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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탈선, 브렉시트의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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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TAIN FLAG
Clodagh Kilcoyne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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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가 확정되기 전에도 영국은 유럽연합(EU)의 '마지못한 회원국'(reluctant member)이었다. 영국은 EU의 모태인 EEC의 창립을 반대했고, 60년대 프랑스 드골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두 차례나 가입신청이 거부되다가 1973년 세 번째 신청에서 가까스로 회원국이 됐다. 그마저도 그로부터 불과 2년 후에 레퍼렌덤을 통해 재차 추인받아야 했다. 그 이후에도 영국의 회원국 지위를 두고 크고 작은 논란이 정치권 안팎에서 끊이지 않았으니, 브렉시트를 둘러싼 최근의 소동은 언제고 폭발할 수 있는 활화산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EU를 보는 영국인의 시선, 간단치 않아

오늘날도 EU를 보는 영국인의 시선은 간단치 않다. 가령, EU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첨병인지, 오히려 ('사회헌장'과 셍겐조약에서 엿보이듯) 거기에 제동을 거는 지역공동체의 실험장인지, 아예 독일패권의 관철 혹은 제어를 위한 기획의 결과물인지... EU의 성격규정은 주창자의 이념, 이해관계, 강조점에 따라 변해왔다. 이번 소동에서 잔류운동의 선봉에 섰던 캐머런 수상은 원래 유럽회의론자였고, 그와 각을 세우며 탈퇴운동을 주도했던 B.존슨 전 런던시장은 그 직전만 해도 EU의 필요성을 조목조목 강변하던 잔류파였으며, 노동당수 J.코빈은 좌파로서의 개인적 소신과 잔류라는 당론 사이에서 시종 갈팡질팡했다.

진보지들이 대체로 잔류 쪽이었던데 반해, 보수지들의 입장은 뒤죽박죽이었다. 예컨대 『타임스(The Times)』는 잔류를 지지했지만, 자매지인 『선데이 타임스(The Sunday Times)』와 발행부수 최대의 대중지 『선(The Sun)』은 줄곧 탈퇴 편에 섰다. 이 신문들은 모두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의 소유다. 사사건건 대립하던 자본과 노동의 두 정상조직인 「영국산업연맹(CBI)」과 「노조회의(TUC)」가 한 목소리로 잔류를 지지했다는 점도 특기할만하다. 실정이 이러하니, 탈퇴냐 잔류냐를 두고 옳고 그름을 원론적으로 따지는 일은 부질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렉시트 소동이 유례없는 감정적 대립을 동반하며 보수당의 총선승리에 뒤이어 곧바로 부각된 맥락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년 총선에서, 캐머런의 성급한 레퍼렌덤 공약에도 불구하고, 브렉시트 문제는 주된 선거쟁점이 아니었다.) 기왕에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대세를 장악하던 마당에, 과격파 보수주의자들의 (탈퇴 위한) 선동이 마침내 먹혀들어 간 것은 영국 보수주의의 탈선과 더불어 그것이 지닌 파급력을 또렷이 보여준다.

원래 보수주의에는 중세에 대한 향수가 그득 담겨있다. (보수주의가 종종 반이데올로기로 불리는 이유이다.) 산업혁명의 폐해가 본격화되던 19세기 초중반 무렵, 보수주의는 자유주의적 시장체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테제였거니와, 그것은 순진하게도 중세적 질서, 곧 신분의 엄연한 불평등을 전제하면서도 기능에 따른 보상이 (숙명적으로) 부여되는 신적·유기적 공동체로의 귀환을 희구했다. 그 세계에서 공동체적 질서를 위해 재산권(행사)의 자유는 일정하게 제약될 필요가 있었으니, 상층계급의 책무 곧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적어도 규범적 수준에서는, 교부와 성직자들의 수많은 저술과 설교를 통해 간단없이 주창되었었다.

보수주의이론의 창시자인 E.버크 이후 영국보수주의 정신을 저술과 정치를 통해 가장 모범적으로 구현했던 이는 B.디즈레일리다. 그는 일종의 도덕적 봉건주의, 곧 평등주의적이지는 않지만 금권주의적이지도 않은 사회를 꿈꿨던, 세습적 특권을 옹호하면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감각에 투철했던 정치인이었다. 19세기 후반과 양 대전 사이의 개혁입법들, 특히 이차대전 종전 후 보수당이 노동당과 번갈아 집권하며 일궈낸 복지국가적 합의는 모두 이런 정신이 보수당정치의 기조로서 면면히 이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국 보수, 미덕은 사라지고 갈수록 극악해져

전후 합의정치의 지형을 완전히 갈아엎은 인물이 보수당의 대처 수상이다. 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영국정치는 대처주의라는 또 하나의 합의 위에서 전개됐으니, 그것은 파괴력에서 대공황을 능가했다는 최근의 금융위기도 감히 흔들지 못한 난공불락의 위상을 굳혔다. 가령 소위 '제3의 길'을 주창하며 18년 보수당 집권을 종식시켰던 T.블레어의 노동당은 대처의 민영화, 반노조, 탈규제 등 신자유주의입법을 거의 수정 없이 계승했거니와, "우리의 가장 큰 성과는 블레어"라는 대처의 공언은 정치적 수사를 넘은 하나의 선언이었다.

영국이 신자유주의 선봉장 역할을 자임한 지 40년, 전통적 보수의 가장 큰 미덕인 수용과 포용, 곧 선한 부분은 점차 사라지고 악한 요소는 갈수록 극악해졌다. 무릇 강자는 차이를 명백히 한 후라야 약자에게 친밀감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서로 섞여 있을 때 얘기다. 계급들이 지역/문화적으로 아예 격리되면 친밀성마저 불필요하다. 불평등은 더 노골화되고, 피해자(이주민, 복지수급자, 하층계급)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비난전가의 정치' 혹은 '희생양의 정치'가 득세한다. 이것이 영국의 신흥(新興)보수가, '노동계급의 악마화'(Chav) 담론이 범람하는 가운데도, 잉글랜드북부 노동자들의 환호를 이끌어내며 브렉시트 소동을 도발했던 맥락이다.

* 이 글은 다산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