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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슬픔을 낭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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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해 반년을 런던과 에든버러를 오가며 보냈다. 마침 그 시기에 영국총선이 있었기 때문에 정당과 의회 그리고 각종 매체와 거리에서 거침없이 펼쳐지는 공론장들을 보며 민주주의 모국의 저력을 새삼 실감했었다. 반면 정치의 잡답(雜沓) 뒤, 사람들 일상에서는 마약이 뒷골목에서 가정으로 사무실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퍼져있었고, 상황은 5년여 전 영국을 돌며 느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해 보였다. 머지않아 정치인들이 품질좋고 저렴한 마약을 공급하겠다고 경쟁적으로 공약하는 때가 오지 않을까, 온 국민이 약에 취해 있는 사회, 생각이 소멸된 그곳에서 과연 민주주의는 의미가 있기나 할 것인가, 뜬금없고 기이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내 나라 한국 땅에서 권부의 핵심에서 먼저 가장 원시적이고 무례하게 민주주의가 해체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영국 민주주의에 대한 나의 무례를 반성했다.

'계시'는 공론장에서 검증돼야

"조지, 가서 아프간 테러리스트들과 싸워라.", "조지, 가서 이라크 독재를 종식시켜라.", "조지,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고 이스라엘의 안전을 확보하고 중동에 평화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라." 9.11 직후 조지 부시 대통령이 들었다는 하나님 음성이다. 당시 백악관은 부인했지만, 부시는 그 명령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이라크파병을 결정했다고 말한 것으로 외신은 전했다.

현대사에서 이라크전쟁은 한 개인의 환상에 매몰된 계시가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왔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비극적인 예일지 모른다. 알다시피 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기만과 위선의 전쟁이 몰고 온 파장은 넓고 깊었으니, 그것은 부시의 푸들로 불리며 전쟁독려에 앞장섰던 블레어 영국 총리의 퇴진과 뒤이은 노동당 13년 집권의 종식 그리고 초강경파 제러미 코빈의 부상과 당권장악에 기여했고, 작금 벌어지는 중동의 연쇄적 비극과 유럽정치의 잇단 대혼란, 최근의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정국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이른바 글로벌 시대 세계정치의 요동에 단단히 일조하기에 이른다.

정통개신교에선 성경이 써진 이후의 계시는 복음적 상식에 부합할 때에야 비로소 신뢰한다. 성경 그 자체가 완결된 계시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 맥락에서 보면 "모든 꿈은 개꿈"이라는 말이 농담만은 아니다. 성격, 경험, 환경에 매인 인간은 본래 한없이 속기 쉬운 존재이거니와, 모든 '계시'가 저마다의 공론장에 부쳐지고 상식으로 걸러져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민주주의의 겉모습마저 소멸된 나라

민주주의가 일차로 절차의 문제일 때, 이는 우선 소통을 제도화하자는 뜻에 닿는다. 모든 유의미한 개혁이 그로부터 비롯되는바, 그것은 자유롭고 투명하게 드러난 힘들이 공론장에서 각축하며 이뤄낸 잠정적 타협(modus vivendi)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트럼프가 아무리 혐오스러워도, 아칸소 시절부터 클린턴 부부의 행각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힐러리를 무작정 지지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노련한 할머니는 국정에 대한 자신의 장악력을 수많은 수치와 사실들을 동원하여 설득함으로써 그 험한 공론장들의 관문을 통과해 왔다. 최근 시리아 내전개입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국내외에서 푸틴 대통령이 저지른 악행들은 꽤 소상히 알려졌지만, 그가, 질문에 대한 일체의 사전조율도 준비된 원고도 없이, 4시간에 걸친 공개기자회견을 매년 한 차례 갖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폐쇄회로를 도는 저 수많은 주술적 언어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최소한의 외양마저 저버렸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무릇 계시란 초자연적이어서, 인간의 질서 밖의 질서이며 권력의 통상적 서열개념으로 자리매김할 수 없다. 잘못 발을 들이면 부모·형제의 연을 끊을지언정 헤어날 수 없는 것이 그 신비의 세계이거니와, 권위주의가 길들이고 여성성으로 증폭된 데다 저 몽롱하고 용렬한 참모들까지 보태졌다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생각이 멈추면, 가질 수 없고, 가진 것이 없으면, 줄 것이 없는 법, 삶은 긍정의 주문을 외우고 다짐을 거듭한다고 개선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이 참담한 슬픔은 언제까지 낭비돼야 하는가.

* 이 글은 다산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