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ffpost Korea kr
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고세훈 Headshot

한국 정치의 위장(胃腸)

게시됨: 업데이트됨:
ASSEMBLY
연합뉴스
인쇄

이변이 속출했던 미국 대통령 후보 경선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미국은 양당체제가 굳건한 나라지만, 내내 정당정치의 외부자였던 트럼프가 마침내 공화당 후보티켓을 거머쥔 데서 볼 수 있듯이, 실제 정치에서 정당의 역할은 미미하다. 단순화를 무릅쓴다면 미국정치에서 정당은 그저 선거철에 반짝 빛을 발하는 조직이다. 권력과 정책과정은 연방의원 개개인에게 광범위하게 분산돼 있어서, 가령 상하의원 한 사람이 인구비례에 따라 거느리는 보좌관의 수는 각각 최대 70여 명과 20여 명에 이른다. (한국의 국회의원 일인당 보좌관 수는 6명 이하지만 그마저 이리저리 동원되고 심부름하고 대기하느라, 막상 정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원은 훨씬 적을 것이다)

정치인 개인이 지닌 막강한 정책능력은 이익집단들의 전방위적 로비로 인해 주요정책이 곳곳에서 비토되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의회에서 초당적 교차투표가 빈번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의원내각제가 주를 이루는 서유럽정치의 풍경은 많이 다르다. 정책형성의 중심에는 정당이 있어서 정당별 정책·이념적 결속 또한 상대적으로 강고하다. 정책과정은 당 지도부에 집중돼 있고, 대체로(주요 정책 사안일수록) 당 노선은 개별정치인의 행태를 구속한다. 정치적 출세를 노리는 평의원들은 오랜 기간 언변과 정책능력을 당내에서 검증받은 후에야 지도부에 진입하거나 발탁된다. 최근 영국의 EU 탈퇴 레퍼렌덤을 앞둔 집권보수당의 내분은 그래서 특기할 만하다. 노동당의 EU 잔류 당론이 비교적 견고한 데 비해 보수당은 잔류를 원하는 지도부 노선에 대한 평의원들의 대대적인 반란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소화력은 세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든, 정당이든, 이들 나라 정치인들의 행태가 정책을 위요하여 전개된다는 점이다. 특정 정치인의 이름에 기댄 진영이나 파벌이란 것도 세계관이나 정책지향이 흡사한 정치인들의 느슨한 연대를 지칭한다. 가령 영국정치에서 베반주의자(Bevanites), 대처지지자(Thatcherites), 블레어추종자(Blairites)는 차례로 전통적 사민주의, 신자유주의, '제3의 길'의 정책노선에 동의하는 이들을 겨눈 말이다. 이때 이념·정책형성의 배후에서 지식인의 역할이 각별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그들의 정치참여는 직접적이기보다는 연구, 자문, 출판, 세미나, 시민운동 등을 통한 줄기찬 발언을 거쳐 우회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통상적이다.

한국 정치의 균열양상이 사적인 친소와 선거승리를 위한 파당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정책역량과 관련해 아무런 검증절차 없이 (선거)여왕도 되고 최고 권력자로 등극해도, 정치적 양지만을 걸었던 이가 하루아침에 큰소리치며 야당대표로 변신해도, 양당정치를 타파하자며 출범한 소위 제3당이 기존정당과 어떤 이념·정책적 차별성을 지녔는지 도무지 요령부득이어도, 한국 정치는 건재하다.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을 패러디한다면, 과연 "한국 정치[원래는 교회]의 위장은 튼튼해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도 끄떡없는" 것이다.

이 땅의 많은 지식인이 권력의 후광을 빛내는 장식적 역할을 자임해 온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갈고닦은'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해 반드시 정치 일선에 뛰어들 필요는 없을 터인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기어이 벼슬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결과는? 저마다 출사의 변은 거창할지언정 번번이 소리 없는 불명예 퇴진을 하기 일쑤다. 파우스트의 일탈은 인식적 탐구를 끝까지 밀어붙인 후 도달한 절망적 탄식과 더불어 왔다. ("아아, 철학, 법학, 의학, 심지어 신학까지 전력을 다해 파고들었지만... 기껏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만을 깨닫다니!") 신에게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별수 없는 존재지만, 메피스토펠레스는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푸르른 것은 인생의 황금나무뿐"이라는 너스레로 지식인의 좌절과 욕망을 부추긴다. 과연 한국 정치의 소화력은 대단해서, 지식인들은 절망을 거칠 겨를도 없이 지레 욕망으로 직행하고는, 현실정치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 양실(兩失)하는 일이 허다하다.

정치인 스스로가 먼저 전문가 돼야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지식인이란 "우리는 지식인이다"라고 외치는 자이며 그런 외침에는 불손하고 무례한 도전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자유의 모험』). 계몽시대를 거치며 정치에 직접 참여했던 지식인들-가령 V.위고나 J. 밀-이 정치인으로서 기여한 바 없지 않겠으나 후세는 그들의 이름을 문인이나 사상가로만 기억한다는 것을 곰곰 새길 필요가 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정치인 스스로 전문성을 계발하고 축적하는 일일 것이다. 최근 정치판의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는 야당의 한 중진의원은 정치 초년생들을 향해 "가능하면 하루 세끼를 모두 기자와 함께하라"며 선배로서 지혜를 들려줬다는 기사가 있었다. 한국 정치를 떠올리면 이것이 필시 따끈따끈한 당선의 기쁨에 겨워 나눈 농담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 현상과 한국 정치의 현실이 묘하게 겹쳐진다. 정책보좌진도, 정당의 정책기능도 변변찮은 마당에, 이 나라 정치인들이여, 밥도 좋지만 제발 국회도서관에서 혼자 시간 좀 보내시라.

* 이 글은 다산연구소의 다산포럼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