '사사로운 이름들'이 공적으로 복원되는 현장이다. 그런 이름들의 그물(網)이 영웅을 만들고 모든 사적인 것들이 마침내 정치적임이 확인되는 곳이 또한 거기다. 이런 기록들이야말로 잇단 기록들의 밑거름이 되어 무수히 가지 쳐 나갈 터인데, 지식시장의 성장이란 것도 기록들의 역사적 축적에 다름 아니리라는 믿음이 그래서 자연스럽다.

기록이 부재하면 호명도 없고 이름이 불리지 않으면 친밀함도 없을 테니, 그때 공동체는 부실하고 취약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검(劍)으로 일어선 자 검으로 망한다 했거니와, 배제하고 솎아내며 이름 지우는 일에 몰두하던 지난 정권은 수첩으로 시작해서 수첩으로 가장 치욕스런 형태의 몰락을 맞았다. 수첩 외 기록들은 삭제되거나 봉인되었다던가. 부디 새 정권이 그간 잊히고 밟히고 묻혔던, 광장과 거리와 철탑 위와 골방과 무대 뒤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호명해서 공동체와 역사를 복원하고 다시 세우는 일에 꾸준히 나서주기 바란다.

* 이 글은 다산연구소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