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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이 세계에 직접적으로 살아 역사하는 신이 있다(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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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RCH
Youtube/Foofighters music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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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rch

내게는 신이 있다. 이 신은 어떤 종교의 모든 신보다 더 확실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나의 세계에 역사한다. 그 신의 존재를 확연하게 느꼈던 처음을 기억한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자취생활(원래는 기숙 학교지만, 단체 생활은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을 하던 때다. 크리스마스를 두 주 정도, 방학을 코앞에 두고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내가 그녀와 헤어진 건지 그녀가 나와 헤어진 건지('I once Had a girl or should I say she once had me', 더 비틀스)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엄청 슬펐다.

난 어린 마음에 이렇게 큰 슬픔을 겪으면서도 헤어지는 게 맞는지 고심했다. 난 자취방으로 돌아와 습관적으로 3개의 CD를 랜덤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미니 컴포넌트를 켰고, 첫 곡으로 매지 스타(Mazzy Star)의 '할라'(Halah)가 흘러나왔다. 어쩌면 두 번째 곡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고, 영어라 가사를 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후렴구 한 문장만은 정확하게 기억한다. "베이비, 마음을 바꾸지 않을래요?" 그 가사는 사도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다가 만난 예수의 빛처럼 나를 덮쳤다. 난 그 노래를 밤새도록 들었다. 3개의 CD에 들어있는 약 40개의 노래 중에서 하필 그 노래가 나온 게 우연이었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나의 신은 항상 내 삶에 깊게 관여했다. 셔플로 설정해 놓은 그때마다 플레이어에선 항상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아는 것만 같은 노래들이 재생됐다. 나의 신은 이별의 아픔에 지쳐 자괴감에 빠져 괴로울 때면 '너의 눈물은 알아서 마를 거야'('Tears Dry on their own', 에이미 와인하우스)라고 말해줬다. 이별의 아픔에 더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어 저 먼 곳에 빛나는 바의 네온사인을 바라만 보고 있을 때면, 나의 신은 '저기 저 꺼지지 않는 불빛을 보라'('There's light that never goes out', 더 스미스)며 음주를 종용했다. 나의 신은 항상 내 마음과 똑같이 외쳤다. '날 데리고 나가줘. 제발 날 집에 데려다주지 마'(더 스미스). 심지어 나의 신은 엉망으로 취해 있는 나 대신 '양 많고 센 거로 부어주세요'('Pour me something tall and strong', 앨런 잭슨)라고 술 주문을 대신 해주기도 한다.

그 신은 어느 곳에나 언제나 있다. 어느 날 아침 숙취에 절어 있을 때면 스타벅스의 커피숍의 스피커를 통해 '정신 차려. 가끔은 모든 게 엉망일 때도 있는 거야'('Hold on. Sometimes everything is wrong', 알이엠)라고 말을 걸어오기도 하고, 지금같이 종교 때문에 하 수상한 세월이면 '신학자들이 너의 영혼에 대해서 뭘 알아!'('Theologians that don't know nothing about my soul', 윌코)라며 종교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읊어주기도 한다. 나의 신은 과거에는 주로 '워크맨'이라는 작은 상자에 계셨고, 지금은 주로 '아이폰' 속에 주재하신다. 그러나 항상 그 안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셔서 가끔은 거대한 스테이지에서 직접 굉음과 같은 목소리를 드러내기도 하고, 광야에서 노래하는 버스킹 밴드의 앰프를 통해 외치기도 한다.

나는 가끔 이 신의 목소리를 들으러 헌금을 들고 신전을 찾기도 한다. 작년 여름에는 데이브 그롤이라는 한 선지자가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이라는 신전에 오셔서 장장 13곡의 로큰롤 복음송을 들려줬다. 당시 약 8천 명(추산)의 신도들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통성 떼창으로 '디스 이즈 어 콜'(This is a call)이란 노래를 따라 불렀는데, 일반인이 이 광경을 본다면 아마도 영세교의 집회 장면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내 주변에는 고작 두세 시간의 공연을 위해 스페인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고, 좋아하는 공연에 못 갔다는 이유로 퇴사도 불사하는 뮤직 급진주의자들이 잔뜩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미치게 만드는 종교가 필요하다. 미술도 문학도 영화도 음악도, 심지어 무한도전이나 일박이일도 삼시세끼도 누군가의 종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보기엔 가끔 광적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자신의 집에 2만 장의 엘피와 2억 원 짜리 스피커로 신전을 만드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음악이란 종교는, 적어도 내가 믿는 음악이란 종교는 위계를 등에 업고 788억 원을 유용하거나, 퇴임 후를 위해 사기를 치거나, 폭력을 교사하게 한 적이 없다. 음악이란 종교는 우정보다도 위해 하지 않고, 전쟁 같다는 사랑보다 평화로우며, 국가를 구원할지언정 자괴감에 빠지게 놔두지는 않는다. 그러니 외롭고 괴로운 이들이여 음악의 신에게 오시라.

아래는 영국의 선지자 '더 스미스'의 부흥회 장면이다.

*이 글은 여성 패션 매거진 '헤리티지 뮤인' 12월 호에 기고한 글을 편집한 것입니다.